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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은 어디에 있는가?

2009.08.12 07:48

물님 조회 수:11302

에덴은 어디에 있는가?


휴가철이 되면 도시인들이 산과 바다를 찾아 떠나기 때문에 전국의 도로들이 몸살을 앓곤 한다. 사람들이 기를 쓰고 자연을 찾아 가는 것은 새로운 활력을 얻고 삶을 재음미할 수 있는 힘이 자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소리를 들으면서 제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광대한 바다 앞에서 옹졸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루소는 이런 말을 남겼다.

“ 자연은 인간을 선량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었으나 인간 사회는 인간을 사악하고, 노예로 만들고, 불행하게 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인간의 이상향인 에덴동산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과 그 속에서 구김 없이 살아가는 인간을 묘사한 것이다. 자연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되었다. 자연이란 말씀으로서의 로고스가 깃들어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을 통해 나타나는 자연 계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 인간들은 땅과 하늘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보고 그 분이 어떠한 분이며 또 얼마나 위대하고 능력이 영원한 분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판날 에 하나님 앞에 설 때 인간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롬 1:20)

영성이 깨어 날 때 인간의식에 나타나는 현상은 자연 계시를 보는 눈이 열리게 되고 하나님의 섭리와 아름다움과 지혜를 배우게 된다는 점이다. 즉 피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현존을 깨달아 가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영혼의 고봉에 오른 사람들은 항상 자연을 가까이 했고 자연을 사랑했다. 모든 자연만물 속에서 영적 가치를 발견하는 영안이 열린 사람이었다. 만물은 아버지의 작품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차별 없이 고귀하다.

자연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는 일체가 그 모양이 다르다. 똑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하나하나의 존재들이 모두 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이 난무하는 곳에서는 자연이란 돈이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가치차별의 대상일 뿐이다.

성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수 있을까? 하나님의 사랑이 내적으로 표현된 것이 우주의 법칙, 자연 질서라고 한다면 사랑의 외적표현은 자연만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때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공기와 물과 불과 자연의 모든 조건들을 통하여 나에게 주어지는 조건들이 그 분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자연이다. 우리는 이 가시적 사랑을 통하여 불가시적 영역의 사랑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미래학자들이 지구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지구환경을 파괴해온 인간의 탐욕의 결과라는 데 이의가 없다. 몸의 장기중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몸 전체가 생명을 잃게 되는 것처럼 현재 지구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적 상황에 돌입해 있다. 태평양 한쪽에는 한반도의 7배나 되는 면적의 쓰레기 부유물이 뒤덥혀 있다고 한다. 산과 들에는 엄청난 양의 비닐과 농약병들이 뒤덥혀 있다. 엊그제 풀 매러 온 사람은 왜 제초제를 쓰지 않느냐고 의아스럽게 묻기도 했다. 내가 이 산꼭대기에서 제초제 사용하면 그 제초제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백년전에 인디안 추장이 자신들의 땅을 매수하려고 하는 백인 정부를 향해 한 말이 있다.

“당신네들이 자손에게, 우리가 자손에게 가르쳐온 것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즉 지구는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모든 것이 인간 모두를 이어 주는 피와 같이 이어져 있습니다. 인간이 생명이라고 하는 직물을 짠 것이 아니라 인간은 그 생명 중의 한 가닥 실에 불과 합니다. 인간이 그 직물에 대해 하는 일은 실은 자신에 대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은 당신네들의 신이기도 합니다. 대지는 신에게 소중한 것이어서 그 토지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 창조주에 대해 모욕을 하는 행위입니다.”

몸을 입은 인간은 자연을 통해 와서 자연을 섭취하며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도 인간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피조물이다. 자연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인간도 함부로 대한다. 자연 앞에 겸허한 자는 인간에 대해서도 겸허하다. 자연을 깊이 이해하고 배우는 자는 자기 자신을 배우고 자연 속에 깃든 로고스를 깨닫는 일에도 열성을 다하게 된다.

거울이 나의 외적 모습을 비춰준다면 자연은 나의 속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잃어버린 에덴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한 송이 들꽃에 머무는 나의 마음속에 있다. 들에 핀 야생화를 공부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일이 아닌가. 관심을 가지고 자연을 바라보자. 공중의 새를 보고 들에 핀 백합을 보라 하신 주의 말씀을 상기하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이 주님의 솜씨 널리 알려 줍니다.”

(시편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