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교회 내 아버지가 기뻐하심
2012.01.13 20:56
내 아버지가 기뻐하심
기권사님이 묻습니다. 왜 바보, 멍텅구리란 뜻의 '나발'이란 이름이 어떻게 지어진 거냐고요. 나발의 부모가 무슨 생각으로 자식의 이름을 그렇게 깎아내려 지었는지 당체 이해가 안된다 하시네요. 솔직이 왜 그런 이름이 지어졌는 지 잘 모르겠지만 생각나는 대로 답변했습니다. 성서가 당대에 지어진 책이 아니고 후대에 기록된 것으로서 역사적 사실을 신앙적 종교적 관점에서 기술하다보니 기자의 입장에서 이 전승에 등장하는 당시 나발의 행위가 얼마나 미련하고 바보같은 일인지 이 '나발'이란 이름이 바보의 상징이 돼 버린 게 아닌가 싶다고요.
이렇게 얼버무려서 대답하기 했지만 정말 나발이 바보일까요? 결론적으로 그 바보같은 행위가 그를 바보로 만들었지만, 그가 정말 어리석고 못난 바보인지 왜 그 상황에서 바보같은 짓을 하게된 건지 기자가 아닌 나발의 입장에서 그가 바보가 된 이유를 규명해 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하자 다윗은 끈 떨어진 매가 되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도망다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절대권력 앞에서 도망자의 무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남의 재산을 강탈하거나 아니면 후원을 받아 살아남을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사울의 입장에선 다윗과 은밀히 그들을 숨겨주거나 음식을 대준 자들이 눈에 가시일 수 밖에 없었을 거고 그래서 터진 사건이 다윗에게 먹을 것을 대 줬다는 이유로 사울이 보낸 군사들에 의해 놉땅의 아히멜렉과 그 족속들이 한꺼번에 몰살을 당한 사건입니다. 아마 이 소식은 나발에게도 전달되었을 거고 가뜩이나 다윗의 군대가 자신의 마온구역 주변에 주둔해 있던 터라 나발의 입장에선 뭔가 이 고약한 상황을 전환할 계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다윗에게 기름부은 사무엘이 죽기전까지는 나발은 자신이 무척 똑똑하고 운수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런지 모릅니다. 어쩌면 시류에 밝은 졸부의 꼼수와 잔머리가 발동했겠지요. 그 가운데 다윗과 그의 군대에겐 은근히 호의적인 척 했을 거고요. 그러나 돌연 사무엘이 죽고 놉땅의 제사장과 족속들이 몰살당한 사건은 시세를 읽는 그의 저울추의 평형이 한쪽으로기울게 됩니다. 내심 그는 사울과 다윗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저울질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급변하게 된 겁니다. 이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다가 사울을 지지하는 세력이나 왕의 안테나에 그가 제대로 걸려들거나 심각한 신경증적인 공포에 빠진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의 유별나고 난데 없는 꼬장과 과민반응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다윗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이다. 요즈음은 주인에게서 도망한 종들이 많다던데(삼상25)" 아무리 미련퉁이라도 그 많은 재산과 가솔을 관리하는 경영자인 나발이 그 유명한 이새의 아들 다윗을 모를 리 없고 그의 군사력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이런 우악스러운 악담을 퍼부우며 화를 돋구고 그를 무시한 태도는 무슨 숨겨진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 을 갖기에 충분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추측 가능한 것은 확실히 이 선에서 다윗과의 관계 를 청산코자 했던 것 같습니다. 다윗과의 관계 유지가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늦기 전에 다윗을 확 쫒아내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게 자신과 가솔을 지키고 부와 미래를 보장받는 일 이라고 여겼던 것처럼 보입니다. 백성을 해치지 않는 다윗의 성품을 보아할 때 이런 고약한 말로 그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겁니다.
그런데 나발의 계산과는 달리 다윗은 이 모욕을 들은 순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전 군사력을 동원하여 악귀 야차같이 나발과 그 일족을 다 패 죽이려 합니다. "내일 아침까지 그녀석의 패거리 중에 단 한 사내라도 살려둔다면 내가 마땅히 하나님께 어떤 형벌이라도 달게 받겠다(삼상25:22)" 이 풍전등화 같은 위기 상황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아비가일' 아이러니하게 바보같은 남편에 슬기로운 아내 아비가일의 등장. 아비가일의 섬광처럼 스쳐가는 판단력과 노련한 행위는 결국 다윗의 노기를 가라앉히고 그에게 다시금 평정을 가져다 줍니다. 아비가일은 아녀자의 몸으로 다윗 앞에 엎드려 애원했지만 결국 일어서 모든 것을 얻었고 다윗 역시 권토중래의 계기를 마련합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허둥대지 않은 여인의 현명한 처신과 평정이 누구도 원수 갚는 일 없이 본디 제 자리로 돌아가게 한 것입니다.
한편 나발은 지난날 다윗을 개무시한 자신을 대단하게 여겼던 것인지 일꾼들과 함께 왕처럼 호사스런 술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사실 일꾼들에게 그 자신은 왕과 같은 존재였고 다윗을 쫒아냈다고 하는 기분에 들 떠 객기와 술말고는 아무 것도 뵈는 게 없습니다. 다음날 아비가일은 지난날 있었던 일들을 나발에게 알려줍니다. 이 소식을 듣던 나발은 갑자기 실신하여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돌처럼 굳어져 열흘 만에 사망했다고 하는데...! 나발은 아비가일의 말에 심히 충격을 먹은 것 같습니다. 다윗과 그의 군대가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에 놀랐고 더구나 아무 것도 나발이 의도한 대로 되지 않은 것에 놀랐고 또 천하의 다윗이 노기에 분기탱천하여 자신과 일족을 다 죽이려 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던 것 같습니다. 즉 그의 사인은 전날 폭음과 그 폭음에 따른 아침에 심장 발작 게다가 아비가일의 증언이 불타는 가슴에 기름을 끼언져 자신의 뇌관에 불이 붙게 되고 급기야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나발은 시세를 읽는 자신의 영악한 판단으로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리고 허둥대다가 제발로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차버렸으며, 평생 모은 재산과 부자의 권좌를 한 순간에 잃어버리는가 하면 아름답고 지혜로운 아내, 아비가일마저 그의 마음에서 떠나고 끝내는 자기 목숨마저 버리는 치명적인 우를 범하고야 맙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고 얼빠진 일을 저지르고 만 거지요. 왜 세상이 나발을 가르켜 바보라 하는지 실마리가 풀립니다.
여기서 지혜로운 여인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아비가일의 시대의 부자 나발과의 부부관계는 그렇게 끈끈하거나 신통치 않아 보입니다. 둘 사이에 뭐가 꽉 막혀 전혀 소통이 안되는 관계라고나 할까요? 뭐든지 제맘대로 하려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독불장군같은 사람과는 부부라고 하여도 인내에 한계가 있고 오래가기 어려운 법. "그는 나발이라는 이름 그대로 악하고 마련한 사람입니다." "나발은 이제 중한 죄를 벗지 못하여 곧 죽을 것이고, 내 주를 해치려고 하는 모든 원수도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에게 고변한 이 말을 들여다보면 단지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책략이라고 하기에 좀 지나친 감이 있기에 말입니다.
다윗 역시나 결국 하느님께서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고 자신도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영욕의 생을 이어온 신앙의 사람 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어설프고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나발의 돌발적인 발언에 평정을 잃고 앞 뒤 가릴 것 없이 자신을 확 불태워 노기와 복수심으로 마치 사울이 다윗에게 먹을 것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놉땅의 아히멜락 제사장과 그 일족을 무참히 다 처죽인 것처럼 사울과 똑 같이 골리앗의 무시무시한 칼을 들어 나발의 일족을 다 처 죽일려고 했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여인 아비가일이 재기를 발휘하지 않았더라면 다윗의 만행을 역사는 기록했을 것이고 다윗이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잇고 가장 위대한 왕으로서 기려지기는 커녕 다윗이나 사울왕이나 다 똑 같은 부류로 취급했는지 모를일입니다. 이 다윗의 태도를 볼 때 우리가 얼마나 믿음과 신앙을 지키기 어려우며 신앙이고 사명이고 뭐고 간에 한 순간에 다 소실될 수 밖에 없는 공허한 존재라는 걸 알 수 있게 됩니다.
다행히 천명은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여인 아비가일의 출현으로 말귀가 없는 나발과는 달리 그나마 들을 귀가 있는 다윗에게 임하여 그의 칼을 내려 놓게하고 원수 값는 짓을 그만 두게 하고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자로서 하느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다시 본래의 다윗, 하느님의 눈길로 인도하심을 받는 차분하고 순전한 다윗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언제나 청정한 소망이 곱게 내려앉아 들을 귀 있고 눈 맑은 불재 물님의 말씀을 회상해 보면서 우리가 허둥대며 사는 생활 속에서 들을 귀 없는 영악한 나발처럼 한 순간에 영혼의 절벽으로 추락하여 바보가 될 수도 있고, 다윗과 같이 서운한 말 한 마디에 앞 뒤 안가리고 폭발하여 말로 죽이고 주먹을 들이대거나 칼을 들고 설처댈 수 있다는 게 바로 나와 너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만 우리가 구할 것은 바로 아비가일 '내 아버지가 기뻐하심' 이란 이름과 같이 내 아버지가 기뻐하실 수 있도록 몸과 맘을 닦고 보는 눈 들을 귀를 얻고 지혜를 달라고 겸손히 아뢰는 겁니다. 모든 인간의 혼 속에 하늘의 빛이 있고 그 빛 속에서 이 순간 내 어버지가 기뻐하시는 말씀이 보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으니, 하느님께서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s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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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입니다. 할렐루야 본래 선한 마음으로 돌아가도록 지혜를 구하옵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