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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의 편지 / 태 왁

2013.12.05 17:11

가온 조회 수:11990

사진_0~4.JPG

이런 겨울날, 눈보라가 몰아치는 창밖을 보고 있노라면

어릴 적에는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났지만 지금은

실제로 알았던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독신으로 살다가 40을 넘기면서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그녀의 삶은 어쩌면 성냥팔이 소녀보다

더 힘들고, 아프고, 시린 것인지도 모르지요.

 

스커트는 여학교 교복이 마지막으로 늘 바지차림이었고,

생머리, 민낯으로만 일관했던 그녀에게는 세상의 온갖 유혹이나,

허영들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바람처럼 그냥 지나는 듯했습니다.

 

그런 겸허한 자기주관과 모나지 않은 성품은 어떤 환경이나

사람들과도 편하게 잘 어울리며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하더군요.

 

가진 것도 자랑할 것도 없지만 실수나 비굴함도 없이

늘 씩씩했으며, 사치하고는 거리가 먼 반면에 40의 나이에도

나무 잎을 성경책에 곱게 끼워놓는 감성을 가진 그녀였습니다.

 

공장에서 나이어린 여공들과 격무에 시달리는 삶에도

불평이 없었으며, 연말에 일일찻집 행사라도 할라치면

설거지를 자원하면서도 자기 죄를 씻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노라고

넉넉하게 웃곤 했습니다.

 

목욕도 대중탕을 이용하지 않을 정도로 결벽증에 가까웠던 그녀가

하필이면 유방암과 자궁암으로 여자의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이

여지없이 파헤쳐지는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고이 지켜왔던 육신의 정결함도 참으로 부질없고 헛됨을

깨달았다고 하던 그 때,

그녀의 영혼은 오히려 천국에 더 가까워졌을지도 모릅니다.

 

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성격은

숨쉬기도 힘든 마지막 순간까지 교회 일들을 궁금해 했으며,

평소에 원하던 대로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끝내

어머니에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곁을 지키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면서

멀리 있는 가게까지 나가시게 한 후에

그녀는 시리고 시린 삶을 혼자 내려놓았습니다.

 

우리도 삶에 매서운 바람이 불 때는 원망이나 불평 대신

우리 의식의 각성을 위한 연단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승에서 돈을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海女)들은

죽음과도 같은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다가 숨이 가빠질 때는

커다란 공처럼 물에 띄어놓은 태왁을 잡고 올라와

휘이~”하며 숨을 몰아쉰다고 합니다.

 

숨이 막힐 것처럼 삶이 힘들어 질 때라면 태왁을 사용하는

해녀들처럼 우리도 그분과 연결된 줄을 붙잡고

하늘 숨 한 번 몰아쉬며 새 힘을 얻어야겠지요?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이사야40:31)

 

한 해를 돌아보는 이즈음이면 허물진 삶들을 은혜로 품어주신

그분의 사랑과, 저마다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온

우리 모두의 기특한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낮게 깔린 기억의 저변에는 성냥팔이소녀처럼

시린 삶을 성녀(聖女)처럼 살다 간 그녀의 소박한 미소가

눈물겹도록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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