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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이병기 -난초-

2013.06.04 06:53

물님 조회 수:6367

이병기, 「난초」

1
한 손에 책(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 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 볕이 발틈에 비쳐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3
오늘은 온종일 두고 비는 줄줄 나린다
꽃이 지던 난초 다시 한 대 피어나며
고적(孤寂)한 나의 마음을 적이 위로하여라

나도 저를 못 잊거니 저도 나를 따르는지
외로 돌아앉아 책(冊)을 앞에 놓아두고
장장(張張)이 넘길 때마다 향을 또한 일어라

 

 시_ 이병기 – 1891년 전북 익산 출생. 주시경의 조선어 강습원에서 수학하고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하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가람시조집』, 『역대시조선』, 『국문학전사』, 『국문학개설』, 『가람문선』 등을 간행하였다. 연희전문강사, 서울대 교수를 역임하였고 학술원 공로상을 수상하였으며 1968년 작고하였다.

 

출전_ 『난초』(미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