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명기 목사님 추모시 - 이병창
2015.09.16 10:08
- 진달래교회의 영원한 당회장 은명기 목사님 추모시 -
시월의 강물 속에는
물 이병창
시월의 강물 속에는
하늘이 그대로 내려와 있습니다
하늘은 하늘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찾아야 하는 것임을
강물 속의 단풍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월의 강물을 들여다 보노라니
새 하늘과 새 땅을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존엄성을
그토록 목청 높이시던 당신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몇 번이고 돌다리도 두들겨보시는
모습도 보여지구요.
인간성이 무너지고
종교도 무너지고
나라도 무너져내리는 오늘
아직도 꼿꼿하신 모습을 뵙노라니
마음만 착잡합니다.
눈앞이 캄캄합니다.
은퇴 예배를 드리던 날
고목처럼 앉아계신 당신의 모습에 질려
앞동산으로 뛰쳐나가 숨을 고르던
그 날이 떠오릅니다.
오늘도 저는 그 날처럼
여전히 숨만 찹니다.
당신은 제 병을 알아주는 분이었지요.
저의 고집, 열병을 기도에 담아 주신 분이었지요.
사실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병도 앓을 만한 것 아니겠습니까.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아니하고
무너질 것 모두 무너져버려야
이 땅이 올바로 세워질까요.
겨울이 멀지 않았다지만
세월이 이토록 스산한 것은
찾아가 짐 부릴 사람이 없어서겠지요.
돈이 지배하는 세상
흐르는 물도 씻어 먹을
바보 같은 사람이 없어서겠지요.
깨끗이 살다가 깨끗이 죽어갈
그 한 사람이 없어서겠지요.
그립습니다.
꼬장꼬장하신 말씀 한 차례 하시고
무릎 꿇어 기도해 주시는 음성을 뒤로 하던
그 날이 눈물나게 그립습니다.
1998. 11. 5
진묵 은명기 목사 추모 문집 <<예루살렘 행진>>에서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81 | 몸을 입은 절망 [3] | 도도 | 2009.12.20 | 8608 |
280 | 지리산 천은사 [2] | 물님 | 2009.08.06 | 8457 |
279 | 새벽부터 취하는 날 [5] | 물님 | 2009.11.28 | 8200 |
278 | 안부 [3] | 물님 | 2009.08.17 | 8200 |
277 | 예전에 끄적였던 글.. [5] | 세상 | 2009.10.12 | 7911 |
276 | 물님께 [4] | 홍성미 | 2009.08.20 | 7869 |
275 | 상사화 [1] [1] | 물님 | 2009.06.03 | 7790 |
274 | 우리 사람이니까요 [91] | 지혜 | 2012.02.25 | 7777 |
273 | 기억하자 [1] | 물님 | 2009.06.11 | 7644 |
272 | 나의 사랑 나의 조국 [3] | 이규진 | 2009.10.06 | 76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