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호, 「너무 아름다운 병」
아프니?
안녕 눈동자여, 은빛 그림자여, 사연이여
병이 깊구나
얼마나 오랫동안 속으로 노래를 불러
네가 없는 허무를 메웠던지
그런
너의 병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지
어떤 무늬인지 읽지 않았으니
아무 마음 일어날 줄 모르는데
얼마나 많은 호흡들이 숨죽이고 있는지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압력
휘청, 발목이 잘려나간 것처럼
한없이 무너지고 싶다
밥 먹어
너의 아름다운 병도 밥을 먹어야지
별다방 아가씨가 배달 스쿠터를 타고
전화번호가 적힌 깃발을 휘날리며 지나간다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참혹한 욕망이 문지방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돌아가자
너의 아름다운 병을
검은 아스팔트까지 바래다주러 간다
가면, 오래오래 흐린 강 마을에서
집의 창을 만지는 먼지들과 살 너와
돌아서면 까맣게 잊고
이미 죽은 나무에 물을 뿌릴 나는
저리위─ 독주에 취해 더 깊은 병을 볼 거면서
먼 길로
일부러 먼 길로
너의 아름다운 병을
오래오래 배웅한다
● 시_ 함성호 - 1963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났으며, 1990년 《문학과사회》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 『56억 7천만 년의 고독』, 『聖 타즈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허무의 기록』 등이 있음.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