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늙어도 숟가락 들 힘만 있다면 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사실무근이 아니다. 숟가락을 쥘 힘, 즉 악력은 노년기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척도 중 하나다. 일본을 대표하는 뇌과학자인 구보타 기소우는 저서인 '손과 뇌'에서 "인류는 손을 쓰면서 뇌의 부피가 급증했다"며 손이 뇌와 육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실제 노년의 악력은 치매나
뇌졸중 발병과 연관성이 깊다. 미국 코네티컷대 물리치료학과 리차드 보하논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71~93세 노인 350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악력이 좋은 노인일수록 인지능력이나 체내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았다. 미국 보스턴 메디컬센터의 연구에서도 40~50대에 악력이 약한 사람은 65세 이후 뇌졸중을 겪을 위험이 평균 42%나 높았다. 이러한 연구들은 손을 써야 뇌가 자극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악력은 노년기의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나이 들면 악력이 약해지는데, 이를 통해 몸 전체의 근육 강도를 파악해 건강상태를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과 장수에 관한 미국의사협회의 역학조사에 따르면 장수할수록 악력이 셌다. 85세 이상 장수한 사람의 평균 악력은 39.5kg인 반면, 그 이전에 죽은 사람은 38.5kg으로 장수자에 못 미쳤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평균 악력도 85세 이상 장수자의 평균치보다 낮았다.
악력이 떨어질수록 노인의 사망률과 장애, 합병증 발생률은 높아진다. 네덜란드 레이덴대학이 노인 555명을 상대로 각각 85세, 89세일 때 악력과 근력을 측정하고, 10년 뒤 건강상태와 생존여부를 조사했더니 이 같이 나타났다. 측정기간 동안 악력이 크게 줄어들거나, 가장 낮은 축에 속했던 노인들은 사망률과, 장애, 합병증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훨씬 높았다.
일반적으로 노년의 악력은 활동력을 반영한다. 장수자의 악력이 높은 것은 손을 사용한 신체활동이 왕성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산업대와 교토부립대 의대 공동연구를 보면 60세 이상 한국 남성의 평균 악력은 30kg, 여성은 18kg이었다. 대표적 장수국가인 일본의 노인은 남성 35kg, 여성 21kg으로 우리나라 노인보다 높았다. 의학계는 나이 들수록 근력 운동을 강화해야 수명을 연장할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