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490227
  • Today : 1624
  • Yesterday : 1063


킬리만자로의 표범

2011.07.03 06:19

물님 조회 수:5786

 

 

킬리만자로의 표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 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라고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 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있는 내 청춘의 건배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은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 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꺽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하리 라라라-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킬리만자로의 표범 [2] 물님 2011.07.03 5786
242 세상의 등뼈 물님 2011.06.13 6451
241 폼 잡지 말고 [1] 하늘꽃 2011.06.02 5898
240 멀리 가는 물 [1] 물님 2011.05.24 6104
239 오 늘 - 구상 물님 2011.05.16 6018
238 한동안 그럴 것이다 물님 2011.05.05 6101
237 '차를 마셔요, 우리' - 이해인 물님 2011.04.21 5513
236 좋아하는 노래 : '청보리밭의 비밀' [2] 수행 2011.03.22 6318
235 마지막 향기 [2] 만나 2011.03.16 6118
234 비상 - 김재진 [3] 만나 2011.03.06 58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