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보면
2011.12.05 23:27
그림을 그리는 조카 녀석은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한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서 자기 그림을 본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재능을 가진 녀석은 가까이서는 볼 수 없는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볼 줄 알았습니다.
우리가 그려가고 있는 ‘삶’이라는 그림도 가끔은
아니, 종종 멀리서 바라 볼 일입니다.
그럴 때 어떤 상황이든지 고착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지나가는 유동적인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작은 일을 붙잡고
거기에 매여 있는 자신도 볼 수 있지요.
멀리서 보면 가까이서는 보이지 않는 시작점과 끝점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누군가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비천하게 태어난 나사렛 청년 인간 예수가
오늘도 우리 마음을 뜨겁게 감동시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의 말 한 마디 가슴에 품으면 죽었던 심장도 뛰게 만드는
그 생명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메시야니까? 아닙니다.
그러한 신성이 능력과 역사를 이룰 수는 있지만
주어진 직책이나 특정한 자격이란 우리에게 오히려 버겁고 짐이 될 때가 많지요.
그가 감동을 살았던 것은 그의 인격으로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영적인 시야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아버지의 원’(눅22:42)을 볼 수 있었으며
‘여기’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나라’(눅12:32)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행동이, 그 살아있는 사랑의 심장이,
보잘 것 없는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라는 여건에서도
온 인류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답답하고 불만스러울 때가 있다 하더라도 돌이켜보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쓰려오는 슬픔과 절망의 회색빛 터널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습니까?
시시때때로 검은 구름이 일고 비바람이 몰아치기도 하지만 풍랑 이는 바다가 풍어를 가져오듯이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통해 말할 수 없는 은총과 새 힘을 얻으며 가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기억하는 시가 있습니다. 그대에게
詩 이병창
그리워는 해도 여기에서 보면 ㅡ. 이 시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마지막 구절인 ‘여기에서 보면’입니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을 ‘여기에서 보면’이라고 하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모든 상황을 과연 어디에서 보고 있습니까? 해마다 이때쯤이면 자기 빛깔의 절정에 도달한 공작단풍은 아직도 마당 한 켠에서 전율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꼭 튀는 음을 내지 않더라도 내 삶의 현(絃)을 느슨하게 조율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여유를 가지고 늘 ‘여기’에서 나의 삶을,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더불어 오늘도 그리고 또 다시 밝아오는 새해에도 우리 모두의 자리는 ‘여기’가 되기를 바람해봅니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꿈이 있어 늘 밝고 아름답기만한 조카 녀석의 그림.
염려하지는 않겠소
손 시린 세상의 능선길을 걸어가는
그대의 뒷모습에서
흐르는 외로움이 발자국마다
고여 있다 해도
나는 그대를 염려하지 않겠소.
여기에서 보면
그대의 먹구름 위에는
늘 환히 비추는 햇살이
빛나고 있소
여기에서 보면
그대의 가슴 속에서 퍼덕이는
날개짓 소리가 들려 오고 있소.
여기에서 보면
그대의 하늘은 눈물겹게 푸르기만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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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물님의 시는 모두가 귀한 시로 기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