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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마을['3.7]

2010.03.09 00:57

구인회 조회 수:3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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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One)의  세계
 

   분홍빛 진달래 흘러내리는 영취산 고갯마루

   한 송이 꽃을 들어 보이자 한 제자가 웃음 지었다던가?

   눈물과 눈물이 통하고 마음과 마음이 정신과 혼이 통하는 하나의 세계

   그 세계에 화답하여 눈물로 미소 짓는 이 있으니

   영혼의 칼라가 닮은 사람, 미소로 답하는 그 스승에 그 제자

   바로 그런 걸 겁니다, 사람이 통한다는 것은.

   어릴 적 미술교과서에 나오는 그림 중에

   제일 못생긴 그림 찾으라면 첫 번째로 고흐의 그림

  ‘참 못 그렸다’  ‘이렇게 못생긴 그림이 왜 교과서에 나오는 거지’

   나비눈에는 꿀 만 보이고 × 눈에는 뭐 만 보인다고

   그 만큼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세계는 어둠뿐입니다.


   고흐의 그림이 명화로 거듭난 것은 고흐에 대한 한 사람의 감동

   그 분이 감동하니 같이 감동의 물결에 녹아들고 모두가 감동의 눈시울을 붉힙니다.

   도대체 뭐가 정지된 감정이 풀리게 하고 그의 그림에 전율하게 되었을까요?
   바로 그것은 늘 예배당에 전시된 고흐의 작은 그림 한 점,

   별과 달이 빛나는 밤, The Starry Night(1889년)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이프러스와 만남

   너무 커져서 산인지 나무인지 분간이 안 가는 큰키나무 한 그루

   집보다도 크고 산보다도 짓 푸른 사이프러스나무가

   하늘을 향해 손 모아 기도하고 찬양을 드립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소용돌이치는 우주의 복판에서

   행복한 꿈을 꾸듯이 하늘의 율동에 춤추고 노래 부르는 사이프러스나무

   그것은 나무

   나무가 된 고흐

   그것은 우주에서 보내는 편지에 드리는 답장.

   그분의 사랑으로 생명이 된 나무의 자유로운 춤.

   그것은 은하수 흐르는 성전에 바치는 사랑 노래.

   그것은 이 세계에 생명의 산소를 뿌린 다 이룬 나무의 찬란한 고백.

   모두가 잠든 그 순간에도 나무는 단 한순간 한 호흡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숨죽이며 장엄한 하늘의 축복과 지혜와 은혜를 받듭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말씀대로 고흐는 보고 들었습니다.

   깨소금처럼 뿌려진 하늘의 별과 빛, 하늘에서 들리는 장엄한 소리를

   그러나 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은 눈감고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당신이 온전한 사람이 되려고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고,

   얼마나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 주려고 했는지?

   그러나 아무도 듣는 사람도 없었고 어떻게 듣는 지도 몰랐다.” 는

   노랫가락처럼 오로지 하나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자신의 그림을 보고 계신 하늘에 미쳤고

   결국 하늘과 땅이 찬란하게 웃고 계신 저 하늘을 향하여

   밤하늘의 별똥별처럼 한줄기 빛을 뿌리고

   너울너울 춤추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150년이 지나 물님의 노래에 강렬한 색채로 다시 부활합니다.


   고흐의 눈물을 타고 흐르는 물님의 노래ㅡ


   야곱 뵘은 인간의 악에 대하여 그 사람의 마음이 굳어진 상태,

   에너지의 파동이 옆에 있는 사람을 긴장하게 하고 공포심을 주는

   존재가 악하다고 말한 바 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성전 뜰을 밟는 게 아니라

   어떤 에너지의 파동이 나가는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예수를 만나고도 에너지의 파장이 종전과 똑같다면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있겠는가?

   요한복음 17장은 죽음 앞에 선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다.

   한 주가 지나도 이 복음서 17장이 떠나가지 않는다.

   내가 이 땅이 영광스러울 때 하늘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루미라는 영혼이 깨어나니까 터키의 코냐가 살고 엄청난 사람이 오게 된다.

   루미로 하여 그 땅이 영광을 받은 거다.

   루미는 상대성의 세계를 벗어난 존재다.

   인간의 내면과 에너지 시스템, 영혼의 글이 기발하다.

   에니어그램도 저 도형 안에 삼각형이 그려져 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그려 넣은 거다.

   귀일이라는 것도 다석 유영모와 이현필의 사상이다.

   수피를 만나면서 감동받은 것은 인류가 한 형제임을 믿는다는 거다.

   나에게 사람들이 찾아오면 하느님이 보낸 천사라고 받아드릴 뿐..

   당신은 종교보다도 더 큰 분이 아닌가?

   당신 안에 계신 예수님과 하느님은 더 큰 분이시다.

   루미는 ‘나는 십자가도 초생달도 숭배하지 않는다’ 고 말한 것처럼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재판받을 때 단 한마디만 하신다. 
  “에고 에이미[ego emi], 나는 나다[I AM]” 라고

   나에 대해서 그 어떤 레떼루를 붙이더라도 ‘그건 내가 아니다’라는 역설이다.

  “장소 없음이 내 장소요, 발자취 없음이 내 발자취다”

   우리 눈에 다 사라지는 것 같지만 사라지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삼진법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모든 말씀 속에서 나타나신다.

    삼진법의 차원으로 말씀하시고 또 어떤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 주신다.

    칼 융은 동시성의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다.

    인류가 가진 집단 무의식 상태에서 일체가 다 통하고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동시에 앉아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건 우연이 아니요 상호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이 순간 우리 모두에게 동시성을 가진 관계가 된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기 한 사람 한 사람은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인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개인이다.

    그렇지만 진달래란 이름으로 한 사람이다.

    인류가 한 몸이라면 개인의 세포로 비유할 수 있다.


    반 고흐의 노래를 들어 보자

    고흐는 15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다.

    10년간 900여 점의 그림과 1천 여 점의 습작을 남기고 삶을 마감 했다.

    고흐는 물리적인 시간으로는 과거의 인물이지만

    동시성의 세계, 영혼의 세계, 시의 세계에서는 지금 나와 만나는 인물이다.

    고흐는 지금 나에게 말하고 있다.

    나는 고흐의 동생이 되어서 편지를 읽었다.

    동시성의 세계에서는 내가 고흐요, 예수님이 곧 형님이고 나는 그분의 동생이다.

    정신을 차리고 자각하는 내가 또 여기 있다.

    예수님의 사건, 고독, 죽음. 그분은 자기완성을 위해 불꽃 같이 살았고

    동시성으로 일하셨으며 내 가슴에 부활하시고 또 가슴을 뛰게 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을 얼마나 못 알아듣는 지, 못 보고 못 듣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의 절박한 심정에까지 갔는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금암교회에서 어느 분이 왜 하나님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니

   ‘강의가 안 들어 온다’고 따져 물은 적이 있다.

    하느님 이름이 어디 있는가? 하느님은 이름 지을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석지현 스님이 복음서를 구해서 읽다가 가슴에 부딪쳤다.

    애기때 길바닥에 버려졌는데 하도 배가 고파서 남의 집 부엌에 들어가

    밥을 훔쳐 먹다가 들켜서 얼마나 맞았는지 그냥 기절했다.

    한 밤 중에 눈이 떠졌는데 성경을 읽으면서

   ‘그 때 내가 경험했던 인생을 사신 분이 예수님이시구나’ 깨닫고

    그 후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미국에 건너가 성경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1년 동안 예수님 가신 길을 순례하고 이를 기록했다.

    이 책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다
    이를 보고 예수님이 기뻐하시지 않았겠는가?

    예수님의 경험과 가슴을 공감하고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하느님이냐 하나님이냐 이런 걸 따질 게 아니라

    단 한 번이라도 예수님의 가슴을 공감해 본 적이 있는지 ?

    당신 안에서 그런 가슴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우리 예수님이 그런 가슴이 있는 석지현을 불자니까 지옥가라고 하시겠는가?

    루미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진심이 서로 통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따로 사는 게 아니라 동시성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크로노스의 수평적 시간이 아니라 영혼과 영생을 경험하는 세계

    삼진법의 세계, 아이엠 의식의 시간 속에 말하는 거다

    사랑은 모든 것을 묶어서 완전하게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짜증나게 된다.

    미운 짓을 해도 사랑하는 시선이 있으면 덮어주게 된다.

    요한복은 17장의 하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일체가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인류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그렇게 되는 세상을 그리워한 분이다.

    나는 사랑받는 영에 속한 까닭에 두 세계가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를 알고 보고 듣고 찾고 하나로 부르는 소리가

    예수님의 정신을 표현해 주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거룩한 존재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나와 너, 누구든지 하나가 되고

    자연 속에서 웃으시고 꽃 속에서 말씀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하나의 세계에서 하나로 살게 된다.


    꽃같이 아름답고 꽃같이 서러운 말씀 마디마디
    그 말씀이 흘러 흘러 이 순간
    저마다 고흐가 되고
    루미가 되고
    예수님이 되고..

   “내가 세상을 둘러보니 사람마다 전부 광야에 홀로 자라는 나무와 같더라.

    그런데 하느님은 당신 곁에 둘 자가 하나도 없었고,

    하느님 말고는 기댈 만 한 자가 세상에 없었다.” 는 라삐 부남의 고백처럼

    영혼 속에 사랑을 가진 고독한 자의 노래 ‘고흐’

    한 인간의 실존의 자리에서 홀로 나를 알아준

    하느님 앞에서 기뻐서 미친 고흐의 짝귀가 인간 승리의 표징이자

    이 순간 하나의 세계에서 완성의 봉인으로 꿈처럼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s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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