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507736
  • Today : 1290
  • Yesterday : 806


싹뿌리 이현필의 길

2009.08.14 22:08

구인회 조회 수:6008


      싹뿌리 이현필의 길 무상무득 无喪无得 왕래정정 往來井井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나니 아무리 퍼도 마르지 않고 아무리 솟나도 넘치질 않네. 가고 오는 이들이 언제나 우물물을 푸고 퍼마시나 이 물은 언제나 고요하고 청정하다. 이 물은 물이 아니라 한 영혼의 피요 뜨거운 사랑이라 이 물을 마시는 이는 다시는 목이 타지 않으리라 사람에게 나서 짐을 다 풀기 전 사람으로 지는 삶 그 길 저편 신 벗은 채 외로이 설산을 보는 이가 있으니 산인가 눈인가 눈먼 짐승인가? 산토끼 눈 맞추고 배고픈 갈까마귀 물어 보니 그는 상한 갈대, 상처 입은 산 짐승이나 진배 없구나. 마지막 날 님께서 이 떡은 나의 살이요 이 술은 나의 피라 건네주신 것처럼 설령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떼어 배고픈 짐승이 먹이로 드릴지라도 님 향한 마음 더욱 사무쳐, 나는 기쁘고 또 기뻐하겠네. 풀 한포기 꽃 한 송이 모두 다 아버지가 키우신 자식들 이들을 없신여김은 그를 지으신 이를 없신여김이요 이들을 천히 여김은 그를 지으신 분을 천히 여김이라 “저 꽃도 꺾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린 아이에게도 함부로 반말을 쓰지 마시오. 저 애들 속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예수님 보고도 반말을 하겠소?” 이 세상에 님의 은혜로 나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이 사랑이요 아,ㅡ 사랑으로 모여서 사랑으로 지내다가 사랑으로 헤어지시오 ! 그 이가 병들고 볼품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 계신 예수님을 보라고 가르치신 말씀에 가슴이 미어지니 그를 따르는 이 누구랄 것 없이 태산 같은 인격 앞에 산산이 무너져 내리더이다. 어느 눈보라치는 겨울날 제자 둘과 함께 걷고 걸어 광주가는 길 눈은 펑펑 하염없이 눈은 내리고 추위와 허기에 지쳐 잠시 쉴 곳을 찾았으나 문둥이나 거지같은 몰골에 가는 곳마다 천대와 문전박대 이도 큰사랑이요 은총이라 하시니 그저 옷깃을 여밀 수밖에. 그나마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리는가. 간신이 믿는이 오집사네 단칸방 오막살이집에 거처를 마련하여 서로가 믿음의 형제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터에 슬며시 “광주에 이공의 제자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여 이현필이란 분을 아시쇼잉 잘 믿는 이라던데...?” 라고 묻는다. 이에 이현필 선생 아무말 없이 나가시고 수레기어머니가 집식구를 보고 “지금 저분이 바로 이현필 선생입니다” 그들은 감격하고 크게 놀라서 “아이고 이렇게 믿다간 천사도 모르고 그냥 지나보내겠군요. 아이고 미안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세손님에게 지극정성 십리까지 전송하며 거듭거듭 용서를 구했다는데.. 한 여인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으로 인한 고통에서일까? 아니면 날이면 날마다 이를 갈고 칼을 가는 그이에 대한 구원에서일까? 쓸쓸하고 머난 먼 순례자의 길, 가도 가도 첩첩산중 숨막히는 능선을 헤집고 넘어온 가시밭길 4박5일 걸려 제집에 온 듯 헤진 모자며 고무신이며 담벼락에 걸어두고 온 그 집은 다름 아닌 이현필 선생 부인이 사시는 집이란다. 못할 짓하고 그립고 사랑한 맘을 넘어서지 않으면 그 집에 갈 수 없었으리라. “글쎄 그분이 품속에 독약을 품고 다닌 데요. 자기 혼자 죽으려다가 내가 왜 혼자 죽어? 그 놈도 죽이고야 죽지 하면서요... 부인은 가슴에 독약과 칼을 품고 남편 이현필 선생 오기만을 오기로 기다렸다. 남편의 독신 수도생활의 선포로 졸지에 과부 아닌 생과부가 돼버린 부인의 입장에서야 분통이 터질 노릇, 그래도 찔긴 사랑 때문에 왠수같이 미워지는 건 아니었을까? 잠시 후에 한 젊은 여인이 눈을 부라리며 들어오더니 갑자기 날랜 호랭이 같이 달려들어 아까 걸어놓은 꼴사나운 모자며 신지도 못하고 고이 들고 다녔던 고무신 한 켤레마저 짝짝 찢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분노와 눈물로 얼룩진 모자를 내팽개치면서 “어떤 문둥이 같은 놈의 자식이 남의 집에다 이런 상그지 같은 걸 걸어놨어?” 얼마 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더니 이 광경을 보고도 암말도 않고 그냥 웃방으로 피한다. 부인은 방구석에서 무서워 떨고 있는 김금남님을 노려보면서 “큰 애기인가, 각시인가ㅡ 이리로 들어오라 ! 선생님 옷을 가르키며 “이 염병할 것들아 ! 따라다니려면 옷이나 빨아드리고, 씻겨나 드리고 따라 다니려무나 ! 생전에 깎지 않은 덥수룩한 수염에 콧물만 훌쩍거리고 있는 이선생 아무 말도 없이 미숫가루 한 사발 퍼들고 한쪽 구석에 쭈구리고 앉아 창밖만 멍허니 바라만 보고 있더라는데.. 그리고 변소 간다나,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부인 몰래 허벌라게 달아나기를 그 날래기가 범같았대나 어쨌다나.. 부인이 무섭기는 무척 무서웠나보다. 부인도 이판사판 준비를 하고 남편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했으나 차마 결행해 옮기지 못했다. 너무 너무 사랑했던 선생을 죽이고 자기도 죽어버리려고 했던 슬프고도 다정한 부인 그 부인이 꾸산찌빼나 기관부인처럼 악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중에 선생의 부인 황여사가 폐병환자나 가난한 사람 구휼하는데 힘쓰고 자신도 때가 되면 수도생활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하는데 부인도 감화되어 먼 발치에서나마 웬수같은 남편 이현필 선생을 따르고 존경했나 보다. 또 동광원 자매 중 마음이 흔들리는 이가 있으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달래도 보고 권하기도 하고 자기의 소원은 말년에 이선생 무덤 곁에라도 살다가 세상 등지고 싶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그런 것인가 ? 한 여인의 가슴에 대못을 때려 박고 예수님 좋아서 따르는 길이 피도 눈물도 없고 기필코 피눈물을 짜내야 하는 길인가 수도자의 길이라는 게 타인이 못살게 굴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않더라도 저 자신이 자신의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가능한 외길인가? 수많은 회한과 의심 속에서 내린 결론은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려거든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설파하시고 또 그렇게 온몸으로 실천하신 것처럼 그 길은 인정과 재물, 욕망을 섞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란 거다. 키에르깨고로도 “하느님은 말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발로 말씀하시는 분”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느님께 올라올 때 하느님은 손잡아 주시는 게 아니라 발로 걷어찬다는 말씀이다. 저 야곱이 날이 새도록 하느님과 씨름한 것처럼 악착 같이 붙잡지 아니하면 다 걷어 채이고 다 나자빠진다.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 찐디기처럼 늘어붙지 않는다면 악마는 어느새 영혼을 파먹고 만다. 말씀대로 끈질기게 끊어야 한다, 한 인간으로서 뒤틀리고 흔들리는 이 마음. 이를 잘 아시기에 그분은 무엇보다 한 사람의 깨어난 영혼을 소중이 여겨 단 한 사람이라도 깨치면 자신의 일처럼 여간 기쁘게 생각하신 게 아니다. “한 사람이 회개하면 천군천사가 큰 소리로 노래를 하시지요. 천지 만물도 우쭐거리고요 한 사람이 회개만 하면 분명히 이 세계는 밝아집니다. ” 또 한 사람이라도 수도의 길에서 흔들리거나 길을 잃어버릴 때는 마치 부모를 여인 것처럼 하염없이 울고 몸살을 앓으시다가 끝내 피를 토하기까지 하셨다. 사람의 생각으로야 한 사람, 그 한사람이 무에 그리 중요할 것인가 만은 예수님 한 사람 죽으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셨고 이순신 한 사람이 죽어 나라를 구하시지 않았던가?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아버지가 그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시는 바와 같이 선생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집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자상한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셨을까? “천지여아동근 天地與我同根 만물여아일체 萬物與我一體” 천지는 나와 싹뿌리요 만물은 나와 한몸이니” “잘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지체요 안믿는 사람도 그리스도의 지체요 만물이 다 그리스도의 지체로다.“ 그 옛날 양치기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게 되고 그 가운데 계신 하느님께서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발을 벗으라” 하신 대로 신발을 벗은 것처럼 싹뿌리 이현필 선생도 바로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자기 자신이 밞고 가는 그 자리가 성스러운 땅, 하느님께서 앞장서 가시는 신령한 땅으로 알고 마지막 날까지 어린아이처럼 신발을 벗고 그분의 길을 따라 나섰다. 어느 한순간 선생님은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잊었습니다” 우리는 어제 오늘 늘 그렇게 잊고 사는데, 미래에도 잊고 살지 모르는데 하느님 앞에 선 존재로서 평생 온 세상을 떨기나무 아래 거룩한 땅으로 받들고 겸손이 신발을 벗고 걸어가신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길 하느님을 가슴에 품고 빛의 능선을 한 호흡으로 걸어가신 길 사는 동안 아버지와 거닐다가 “ 오 기쁘다” 좋아 죽으신 그길 그 길이 바로 사람들이 성자라고 부르는 싹뿌리 이현필 李鉉弼 선생의 길이다. “오 기쁘다! 기쁘다! 오 기뻐! 오메 못참겠네. 아이고 기뻐! 오 기뻐 못참겠네. 이 기쁨을 종로 네거리에라도 나가서 전하고 싶어! “제가 먼저 갑니다. 다음에들 오시오.” 2009년 8월 14일 sial
      이현필 선생님 기도 주여 ! 저로 하여금 항상 죄인 됨을 기억케 하시옵소서. 죄인된 것을 깨닫는 시간이 제게 가장 행복된 것은 구주가 제게 가까워지는 까닭이로소이다 주여 ! 항상 저의 약함을 항상 깨닫게 하옵소서. 저의 약함을 깨닫는 시간이 가장 제게 복된 것은 크신 권능이 물밀 듯이 찾아 주시는 까닭이로소이다 이 험악한 세대에 이 두 가지 큰 위로가 저의 자랑이 되나이다. 성령의 역사로 이 사람들이 다 주님 권능만 믿고 바라게 하옵소서 이 사람들만 아니라 참으로 주를 우러러보는 자들은 다 주님의 은사만 알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들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