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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산을 오르며

2014.02.06 10:52

물님 조회 수:6880

 

 

그리스도의 산을 오르며

딥 그린 멤버들과 함께 3일간의 남도여행 수련을 했다. 여행은 공간이동이지만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산천과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는 나를 만나고 너를 만나는 경험들을 공유했다. 만약 늘 새로운 공간을 만나지 못한다면 인간의 삶은 얼마나 삭막할까? 그것은 문장의 기본요소중에 명사와 동사만 있는 글과 같을 것이다. 용건의 전달만 있는 문장은 삶의 다양함과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장에 형용사가 있어 문장이 다양한 의사표현의 도구가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건강해지려면 늘 새롭게 경험되어지는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

 

 

형용사적 ‘사이’의 만남에는 직관과 힘이 있다. 언어나 말에 힘이 있는 사람은 직관의 능력과 자신의 제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직관과 존재의 힘은 그가 가진 내면의 가치의식에서 나오게 된다.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느냐?의 여부가 그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존재가 누리는 삶에는 필수적으로 ‘가치적 차원’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 추구가 없다면 인간은 밥만 먹고 생식만 하다가 세상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 차원의 지성이 도달하는 결론은 무의미와 허무감이다. 세계에서 제일 자살률이 높은 한국사회가 총체적으로 빠져있는 난국이란 돈의 가치와 인간의 가치를 동일시하는 데 있다. 그것은 인간의 3대 명제인 공간과 시간과 인간 안에는 다양한 가치차원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무지이다.

지난주 아침마당에 인문학자 김경집님이 중산층에 대한 각 나라의 기준을 소개했다.

한국사회에서 중산층

4년제 대학 나와 안정된 회사에서 10년 쯤 근무

월 수익 오백만원에 은행잔고 1억원

32평 아파트에 2천cc 승용차

가끔씩 해외 여행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

외국어 하나쯤 자유롭게 구사하며

폭넓은 세계 경험을 갖추고

스포츠를 즐기거나 악기 하나쯤

다룰 줄 알아야 하고

별미 하나쯤 만들어 손님에게 대접할 줄

알아야 하며

사회정의가 흔들릴 때 나선다.

- 퐁피두 대통령 -

 

 

미국의 중산층 기준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하고

정기적으로 비평지를 받아 본다.

 

영국의 중산층 기준

페어플레이 하고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지고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며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맞서며

불의, 불평등, 불법에 의연히 대처한다.

 

 

우리 선조들의 중산층 기준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이 있고

겨울과 여름 옷 두어 벌 있고

서적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햇볕 쬘 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하나 몸 부축일 지팡이 하나

봄 경치 찾아 다닐 나귀 한 마리

그리고 의리를 지키고 도의를 어기지 않으며

나라의 어려운 일에 바른 말 하고 산다.

 

인간은 그 어떤 것보다 존귀한 존재이며 보다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해야만 행복의 동력을 얻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핵심은 수많은 이야기들을 통해서 개인과 시대가 빈공간과 시간을 어떻게 의미있는 가치들로 채우느냐하는 지혜를 전해주는 데 있다. 출애급 사건은 개념 없이 살던 무인격의 노예들이 노예적 시간과 공간을 박차고 나와 인간이 추구해야할 가장 기본조건인 자유의 공간과 시간을 누리고자 도전 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광야로 탈출했을 때 상상하지도 못할 기적들을 체험하게 되었다. 홍해를 건너고 샘물이 바위에서 터져 나오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안내받는 일등이 있었다. 그들이 노예상태로 있었다면 경험하지 못할 놀라운 삶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고 결국 자유의 땅에 도달하게 되었다.

 

 

가만히 이집트에 머물렀던 노예의 후손과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떠났던 사람들의 후손은 전혀 다른 차원에 살게 되었노라고 성서는 전해주고 있다.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역사는 발전해 왔다. 최소한 나의 자식들과 후손들에게 보다 나은 세상과 보다 궁극적인 가치를 전해주고자 하는 열망을 갖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기본적인 역사의식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났던 분이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선을 수련하고 왔다고 해서 이런 말을 했다.

“ 미얀마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착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군인들의 불의한 구조악에 대해서 침묵하는 것은 그들의 종교가 나 홀로 깨달아서 구원받자는 소승불교적 의식 때문일 것이다. -- ”

신약성서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 지구적 빈 시간과 공간이 구원의 공간으로 질적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빈공간과 시간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인류에게 빛과 기쁨, 전진과 희망의 태양이 떠올랐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이란 눈만 뜨면 누구나 빛을 만나게 되는 은혜의 사건이다. 그것은 거저 주신 것이지 내가 눈을 떳기 때문에 태양이 생기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개척자로서 우리 모두의 길을 앞서 가셨다. 메마른 황야와 괴로움이 지배하던 지구라는 이름의 광야를 통과하여 삶과 죽음이라는 이름의 ‘꿈’에서 깨어나도록 우리를 인도하셨다.

 

나의 안과 밖에는 무한한 차원의 공간이 있고 애벌레와 나비의 차원이 다른 것처처럼 다차원의 시간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인간 실존의 공간과 지상에서 몸을 가지고 시간을 살아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왕, 제사장, 선지자)의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육안에 보이는 이 세상을 실재라고 보지 않고 유한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이곳이라는 공간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무한히 열리는 삶이다. 그 삶은 장소적 개념의 ‘이곳’이 아니라 실존적 개념의 지금 ‘여기’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의 과거로부터의 해방이고 하나님의 ‘나를 향한 미래’로 열린다는 뜻이다. 바울 사도는 이런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13-14 )

우리는 공간과 시간과 인간의 만남을 통하여 순간순간 마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송두리째 받아들이고자 하는 결단과 순종을 통해서 부단히 새로워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 속에 있다. 어린 아이하나에게 한 일이 바로 나에게 한 일이라는 뜻을 잘 새겨야 할 것이다. 세상은 그리스도의 다양한 모습으로 나에게 찾아오고 있다. 내가 바라보는 만물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행동하고 계신다.

나에게 주어지고 있는 공간과 시간을 하나님의 축복과 만남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 존재가 찬송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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