존재의 화목재
불재의 아이들이 막대기로 칼싸움 하는것을 지켜 보다가
제법 부풀어오른 느릎나무 눈에 눈을 마주칩니다.
겨우내 나무는 기후와 습도 등 외부 환경에 부디쳐
몸을 움추리고 생장하기를 그만 둔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무는 더 큰나무가 되기 위하여
자기 속에서 물과 양분을 축적하고 벌써 새순을 터뜨릴 준비를 했던 겁니다.
누가 시키지도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이 겨울 나무는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바깥 환경에서 제 이파리를 떨구는
희생을 감수하고서도 자기 존재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차곡차곡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느릎나무에게 있어 겨울은 성장을 위한 훈련과 연단의 계절이었던 겁니다.
한 그루의 나무도 관자재 觀自在
제 속을 들여다 볼 줄 알고
관세음 觀世音 바람소리 물소리 온갖 우주의 소리를 들을 줄 알거늘
사람의 아들은 제 자신 속으로 깊이 들어가 존재의 소리를 듣고
하늘이 맡겨주신 세상을 바로보기는 커녕
아직도 제숨도 제 존재도 모른 채 아까운 생명을 놓치고 있습니다.
본래 사람이 하늘에서 이 땅에 뿌려진 목적을 상실하고
물질을 구하고자 세상과 씨름하다가 말그대로 얼이 빠져버린 겁니다.
붓다는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했으나
금욕이나 단식, 고행 바깥에서 깨달음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보리수나무 아래 자기 자신 속으로 깊이 들어가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사탄과 죽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느님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입니다.
겨울의 막바지 관자재 觀自在
한그루 느릎나무가 계시한 복음을 겸손히 듣습니다.
물님과 텐러버 형제들이 아버지의 은총으로
이번 캄보디아 수련과 사역을 마치고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이를 감사드리고 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캄보디아를 죽음의 땅으로 만든 폴포트가
불란서에서 막스와 레닌이 아니고
성경과 예수님을 만났더라면 그 나라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인간이 인간을 처참하게 죽인 사람들의 감성이 감성이겠는가?
지식인들을 죽인 사회가 회복되는 데는 100년 이상 간다고 한다.
폴포트는 그 나라의 혼을 자르고 문화를 자르고 삶에 대한 감각을 말살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의 나라가 캄보디아다.
얼굴 표정이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가슴이 파괴된 나라다.
이들의 종교도 삶의 종교가 아니라 죽음의 종교다.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생각이고 이웃이고 세상이고 다 없다.
예수님은 종교란 것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번에 감각과 영성을 마비시키는 그런 나라를 보고 온 것 같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든 나라다.
그 후 구텐베르그가 금속활자를 발명했는데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는 성경과 의학서적을 찍어냈다.
당시 고려는 금속활자를 가지고 왕실에서 쓰는 책을 만들었다.
팔만대장경이 있지만 서고 속에 들어 있는 책만 찍어낸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 말씀 속에서 보는 사람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름다움, 선과 진실을 볼 수 있는 눈과 귀가 열린 사람이어야 한다
성서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셉투아진다 70인역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경험의 시작이라 했다.
애벌레는 나비의 경험을 모른다.
인간은 하느님과 부딪칠 때 제대로 된 경험이 생긴다.
하느니을 알기 이전과 이후의 경험의 세계가 다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인간의 경험이 시작된다.
세례요한을 미친자라고 말하고 예수님을 먹기를 탐하는자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말하는 것처럼
진짜 나를 이롭게 할 사람인데도 욕을 하고 비난을 하고 그렇다.
이견대인 利見大人
큰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2천년 무지몽매한 세계 속에 그분이 오셨다.
눈 먼사람을 눈 뜨게 해 준 분이고 감각이 문둥병 걸린 사람들을
새롭게 깨어나게 해 주신 분이다.
알면 알수록 당시 예수님을 욕했던 사람들의 악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폴포트는 파충류의 뇌를 가진 사람이다.
사상과 종교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누가 받아드리냐가 중요하다.
이성 감성 오성 영성이 열린 사람들이 있어야
정치 사회 문화 경제가 다 꽃피는 것이다.
예수님이 한 일은 건물이나 물질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맞추어졌다.
"맹인이 보게 되고 앉은뱅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기쁜 소식을 듣는다
(마11:5)
캄보디아에 예수님의 삶의 복음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기원을 드렸다.
그것이 아름다운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위해서 이 세상에 보냄받은 존재들이다.
우리 자신을 아름다운 일을 하는 데 써야 한다.
이번 물님과 텐러버의 수련은 각 존재를 화목제로 드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짙은 회색빛 죽음의 사원을 정화하고
살기를 누르는 거룩한 시간이었나 봅니다.
춤꾼 선교사님 3개월 간의 피정을 마치고 케냐 마사이 땅으로 들어가십니다.
존재의 선교사로서 그들을 눈뜨게 하고 사랑과 평화의 씨앗을 뿌려가시길 소망합니다.
장원장님 모친이 대학병원에 입원하셨었는데
기적적으로 결석이 체외로 빠져나와 수술 없이 퇴원하셨다고 합니다.
능력님이 가져오신 울산 유과, 순결님의 빵 맛있게 들었습니다.
말씀 속에서 세상과 천국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원래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sial
너무나 보고싶고 그리운 웃음이네요.
건강하신것 같아 마음이 놓여요.
춤꾼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모두 강건하시기를 두손모아봅니다.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