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490246
  • Today : 1643
  • Yesterday : 1063


백글로리아님과 주일 예배[5.19]

2013.05.19 22:16

구인회 조회 수:4668

 2.jpg

 

 1.jpg

 

3.jpg

 

4.jpg

 

5.jpg

 

6.jpg

 

 

                                                                                                                                    

                 

                        백글로리아님과 주일 예배       


 

  참새들의둥우리 백글로리아님을 생각하면 가슴 뭉클해집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요 또 슬픔의 눈물이기도 합니다.

  머나 먼 이국땅 이름 없는 참새 한마리 마음 저며

  쓸쓸하고 아픈 영혼을 붙들고 어쩔줄 몰라 슬피 우는 마음

  그 마음 곁에서 같이 괴로워 하고 통곡하는 예수님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

  서로 감싸고 지켜 길어 올리는 새벽이라

 "오로지 우리 삶이 아버지의 영광 위해서만 피고 지게 해주시오며

  우리의 맘 속에 당신의 평화 넘쳐 흐르게 하시고

  영육으로 굶주린 불쌍한 모든 영혼들이 세계 곳곳에서 날라와

  위로 받고 쉬어가는 영의 역사가 불꽃처럼 일게 해 주시옵소서."

                                                             -글로리아 패트무리

  오늘은 글로리아 목사님을 통해 온 몸으로 체험한 생수처럼 맑고

  시원한 복음의 소식을 듣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제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면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그 분 앞에서 복덩이임을 알 수

  있게 되고 , 우리가 그분에 대해서 알고자 노력하고 아는 만큼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 밖에 모르니까 조금 아는 만큼 밖에

  못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분에 대해서 많이 알고 더 가까이

  하면 할 수록 그분은 한 없이 크게 주십니다.

  그리고 내 생명은 하늘에서 주신 소중한 생명이요 다 천사입니다.

  그런데 한 부분이 잘 못되거나 죄를 짓는 경우에 실의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 한 부분에 의해서 천사됨이 소멸되지 않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 내가 발 딛고 가는 곳마다 내 손 움직이고 내 발로

  걸을 때마다 내 행복을 외치면서 사는 것이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

  이라 여기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물님과 여러분들께 보답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분을 위해 산다는 것이 이 모양 이 꼴이라며 겸손히 말씀을

  전하시는 글로리아 목사님. 삶의 순간순간 마다 사랑의 길 가시는

  님의 말씀을 통해 영혼의 생수를 마십니다.

 

  이어서 장수 장안산 지지리 "예수회 소화 피정의 집" 원장수녀님이

  큰 울림으로 말씀을 주시니 삶의 큰 궤적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소화 수녀회에서는 '빈손'이라는 책으로 연구하는데, 그 한 대목이

  다름 아닌 '사막의 모래알의 영성'에 대해서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공동체 안에서 모든 이에게 밟힐 수 있는 모래알이 되고,

  그 모래알 마저 없어지는 '무'로 돌아가는데, 그 만큼 내가 작아지고

  내가 없어져야 비로소 검산의 칼날도 무뎌지는 것입니다.

  내 자아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한 안 될 것입니다.

  소화 테레사는 온통 사랑의 덩어리였습니다. 

  벌레의 신비에 대해서 말씀이 있었는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벌레처럼 무참히 짓밟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같이 벌레처럼 죽어간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우리의 영성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은총으로 이뤄집니다.

  내 힘으로 안 된다고 예수님 앞에 두손 들었을 때 은총이 옵니다.

  산천초목을 보면서 하느님의 사랑은 나 하나 만을 위해서라도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랑이 나한테 오면 화내는 일도 없고 용서도 될 것입니다."

  글로리아 목사님은 원장수녀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희생을 희생인줄 모르는 삶을 그렇게 사신다며, 본인이 힘들었을때

  단지 옆에 만 있어도 에너지가 생기는 분이라고 합니다.

  또 삶에서 영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 분이며

  이 분 마음 안에 참 종교가 있다고 하십니다.

  수녀님들이 자신의 세계에서 사시는데 오늘은 특별히 우리를 위해

  우주 만물이 사랑의 덩어리이니까 이걸 보여 주시기 위해

  모셔 왔다고 하시는 글로리아님의 각별하신 사랑이 느껴집니다.

 

  소중한 영성을 만나도록 자리를 마련한 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을 살피려고 안 한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도 못하고 제대로 만나지도 못한다.

  그러니 서로 답답해 하고 보는 사람도 답답하다.

  같은 말을 해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못 알아 듣는다.

  이렇게 불통이 심해지면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

  서로가 틀렸다고 생각하며 그것에 따른 공격성이 드러난다.

  평화를 위해서 지금 내가 어떤 감정 생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명철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그게 어렵다.

  대게 싸움의 내용이 그런 것이다.

  사실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나 다 같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에 대한 관점과 생각이 다른 것일 뿐이다.

  싸움의 기본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 하나님을 진짜 믿고 불꽃이 튀는 사람들은 싸울 수 없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받아드리기 쉽지않다.

  엊그제 보도에 의하면 타국인에 대해 가장 배타성이 큰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중국사람들조차 발 붙이지 못하는 나라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애적인 사상을 모두 다 인정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나타나 당시 복음을 전했을 때에는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와 똑 같은 박해가 일어났다.

  당시 유대는 율법주의와 민족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이 민족주의와 율법주의로 유지되는 세상에서 인류를 애기하고

  인류의 구원을 애기하면서 그 틀을 깬 예수님을 가만둘 수 없었다.

  본문에 율법에 대해서 나오는데 초기 율법은 그것이 진리의 핵심

  으로 보았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해석하는 사람들 중 율법학자와

  제사장 그룹이 있었는데 중요도에 따라 율법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 맘대로 가벼운 율법과 무거운 율법으로 나눠진 것이 바로

  그것이며, 예수님이 이걸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이 주는 은혜와 자유가 있다.

  그런데 은혜와 복음은 율법이 씨앗임을 알아야 한다.

  풀 틸리히는 신앙을 세 단계로 구분하여 타율적 단계

  자율적 단계, 신율적 단계로 구분하였다.

  예수님이 성령의 이끌림을 받고 나간 것처럼 인도하심으로 나가는

  것이 신율의 단계다.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잃어 버리고 은혜와 구원을 애기하는데

  그런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소명이라면 작은 것이라도 성실히 임해야 된다.

  한번은 카쟈흐스탄 사원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방을 나갈 때

  뒷걸음질 치며 나가는 사람, 문설주에 입을 맞추는 사람이 있는데

  그 진지하고 정성어린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거룩한 것으로 지켜지는 신앙의 태도에 눈물이 다 났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는 태도로 보이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즉 태도가 구원이다.

  그 본질의 마음에 뭐가 있는지 살펴보고 형식과 내용적인 측면에서

  두가지 같이 가고 진짜 정성어린 예배를 드려야 한다.

  본문은 이 두가지에 대해서 눈길을 돌릴 수 없는 가르침을 주신다.

 

  오늘은 하느님이 허락하신 축복의 날 구원의 날,

  쌓지 않고 남을 위하여 살면 살수록 그의 삶은 더욱 풍요하다고

  하는데, 낮추고 또 낮추어 낮은 곳에 계신 신을 만남으로

  그 신과 함께 오르고 또 오르는 님을 만남으로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삶의 복판을 향하여 발걸음을 디딥니다.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