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의 편지
2011.06.07 09:48
가온의 편지/사막을 지나
첫날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벌레소리와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내가
도로를 지나는 차바퀴와 크랙션 소리,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 다방의 수런거림 속에서
그 밤, 나는 문득 번잡한 세상 한복판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이요,
그분께서 나를 이곳에 이 모습으로
데려다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꿀벌처럼 잉잉거리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
나는 시골에서 조용하게 안주하고픈 간절함으로
지쳐있었습니다.
치열하게 살아온 내 삶에
언제부터인가 산(山)은 없었으며,
산을 의식하고 싶지도 않은 채
현실에 이끌리고 세월에 떠밀려 오고 있었지요.
산이 있다는 것은 정진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만
스티브 도나휴(Steve Donahue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의 저자)는 인생의 대부분은
산이 아니라 사막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직장을 옮기는 것은 산이지만
직업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사막이다......
암을 이겨내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과 같지만
만성질환이나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산과 사막으로 이어져있지만
우리는 거의 산만을 의식하고
사막은 보지 못하면서 가고 있는 셈이지요.
길을 잃어 본 자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했던가요?
반드시 산에 오르는 것만이
인생이 아님을 안다면
어느 날 산봉우리가 보이지 않는
사하라 사막에 이르게 되더라도
성급하게 불행을 예측하는 대신
차라리 눈을 감고 내 속의 나침반을
가늠하며 따라갈 일입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이 어느 날,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
또 다른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게 인생이지요.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10:23)
산을 올려다보지 않고 지냈던 그동안이
어쩌면 내게도 의식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사막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사막에서 숨 쉬던 내가 어느 날,
하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에 내몰려
이곳에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인식과 개념도 잡혀있지 않은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만남과 대화, 그리고 내가 쓰는 글들을
주변에 나누면서 남편과는 주 중의 몇 날을
따로 생활하지만 대신 지적장애를 가진 자매를
딸처럼 돌보며 편안함 보다는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둘만의 안일한 삶보다는
다른 이들과 더불어 섬기며 살라는
그분의 영광스럽고도 거룩한 명령을
받은 자들인가 봅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몸살이 날 것 같은 부단함이
늘 우리 속에 불씨로 살아 있으니까요.
아마도 연약한 나를 안고 계시는 하나님,
내 속에 나침반으로 계시는 성령의 이끄심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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