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요?
2022.06.05 01:54
당신은 누구요?
요한복음 1:19- 34
예수와 적대관계였고 결국 십자가 처형을 주도했던 유대의 지도자들을 요한 기자는 ' 그 유대인들'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현대어 성경은 '유대의 지도자들이라고 친절하게 번역하고 있다. 이 말은 요한복음서에 70여회 등장하는 데 '그 유대인들'에게 재판을 받는 18 -19장에서 20번이나 나오고 있다. 예수와 그 유대인들은 서로를 악마라고 공격했다.
" 너희는 악마의 자식들이므로 악마가 하는 악한 일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는 처음부터 살인자이며 진리를 미워한다. 그 속에 진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는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 (8:44)
우리는 예수도 유대인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도, 반대하는 적대자들도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양쪽의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유대의 지도자들’이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대립과 충돌은 교회가 형성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요한복음서에서 '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알아차리지 못한 당시 유대의 지도자들을 간접적으로 지목하는 용어이다.
'그 유대인들'이 보낸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세례요한에게 찾아와 '혹시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물었다. 이렇게 물은 것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로 보았다는 반증이다. 그들은 '아니오'라고 부정하는 세례요한에게 세 번이나 거듭해서 물었다. 그리스도도 아니요 (1:20). 엘리야도 아니요. ( 1:21) 우리가 기다리는 예언자도 아니라고 세례 요한은 말했다. 기대했던 답을 듣지 못한 유대인들은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요? 라고 다그치며 질문했다. 이 질문에 세례요한은 이사야서 40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 우리 주님이 통과하실 큰 길을 닦아 놓아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을 많은 사람들을 예수에게 인도하는 증언자라고 말한 것이다.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서처럼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보도가 없다. 다만 세례 요한의 입을 빌려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1:32)
사람들은 세례를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런 관점 때문에 요한복음은 세례 사건에 대한 보도를 하지 않고 있고 있다. 이 문제가 당시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마태복음서는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설득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 마태 3: 14- 15). 세례 요한은 일관되게 예수는 자신보다 위대한 분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는 노예들이 하는 신발끈을 푸는 것 조차도 황송하다고 한다. 3장에는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이 나오는 데 역시 이 관점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를 만난 세례 요한은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1:29)하고 외쳤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12장에 등장하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장자들이 구원 받았던 사건을 연상 시킨다. 또한 어린 양이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제물로 바쳐지는 것처럼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 죄를 없애기 위해서 대신 고통 받는 종으로 비유하고 있다. ( 사 53:4-7)
세례 요한은 물로 주는 자신의 세례와 예수의 성령 세례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 자신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지만 예수는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으로서 성령의 세례를 베푸실 수 있는 분이다. 세례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를 이어 예수의 성령 세례가 선포되면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받은 계시를 확인한 내용을 증언함으로써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말의 배경은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것은 다윗의 후손 중에 이스라엘을 다시리는 사람이 나타나리라는 약속이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 사무 후 7:14)
세례요한은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언한다. 이 말을 듣고 제자 두 사람이 예수께 가라는 말로 알아듣고 예수를 찾아 나섰다. 이 본문을 보면 예수의 첫 제자들은 세례요한의 제자로 추정 된다. 1:36-37절은 ‘따르다’라는 말이 반복해서 두 번 등장한다. 예수에게 바짝 붙어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디에 머무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38) 따라 붙은 사람의 뒤를 또 따라 붙는 사람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예수를 직접 따르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뒤를 따라서, 누구 때문에 따르는 사람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두 제자는 스승과 제자로서의 ‘따름’ 아니라 그냥 알아보기 위해서 따라 갔다.
예수는 세례 요한의 제자인 그들에게 “무엇을 찾느냐?” 고 물었다. 바로 이 질문이 중요하다. 복음서에서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나는 무엇을 찾아서 예수에게 왔는가? 복음서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찾았다.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 꼬투리를 잡아 죽이기 위해서 --- . 게쎄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빈 무덤 밖에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도 예수는 누구를 찾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의 내용이 신앙의 내용이고 인생의 내용이 된다.
무엇을 찾느냐?는 질문에 조금은 우왕좌왕하는 두 사람에게 예수는 ‘와서 보아라’라고 말씀했다. 그 말씀은 재촉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묻고 찾아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말씀이다. 요한복음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예수의 질문에 대한 나 자신의 대답을 준비하고 찾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나는 무엇을 찾아 헤매는 사람인가?에 대한 대답을.
만남은 이어짐으로
복음은 좋은 소식, 기쁨의 소식이다. 그 좋은 소식을 듣고 알았다면 그는 주변 사람에게 입을 열어 말하게 될 것이다. 안드레와 다른 제자는 오후 반나절을 예수와 함께 보내고 그의 형 시몬에게 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스 말로는 그리스도, 히브리 말로는 메씨아다. 그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다.)
안드레는 사람들을 예수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잘 한 사람이다.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최초의 제자이며 세례 요한과 예수를 이어주는 징검돌의 역할을 했다.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사건에서도 그는 믿음으로 도시락을 가진 어린아이를 예수에게 데려왔다. (12:22) 안드레 때문에 그의 형 베드로가 예수의 수제자가 되었다. 시몬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로 모두 바위라는 이름의 ‘게파’가 되었다. 안드레의 행동은 단순했지만 그 결과는 세상을 바꾸었다. 안드레 덕분에 복음은 이곳 불재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요한복음서를 다시 읽으면서 나는 안드레를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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