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의 편지 / 산 자와 죽은 자
2012.05.08 10:56
TV 동물프로에서 본 어느 어미 원숭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죽은 지가 오래 되어 나뭇가지처럼 바짝 말라버린 새끼의 사체를
끝내 버리지 못하고 쥐고 다니던 모습은 안타까운 모성이었습니다.
삶과 죽음, 그 엄숙한 경계선은 이 세상에서 늘 절망과 비극으로 존재해 왔으며
끊을 수 없는 정은 한(恨)이 되어 유난히 정이 많은 우리 민족은 고난의 역사를 떠나서도
한 많은 민족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의식이나 문화에는 한이 서려있어 인생 자체가 눈물이요,
탄식이요, 한숨으로 점철되어 그 한이 소리가 되고 이야기가 되고 춤이 되었습니다.
장성한 자식을 끝까지 품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부모의 정도 유별나지만
이미 삶의 경계선을 벗어나 이승을 떠난 부모에 대한 효성도
우리 민족처럼 지극한 민족은 드물 것으로 생각합니다.
생존할 때보다 더 정성을 들이는 제사법이나,
망자(亡者)의 묘에서 시묘(侍墓)살이를 하는 풍습이나,
죽은 지아비를 받드는 수절이나,
명절이면 절대자 대신 죽은 조상에게 감사제를 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그렇게 조선은 죽은 자를 위한 나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우리 민족은 살아있을 때보다 죽어서 대우받는 민족이었습니다.
죽음이 임박하여 육신이 폐하게 되는 첫 번째 증거는 음식을 먹을 능력을 상실하는 것인데
육신을 아주 떠나버린 영혼이 어떻게 진수성찬을 포식할 수 있을까요?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린도 전서 10:20)
야외예배 장소를 찾다가 잔디며 정원 등 작은 공원처럼 손질을 아주 잘 해놓은
대궐 같은 집을 발견했는데 사람이 살지는 않는 것처럼 적막했습니다.
알고 보니 어느 부잣집이 조상을 모시는 곳으로 지어놓은 곳이라는 것입니다.
순간 내 입에서 “와~ 정말 귀신들의 낙원이네”라는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죽은 자와의 소중한 추억이야 아름답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우매함은
자기감정에 따른 빗나간 효도요, 일종의 자기만족인지도 모릅니다.
산 자가 죽은 자의 일에 관여할 수 없는 것처럼 죽은 자가 산 자의 일에 관여할 수도 없는 것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요, 불교에서도 죽은 자의 영혼이 살아있는 자와 함께 하는 것은
호의든 악의든 좋지 않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눅9:57) 또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막12:27)라는
예수의 말씀들은 영적인 의미지만 삶과 죽음을 분명하게 구분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살아서 할 일과 죽어서 할 일이 있습니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살아있는 것에 충실할 일이지 이미 죽은 대상에게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는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어버이의 은혜를 생각하는 5월인데
나 역시 생존해 계신 어머니께 제대로 된 효도 한 번 못하다가
어리석게도 떠나신 후에야 연연하게 되지 않을지 모를 일입니다.
신록은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환희입니다.
이렇게 눈부시게 타오르는 생명이 머무는 동안 살아 있는 모든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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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물질이 서로 융합되어 있고
생사가 나와 함게 머물고 있는 데
이승 저승을 어찌 나눌 수 있을까 싶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하셨고
너희 보뮬울 하늘에 쌓아 두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는 데
다만 땅에서 땅만 바라보고 사는 눈먼 인생이 문제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