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아, 일어나라!
2013.07.25 06:28
"이놈아, 일어나라! 해가 중천에 떴다!"
송현(시인. 송현시인 행복대학 교장)
1.
어떤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었습니다. 평소처럼 할아버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침 산책을 하러 나갔습니다. 자기 밭이나 논의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주된 코스였습니다. 간밤에 물꼬가 터지지는 않았는지, 짐승이 와서 밭을 밟지는 않았는지, 싹이 났는지 따위를 살펴 볼 겸 한 바퀴 도는 것이 아침 일과처럼 되었습니다.
그런데 산자락 아래를 지날 때 오떤 오두막집 안에서 마당을 쓸던 여자가 안방을 쳐다보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여자를 편의상 욕쟁이 아줌마라고 명명하겠습니다. 그녀는 늦잠 자는 아들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노인은 그때 마침 그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놈아 일어나라. 해가 중천에 떴다!”
할아버지는 이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금강경 나오는 말도 아니고 칸트오빠가 한 말도 아닙니다. 단지 욕쟁이 아주머니가 늦잠을 자고 있는 자기 아들을 깨우는 소리일 뿐입니다.
“이놈아, 일어나라. 해가 중천에 떴다. 너만 자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 소리를 귀담아 들었습니다. 이 말이 할아버지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저도 어릴 때 우리 엄마에게 수없이 들었던 말입니다. 우리 엄마는 경상도 말로 했습니다.
--야 이늠아, 날이 새었다. 니만 자빠져 자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일어났다.
“일어나라”
“날이 새었다”
“해가 중천에 떴다.”
“너만 자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 말이 자기보고 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이 말이 할아버지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고 말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순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었던 게 틀림없었습니다.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르고 새들이 노래하고 바람이 상쾌했습니다.
2.
한편 그 때 할아버지 집에서는 아침 상을 준비해놓고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십분이 지나고 이십분 삼십분이 자나자 할아버지의 신상에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염려가 되어 아침상을 그대로 둔채로 밖으로 할아버지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혹시 논두렁에서 발을 다친 것은 아닐까?
--아니면 누구와 물꼬로 시비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다른 무슨 사고가 난것은 아닐까?
마을을 샅샅이 뒤져도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걱정을 하던 차에 저쪽 산자락에서 지개를 진 아저씨가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달려가서 물었습니다.
“아저씨, 혹시 이러이러한 차림의 할아버지를 못 보았습니까?”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글쎄요. 댁에서 찾은 그 할아버지인지는 모르겠소만 아까 노인 하나를 보긴 했소.”
“어디에서 보았나요?”
“저 산 위 암자쪽에서 보았소”
3.
가족들은 부랴부랴 암자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암자에 가니 법당에 할아버지가 이렇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어안이 벙벙하여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여기서 무얼 하고 계십니까?”
할아버지가 말했다.
“이젠 날이 새었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떴다. 나는 충분히 잤다. 날 혼자 있게 내버려 둬. 나는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그 전에 나는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뒤 할아버지는 도를 깨우쳤습니다. 할아버지가 도를 깨우친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욕쟁이 아주머니입니다. 그러니 할아버지의 스승은 바로 욕쟁이 아주머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여자 오두막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여자를 한 번도 본적도 없으면서 문으로 다가가 합장을 하고 절을 했습니다. 그 집은 그의 사원이었고, 그 여자는 그의 스승이었습니다.
4.
지금 이 순간도 겐지스강물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배당 받은 제한된 봄날이 속절없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아직도 잠 자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줄 모르고 자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벌써 날이 새었습니다. 남들은 다 일어나서 일터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당신은 아직도 자고 있지는 않습니까?(201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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