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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

2010.11.08 00:56

하늘 조회 수:3086

 

  내리사랑   /신 영


 

 

 

 

"엄마, 나 오늘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데…."

"아빠는 좀 괜찮아요?"

"나는 오늘 아빠한테 못 가는데요."

우리 집 대들보인 남편과 세 아이의 아빠가 한 달째 Shingles(대상포진帶狀疱疹)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 제일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곁에서 그저 지켜보는 일은 더욱 안쓰럽고 마음이 아픈 일이다. 가족 중에 누가 하나 아프면 모두가 우울한 분위기가 된다. 세 아이에게 아빠의 아픈 사정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견딜만 하다고 얘기하고 지났었다. 하루는 딸아이와 큰 녀석이 집에 도착하여 아빠 얼굴을 보더니 안쓰러운 마음은 잠깐 둘이서 눈을 마주하고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의 일상생활의 풍경이기도 하다. 맑고 밝아서 좋기는 한데 내심 괘씸한 생각이 스친다. 아빠는 너무 아파서 밤새 잠도 못 자고 상처 난 곳이 못 견딜 만큼 가려워 쩔쩔매며 고생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남편이 머리가 매우 아프다고 해서 걱정스러워 시티촬영(CT Scan )을 해보았는데 괜찮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2주째가 되었다. 이제는 나아질 때가 되었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오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부터 시작한 수포(물집)가 목뒤를 타고 머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상처가 심각한 모습이었다. 

 

3주째 일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꼬박 둘이서 얼굴을 마주한 시간이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하니 몸과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낮 동안에 가끔 엉뚱한 짜증을 부리는 것이다. 사실 곁에서 병간호하기도 버거운데 보기에 안쓰러워 애쓰는 마음은 모르고 남편이 툭툭 내뱉는 짜증 거리에 속이 상했다. 그래도 뒤돌아서면 또 안쓰러워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챙겨주고 마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아픈 사람의 속은 어떠랴. 매일 밖에서 일하고 쉬는 날에는 골프를 하던 활동적인 사람이 하루 온종일 집안에 묶여 있으니 그 속이야 오죽할까. 그렇게 생각하니 정성스러운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한국에서 몇 년째 살고 계시는 시부모님은 요즘 큰아들(시 아주버님) 덕분에 즐거움이 가득하시다. 미 공군 대령으로 와싱턴의 펜타곤에서 근무하시다가 지난 7월에 한국으로 외교관(무관) 발령을 받아 한 3년 동안 가시게 되었다. 시아버님과 시어머님께서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큰아들과 가까이 계시니 행복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세 자녀 모두가 효자 효녀 거기에 두 며느리도 사위도 시어른들께 잘하는 편이다. 시어머님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아들(남편)이 많이 아프다는 얘기를 드리지 않았다. 혹여, 멀리 떨어져 있어 보지도 못하는데 걱정을 끼쳐 드릴까 싶어서 안부 인사만 올렸다.

 

집에서 3주째 두문불출하던 사람이 이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월요일부터는 하루에 3시간 정도라도 일을 보고 와야겠다는 것이다. 그럼 그렇게 하자고 말하고서는 아직 몸이 편치 않으니 아내인 내가 운전기사가 되어주기로 했다. 이것저것 서류를 살펴보던 남편이 눈이 침침한 지 몇 번을 눈을 비비며 돋보기안경과 일반안경을 썻다 벗었다를 여러 번 반복한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남편은 안과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며 전화를 건다. 그나마 연결이 되었는지 그날 오후로 진료 예약을 해 놓았다. 남편을 옆좌석에 태우고 병원을 향해 달려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책업을 받은 후 의사의 소견으로 '스페셜리스트'를 찾아 진료 받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일러준다. 남편은 그렇게 그날로 Shingles(대상포진帶狀疱疹)만 연구하고 진료하고 치료하는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날로부터 시작된 의사들의 상처에 대한 질문은 끝날 줄 몰랐다. 이것저것 검사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며칠 입원을 해서 치료를 해야겠다는 얘기였다. 집에서 3주째 답답해서 쩔쩔매던 사람이 이제는 병원에서 꼼짝없이 며칠을 더 보내게 되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이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과 과일을 챙겨 정성스럽게 병원문을 들락거리며 오가게 되었다.

 

며칠 전에 프랑스에 살고 있는 누나(시누이)하고 통화하며 병원에 입원해 있노라고 말을 전했나 보다. 

"얘, OO가 병원에 입원했다니 웬 말이니?" 하시며 한국에서 시어머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미국에 다녀와야겠다." 하시더니 오늘(토) 오후에 보스턴에 도착하셨다.

남편도 오늘은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세 아이는 자기네들 바쁘다는 이유와 핑계를 대었지만, 엄마(시어머님)는 막내아들을 향한 사랑과 안타까움으로 단숨에 한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 땅까지 달려오셨다. 어찌 부모님의 그 크신 은헤와 깊은 사랑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저 부모에게서 받은 그 은혜와 사랑을 또 제 자식에게 내리사랑으로 전해주는 것이다.

 

                                                                                                             11/06/2010.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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