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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토르소」

2012.03.27 07:27

물님 조회 수:5597

 

 

이장욱, 「토르소」

 
 
 
 
  손가락은 외로움을 위해 팔고
  귀는 죄책감을 위해 팔았다.
  코는 실망하지 않기 위해 팔았으며
  흰 치아는 한 번에 한 개씩
  오해를 위해 팔았다.
 
  나는 습관이 없고
  냉혈한의 표정이 없고
  옷걸이에 걸리지도 않는다.
  누가 나를 입을 수 있나.
  악수를 하거나
  이어달리기는?
 
  나는 열심히 트랙을 달렸다.
  검은 서류가방을 든 채 중요한 협상을 진행하고
  밤의 쇼윈도우에 서서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보았다.
  악수는 할 수 없겠지만
  이미 정해진 자세로
  긴 목과
  굳은 어깨로
 
  당신이 밤의 상점을 지나갔다.
  헤이,
  내가 당신을 부르자 당신이 고개를 돌렸다.
  캄캄하게 뚫린 당신의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치는 순간,
 
  아마도 우리는 언젠가
  만난 적이 있다.
  아마도 내가
  당신의 그림자였던 적이.
  당신이 나의 손과
  발목
  그리고 얼굴이었던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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