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재의 개 / 복실이
복실이, 이름에서 풍겨나듯이 불재의 복받은 개입니다.
불재의 개하면 불이가 떠오를 겁니다.
불재를 지켜주고 누구보다 손님맞이가 지극정성이었죠.
오는 사람 반겨 맞고 가는 사람 깍듯이 모시는 불이는
그야말로 다정다감, 애교 만점.
고객감동, 서비스 정신이 탁월한 개였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눈맞추고 뒤따르는 불재의 불
불같이만 하면 돈버는 것은 시간문제 아닐까요?
불이의 맑고 티없는 눈동자를 보게 되면 불이 개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고 나그네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습니다.
어쩜 사람으로 태어날 운명이었는데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개로 태어났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 불이 때가 돼서 빛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불재를 드나든 이는 누구나 절친한 친구와 헤어진 양
아쉽고 서운한 마음 금할 길 없었습니다.
어느덧 불이도 생김새는 달라도 한 가족이 되었던거죠.
“호랑이 앞에서도 예를 갖추면 해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따스한 눈길로 반겨 맞아 주고
문 밖에서 예배도 같이 드렸던 불이,
한 마리 작은 개가 뿌려준 정은 낯모를 인간보다 깊고도 컸습니다.
불에 이어 달, 달이 새끼 복실이가 불재의 지킴이가 되었습니다.
주일날이 되면 진달래 식구들이 모여들고 복실이도 어슬렁거립니다.
불이와 달리 복실이는 제가 구박을 해서 그런지 은근한 성격이고
그 등치만큼이나 여유만만, 의기양양합니다.
등치와 성질로 말하자면
경각산 동물의 왕국에서 제왕의 자리를 차지할 만하죠.
처음에는 앙증맞은 불이만 보다가
등치 큰 진돗개 복실이가 어슬렁거리니
꼴 사납기 짝이 없었습니다.
혹시 콱 물어버리지는 않을까 무섭기도 했지요.
저 놈이 덤비면 어떻게 방어를 해야 하지.
사실 복실이는 사람에게 덤빌 의도가
키작은 불이만큼도 없는데 그 삼엄한 표정이 섬뜩할 때가 있습니다.
복실이도 저에 대한 꽂치는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참 조심스럽더군요.
저를 괴롭히면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족보 있는 개 아니랄까봐 준비자세가 만만챦습니다.
사실은 경계하고 있다는 말이 맞지요.
이런 태도를 볼 때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 혼자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도
미워하고 있고 그를 경계할 때 그 사람도 경계하는 것처럼
저를 의식하고 있는 것을 아는 지 선뜻 안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복실이의 태도에 익숙해지니까 가까운데서가 아닌
먼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그 개를 보게 됩니다.
그러던 작년 겨울 어느날 권사님 댁 가까이에서
복실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에 대한 긴장을 풀어버리니 저도 놓아버리더군요.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발바닥도 만지작거렸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소중한 보물같이 가려주고 숨겨두었던 혓바닥을 꺼내
부드럽게 손 언저리를 핥아대더군요.
이런 와 중에 권사님의 복실이에 관한 일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개밥이나 먹을 것을 복실이한테만 주면 안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옆에 복실이 엄마 달이 있는데
반드시 복실이 엄마개에게 밥을 줘야 같이 먹는다는 말씀이었죠.
짐승들은 한결같이 본능에 충실할 줄 알았는데
불재의 영험한 기운이 개마저 도의를 알게 했나 봅니다.
아무리 짐승일지언정 어머니를 생각하는 복실이의 마음을 생각할 때
오늘날 만연해가는 물질주의의 수렁에 빠져 영혼의 중심을 잃어가는
수많은 인간들이 불재의 복실이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