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의 편지 / 흑 자
2013.02.04 19:39
“당신의 인생은 흑자인가 적자인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적자”라며 씁쓸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유를 물으면 자신의 원대로 이루지 못한 삶을 한탄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그분의 뜻으로 착각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의 주권 안에 있는 우리가 자신의 계획이 지체되거나 막히는 것을 무조건 사탄의 행위라고 할 수는 없지요. 흑자와 적자라는 의미가 그렇게 규정되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모두가 겨울은 추운 계절이고, 여름은 무더운 계절이라고 하는데 어떤 이는 겨울은 따뜻한 계절이고, 여름은 시원한 계절이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겨울만큼 따뜻함으로 행복해지고, 여름만큼 시원함으로 행복해지는 계절이 없더군요. 같은 상황에서도 긍정과 부정의 차이지요. 장애를 가진 내가 어쩌면 평생 남에게 기생(寄生)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받는 삶보다는 주는 삶을 소원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러한 강박관념에서 조금은 벗어났지만 주는 삶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른 이들처럼 후원 요청이나 모금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결국 나는 여지껏 받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누구에겐가 기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주려할 때면 미처 행동에 옮기기도 전에 그분은 늘 더 많은 것으로 부어주셨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역설론(눅6:38)은 실현이 되어 나타나는 살아있는 논리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모태에서 알몸(욥1:21)으로 나와 숨을 쉴 수 있는 공기를 비롯해 온통 흑자 속에 살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적자운운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강추위가 예년보다 일찍 시작되어서인지 2월이 되기도 전부터 미세하게 봄기운이 감돌더니 오늘은 비가 내립니다. 깊은 밤, 눈을 감고 누우면 봄을 재촉하는 비는 누군가의 기척처럼 토닥토닥 소리를 냅니다. 언 땅을 다정하게 도닥여주고, 사랑스럽게 어루만져 주며 흙과 하나가 되어 깊이깊이 생명의 기운으로 스며듭니다. 이제 파릇한 새순과 꽃을 만나게 될 날도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오래 전부터 입어보고 싶었던 레이스 스커트를 하나 샀습니다.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올 봄에는 그 스커트를 입고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호사(豪奢)를 누려보고 싶습니다. 오늘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은 나는 지금도 이렇게 흑자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부족하고 늘 허물진 가운데 있는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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