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352143
  • Today : 978
  • Yesterday : 1043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2021.08.11 05:06

물님 조회 수:2757

바람이 바뀌었다

 

 

      박노해

 

 

      천둥번개가 한 번 치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늘어지고

      새의 노래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짙푸르던 나뭇잎도 엷어지고

      바위 틈의 돌단풍이 붉어지고 

 

      다랑논의 벼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검붉게 익어오고

      산국화가 꽃망울을 올리고

      하늘 구름이 투명해지고 

 

      입추가 오는 아침 길에서

      가늘어진 눈빛으로 먼 그대를 바라본다

      조용히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무더운 열기와 무거운 공기와

      얼굴을 가리고 말들을 삼키고

      마스크 씌워져 무감하고 무디어진

      내 생의 날들이여 

 

      이제 바람이 바뀌어 불고

      맑아지고 섬세해진 나의 감각으로

      거짓과 진실을

      강제와 자율을

      예리하게 식별해 가야겠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바뀌었다

      하늘이 높아졌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3 꿈 길에서 1 요새 2010.03.15 2680
222 사십대,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 운영자 2008.06.10 2677
221 어디 숨었냐, 사십마넌 물님 2009.08.31 2673
220 거울 물님 2012.07.24 2672
219 나는 배웠다 / 샤를르 드 푸코 [1] file 구인회 2010.07.27 2670
218 떼이야르드 샤르뎅 [2] 운영자 2008.09.04 2670
217 -정현종 ‘가을, 원수 같은 물님 2021.10.19 2666
216 눈물 [1] 물님 2011.12.22 2666
215 가을은 아프다 / 신 영 [2] 구인회 2010.09.11 2666
214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에 [1] 요새 2010.03.19 26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