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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감미로운 우리 말 다섯 가지.
                 우리 땅 걷기 - 신정일
나는 가끔씩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 황송할 정도로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말인 한글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나의 고향인 진안군 백운면의 운교리는 옛날 냇가에 구름과 같은 다리가 놓여 있었기 때문에 ‘구름다리’로 부르다가 한글 이름인 운교리로 바뀌었고, 내가 살았던 백암리는 흰바우가 있어서 ‘흰바우’ 마을입니다. 
옛사람들은 우두커니 한 곳만 바라보는 모양을 두고 ‘물끄러미 바라보다’라는 말을 썼고, 나직한 목소리로 정답게 서로 말하는 소리나 모양을 두고 ‘도란도란’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얽혀 있거나 뭉쳐 있던 것이 풀리는 것을 ‘사르르 풀리다,’ 라고 했으며, 겨울에 꽃이 피었었다고 ‘꽃밭정이’라고 했는데, 그 말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천재 시인 이상도 아름다운 우리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아름다운 조선말 가운데도 내가 그중 아름답게 생각하는 말 다섯 가지와 자랑하고 싶은 점,
무관한 친구가 하나 있대서 걸핏하면 성천에를 가고가고 했습니다. 거기에서
서도인西道人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를 깨쳤습니다.
들어 있는 여관아이들이 손(객)을 가리켜 ‘나가네’라고 그리는 소리를 듣고 ‘좋은 말이 구나’ 했습니다. 나같이 표표한 여객旅客이야말로 ‘나가네’란 말에 딱 필적하는 것 같이 회심의 음향이었습니다.
또 ‘눈깔사탕’을 ‘댕구알’이라고 그럽니다. ‘눈깔사탕’의 깜찍스럽고 무미한 어감에 비하여 ‘댕구알’이 풍기는 해학적인 여운이 여간 구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서 가자고 재촉할 제 ‘엉야’라고 콧소리를 내어서 끌어당기는 풍속이 있으니, 그것이 젊인 여인네인 경우에 눈이 스르르 감길 듯이 매력적입니다.
그리고는 정지용의 시 구절인가 ‘검정 콩 푸렁 콩을 주마’하는 ‘푸렁’ 소리가 언제도 말했지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불초 이상은 말끝마다 ‘참’ 참소리가 많아 늘 듣는 이들의 웃음을 사는데 제 딴은 참소리야말로 참 아름다운 화술話術인줄 믿고 그러는 것이거늘 웃는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이상의 <수필집>에 들어있는 글입니다.
<날개>나 <오감도>등의 어려운 소설과 시를 지은 사람으로만 기억하는 이상의  글에 이런 글이 있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궁벽한 산골 진안의 백운에서 살면서 ‘나가네’나 네 가지 말들은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봄이면 밭이랑에서 콩을 심을 때 ‘여긴 검정콩을 심고, 저기는 ’푸렁 콩‘을 심어야 한단다.’ 하시며 녹두 콩을 심으시던 할머니,
‘푸렁‘이라는 말이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평안도나 전라도 등 어디서나 쓰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내가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기억의 저편에서 할머니의 맑고 카랑카랑한 음성이 자장가처럼 혹은 회초리처럼 영혼을 후비고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어서 후딱 일어나야지?’
‘우리 손자 ‘솔찬이’ 잘했네. 일어나 ‘시나브로’ 가야지? ‘하먼, 그러다가도 ’어떻게 한 다냐? ‘하고 장탄식長歎息을 늘어놓으시던 우리 할머니,  
내가 알고 있는 순수한 우리말이 자꾸자꾸 기억의 서랍 속에서 새어나가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하지요.
내 어린 날을 지켜보았던 섬진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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