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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움 소비하는 종교인들

2009.04.20 07:32

물님 조회 수:16813

성스러움 소비하는 종교인들

목회사회학연구소 심층면접에서 드러난 한국인의 종교성

목회사회학연구소(소장 조성돈)는 지난 9월 29일 서울에 있는 한 성당의 도움을 받아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 10명을 집담회 형식으로 면접했고, 그 가운데 3명은 따로 만나서 일대일로 심층면접했다. 이들 외에 4명을 더 심층면접했다. 면접 대상이 모두 여성이었으므로 이후 남성 개종자 2명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목회사회학연구소는 이들을 심층면접한 결과는 11월 30일 ‘개종자를 통해 본 한국인의 종교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다음은 이승훈 교수(한림대 연구교수)가 발표한 분석 결과다(편집자 주)

 

▲ 이승훈 교수는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이 약하고 가족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평가했다.

종교생활의 가족주의

 

우리가 만난 개종자들 중의 절반 정도는 결혼 때문에 개종을 했다고 말한다. 스스로 생각해 볼 때 지금도 자신이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는 확신이 없다고 말한 한 30대 여성은, 결혼 상대자의 가족이 천주교 신자였는데 시어머니 되실 분이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다 같이 성당에 나가야 한다는 것은 양보할 수 없다며” 결혼을 할 경우 천주교로 개종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가족은 모두 한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기에 시어머니가 그리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50대 후반에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시어머니는 천주교 신자로서 정체성이 없이 하나의 취미 생활을 하듯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교회의 집사나 권사처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문제가 있으면 신앙으로 해결을 하고, 가정예배도 드리고 그랬다면 아마 자신도 확실한 천주교 신자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시어머니는 그런 열심이나 확실한 신앙관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어머니는 가족은 하나의 종교를 가져야 한다며 천주교로 가정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러한 신앙 문제로 목사님들과 고민 상담을 하게 되었을 때, 한 분 목사님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분들은 “가정의 화복이 제일 우선”이니 시어머니의 뜻을 따르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종교생활의 가족주의를 보게 된다. 가족주의란 자신의 의사보다는 가족의 의사를 중시하고 자신의 이익이나 발전보다도 가족의 이익이나 발전을 더 우선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유교에 바탕을 둔 우리 사회의 가족주의는 서구의 개인본위의 가족주의에 비하여, 가족의 집단적인 필요에 개인의 생활을 전적으로 얽어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부부가 다른 종교를 갖는 경우도 많고, 일요일이 되면 같은 개신교라도 서로 다른 교파에 속한 교회에 따로따로 출석하는 일도 적지 않은 서양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이라면 당연히 하나의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느 종교에서나 볼 수 있는 사실이다.

 

개종 경험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가족주의 현상의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개신교에서는 자식이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부모가 다니는 교회에 나오도록 강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인의 의사나 권리보다는 가족의 의사가 우선시되는 것이다. 한편 제사 등의 문제로 가족들과의 마찰이 두려워 천주교로 개종했다는 것에서도, 우리 문화의 가족주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결국 가족 내의 갈등이나 마찰이 싫기 때문에 개종을 했다는 것으로, 가족이 개인 신앙의 문제도 보다도 종교 선택에 있어서 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개신교에서 천주교로의 개종이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종교의 결정이 교리상의 옳고 그름의 문제나 개인 신앙의 양심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가족주의’라는 뿌리 깊은 문화적 토대가 개종의 문제에도 깊이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천주교로 개종하는 문제에 대한 개신교 목회자들에게 조언을 구해보았다는 한 사람은, 한 목회자만 제외하고는 모두 가족 화목이 우선이니 일단 시댁에 의견을 따르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은 개신교 목회자들 역시 유교식 가족주의 전통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개종을 거부한다면 가정의 평화는 깨지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단순히 의례에 참여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을 포괄하고 있는 것인데,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개종을 한다고 하는 것은 현실과의 타협이라는 차원을 넘어 개인에게 삶의 의미를 앗아가 버리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 매우 위험한 판단이라고 여겨진다.

 

개종을 반대한 한 명의 목회자의 반대 이유는 천주교를 믿으면 천국에 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실 이 개종자는 이 문제로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듯이 보였다. 지금이라도 어느 목사님이 천주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해 준다면 자신은 마음 편하게 개종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세의 구원은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종교가 내세에 대해서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내세에 대한 희망으로 오늘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목표와 태도를 방향 짓는 것이다. 그러나 개종자들의 고민은 내세에 대한 구원의 문제나 종교 의례에 익숙하지 못한 것 때문일 뿐, 현재에서의 삶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이것은 개신교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종교 지도자와 종교인들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문제로 남는다.

 

정체성이 약한 종교인

 

이번 연구에서는 뜻밖에도 면접에 응한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큰 갈등 없이 개종을 하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개신교와 천주교는 형제 종교이며 “두 종교의 차이는 ‘하나님’과 ‘하느님’의 차이 밖에 없다.”는 말로 개종 과정에 큰 갈등이 없었음을 나타내었다. 천주교 기관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천주교인의 개신교 교리에 대한 호의도는 긍정적인 반응이 10.3%인데 반해 부정적인 반응이 51%로 불교나 유교보다도 호의도가 낮게 나타났음에도(우리신학연구소,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서울: 가톨릭신문사, 2000), 194쪽), 면접에 응한 사람들은 대체로 교리상에 큰 차이가 없다고 응답했다. 개신교와 천주교가 같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두 종교는 교리면에서나 의례면에서, 그리고 그 밖에 여러 면에서 차이가 존재함에도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며 갈등 없이 개종하였다는 것은 이들이 애초부터 개신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매우 약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천주교 내부의 분석에서도 지적되는 점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스스로 천주교 신자로서 정체성을 표현한 사람이 많아졌지만, 실제 신앙생활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수년 간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냉담자 증가의 문제, 곧 성사생활과 주일미사 참석 등 일상적인 신앙생활의 침체 현상은 금년도 ‘한국천주교회통계’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는 것이다(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 ‘2005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를 발표하며’, 3쪽). 언뜻 천주교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는 현상과 주일미사 참석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정반대의 현상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종교가 깊은 실존 차원의 결단이기 보다는, 지극히 사소하고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곧 종교 정체성의 깊이가 이들의 삶 가운데서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어떤 종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전혀 다른 삶의 양식으로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데 대한 고민 없이 종교인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사실 많은 교회들이 개신교인이라는 것이 어떤 사람인지, 개신교인이라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가르치지 않는다. 따라서 개종을 결심하는 데에도 종교의 본질이나 교리의 차이, 또한 현실 세계에서의 삶의 지향성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큰 고민이 없이 단지 겉으로 드러난 현상적인 요인에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만난 개종자들 중 절반가량이 교회에 다녔을 때 교사나 찬양대 봉사를 한 경험도 있었지만, 이러한 봉사의 경험이 개종을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앞에서 소개한 한 여성 개종자의 경우, 자신은 교회의 가식적인 면에 염증을 느껴 천주교로 갔지만 자신의 남편은 교회에 오래 다니면서 교리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쉽게 개종하지 못하고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것은 한국의 많은 개신교 교회들이 사람을 끌어들여서 자기 교회 교인 만드는 데에는 열심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신교 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도와주고 그들이 실제 삶 속에서 개신교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는 데에는 매우 인색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한국 교회에서 전도의 방법이나 교육 방법에서 많은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또 하나의 문제는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해서 활동을 하는 20~30%의 교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이른바 ‘헌신된’ 일부 사람에 초점을 맞춰 교육이 이루어지고 교회 행정을 포함한 모든 활동이 이들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들은 교회 안에서 과중한 책임으로 인해 큰 부담을 가지게 되는데 반해, 주변인으로 머물러 있는 70~80%의 교인들은 자신이 개신교인이라는 정체성도 없이 하나의 의례로서 예배에 참여하며 종교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교회의 구조와 조직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위치

 

기독교가 처음 이 땅에 들어왔을 때에는 신종교로서 기독교로의 개종에 대하여 국가와 사회로부터의 박해가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전래된 지 100년 또는 200년이 지난 오늘에는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그러한 정체성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지식정보화 사회 또는 포스트모던 사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제도 종교의 의례, 가르침, 계율은 따르지 않으면서 개인적 신앙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다. 낮은 종교 정체성은 바로 이러한 현대 사회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계산적이고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누구나가 정서적이고 성스러운 분위기에서의 안식을 원한다. 천주교가 가지는 성스러운 이미지는 현대인들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반면 개신교회 내에서는 경쟁적인 사회생활이 교회 안에서조차 반복되고 있다고 느끼며, 그만큼 세속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식사 자리에서 최근 종교 인구를 화제로 꺼냈을 때, 한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정치에 출마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받는 권고 사항은, 선거 있기 약 3개월 전부터 지역의 대형교회에 출석하라는 것이다.” 그만큼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거룩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경쟁, 출세, 돈 등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천주교의 성스러운 이미지는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다원주의 시대, 문화적 상대주의 태도 등도 융통성 있는 천주교 이미지와 선택적 친화력이 있는 부분이다. 다른 종교, 다른 문화 등에 대해 개신교는 폐쇄적인데 비해, 천주교는 개방적이라는 사실 또한 다원주의 사회라는 현대 사회의 추세와 천주교가 선택적 친화력을 가지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천주교에서 술 담배에 대해 관대하기 때문에 이 문제로 갈등을 하는 남성들이 천주교를 선호할 수 있다. 또한 제사 문제에 대해서도 천주교는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피임이나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것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종교성은 역시 외형을 중시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종교인이라는 정체성 회복을 바라며

 

우리는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옮겨간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종교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개종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개신교가 좋으냐 천주교가 좋으냐를 논하려는 것도 아니다. 애초부터 개종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이기에 개신교의 단점들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이 단점들은 개신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단점이라기보다는 ‘오늘날 개신교 교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현상에 대해 개종을 경험한 사람들이 느낀 단점’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이 땅의 개신교 교회들에게 깊이 성찰해야 할 필요를 던져준다.

 

현대와 같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종교 공동체의 우월함을 일방으로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종교 인구 자체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들이 선택한 종교가 가르치는 바대로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각 공동체에 속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정체성은 다른 종교인들을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가지고 있는 종교와 종교 신념을 서로서로 존중하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정체성이어야 할 것이다.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회 활동에 충실할 때 우리 사회에서 종교는 비종교인으로부터 존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공신력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승훈 / 한림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