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석불사
숨 이병창
내 어린 날의 추억 속에서
할머니는 힘이 장사셨다
온종일 뙤약볕에서 홀로 밭매던 할머니
고구마밭 밭고랑을 자꾸 세면
밭을 못 맨다고 나무라시던 할머니
초파일이 가까워지는 날
할머니는 커다란 쌀자루를
어깨에 메고 길을 나섰다.
미륵산 못미처 자리한
작은 석불사.
누가 올려 세웠을까.
몸은 백제 시대 불상이라는데
눈이 큰 동네 아저씨의 얼굴이 얹혀 있었다.
목둘레마저 제대로 맞지 않던 부처님이
한순간 나를 보고 웃으셨다
먼저 내가 웃었던 까닭일까
돌아오는 길
부처님이 나를 보고 웃었다고 말해도
할머니는 가던 길처럼
오는 길도 말씀이 없으셨다.
그때 할머니는 어떤 부처님을 만나셨길래
한 말씀도 없으셨을까
* 익산 연동리 석불사의 석조여래좌상은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백제 최대(몸 높이 2.09m, 광배 3.34m)의 환조(丸彫. 한 덩어리의 돌로 제작한 3차원 입체 조각) 석불이다. 후세에 불두를 얹어 놓았는데 광대 형상의 얼굴이라 해서 문화재청과 익산시가 다시 복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수백 년 세월 동안 지역 민중의 가슴을 보듬어온 불상을 못생겼다고 하는 이유로 바꾸는 것은 함부로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십억 인류의 얼굴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불상의 얼굴도 다양하게 다를 수 있지 않은가. 석불사의 석불은 할머니와 옛날 무명의 석공 가슴 속에 자리한 붓다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불두를 내려놓고 각자가 자신 안에 있는 부처의 얼굴을 올려놓으라고 하면 좋지 않을까, 대한민국에 그런 절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267 | 장미색아까시나무 순창동계언니들 | 도도 | 2020.05.30 | 5140 |
1266 | 청보리수가 열릴 무렵에 | 도도 | 2020.05.30 | 4635 |
1265 | 우명산 도덕사 - 숨님 시 | 도도 | 2020.05.26 | 5522 |
1264 | 무여스님 | 도도 | 2020.05.25 | 18253 |
1263 | 경각산 맨발 접지예배 | 도도 | 2020.05.18 | 13347 |
1262 | 불재 접지마당 | 도도 | 2020.05.05 | 4582 |
1261 | 참나무 표고버섯 재배 첫경험 | 도도 | 2020.04.27 | 5365 |
1260 | 평화통일 <일요>기도회 | 도도 | 2020.04.21 | 4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