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들의 소리"(9.6)
2009.09.07 16:36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 말씀은 과거의 낡은 질서와 낡은 옷은 새로운 생베와 같은 나와 내 제자에 의해서 붕괴될 것이란 의미다. 철인 소크라테스는 어이없게 사형을 당했다. 젊은이들을 선동해서 사회질서를 혼란하게 하기 때문에 “위험한 자다. 죽이자.” 죽여서 후환을 없애고자 한 의회의 두려움이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밀어 넣었다. 그가 남의 것을 뺏기를 했는가? 훔치기를 했는가? 권력을 탐하기를 했는가? 그런데 아무 잘못이 없는 그를 죽여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그리스 철학계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후폭풍으로 플라톤보다 20살 많은 수제자 ‘안티스테네스’는 평소 존경해마지 않던 소크라테스를 살해할 수 있는 그리스의 현실, 이런 나라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으며, 그 사회의 종교란 무엇인가? 회의을 품고 그 역시 스승처럼 시장에서 장돌뱅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무정부, 무종교, 무소유를 설파하였다. 이 안티스테네스의 제자가 바로 견유주의의 시조 디오게네스다. 디오게네스는 자기 스승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른 자다. 총독부 앞에 문둥이를 모아놓고 농성하여 마침내 소록도를 나환자의 천국으로 모여 살게 했던 문둥이의 아버지 최흥종 목사가 마치 이현필을 아들처럼 사랑했던 거와 같다. 최흥종이나 이현필, 디오게네스가 다 맥을 같이 한다. 견유주의라는게 디오게네스가 나는 스스로 들개와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며, 그 노선을 따르는 사람들을 그 부류로 불렀다. 당시 헬라는 돈과 부의 집중 속에서 너도 나도 그 대열에 끼었다. 세상이 온통 돈에 미쳐버린 것이다. 덕이나 선, 인심이 사라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소크라테스가 살해당하고 인티스테네스, 디오게네스가 나오게 된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며 사람을 찾고 다녔다고 하지 않는가? 인간이 없는 세상, 인간으로서의 의식이 사라지고 광풍이 휘몰아치는 세상을 고발한 것이다. 일렉산더가 찾아와 원하는게 뭐냐고 물었을 때 햇빛이나 가리지 말라고 한다. “당신이 내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과 다름없다. 오로지 행복이 돈과 권력에 있다고 달려갈 때 행복이란 내 존재에서 찾아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세상이 돈과 권력에 미쳐갈 때 소크라테스와 같은 의인이 합법적으로 살해당하는 미친 세상이 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고발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나 디오게네스에게 일어났던 일이 이스라엘 땅에도 있어났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망식하고 삶에 대한 진로를 놓고 씨름할 때 악마가 제시한 돈과 권력과 종교적 신념을 거부하게 된다. 예수님이 본 세상은 그 사회의 핵심세력이 눈먼 인간이고 인간성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다는 거다. 너희들은 헌 옷이다. 너희들의 옷은 다 찢어지고야 말 것이다. 우리의 새 에너지가 발효될 때 너희들의 옷은 다 찢어지고 말 것이다. 예수운동은 헤진 벽지를 바르는 게 아니라 집을 허무는 것이다. 조금 고쳐서 좋아지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변형이 일어나는 거듭남의 운동이다. 고루한 의식 낡은 사고가 진실한 사람을 죽이는 비참한 세상에 대해 예수님의 말씀이 복음이라는 거다. 말씀이 복음이라는 건 물질과 상품의 노예상태에 있는 대다수 사람들을 뒤집어엎는 요소가 예수님 말씀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등장으로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이 눈뜨는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예루살렘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 당시 성전의 핵심인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그 안으로 빛이 들어갔다는 말인데 이 기록으로 처음에는 복음서가 불온문서로 취급받기도 했다. 낡은 가죽부대 같은 그 당시 체제의 종언을 고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목숨을 던져서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을 찢어 버렸다는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예수님이 찢어놓은 휘장을 다시 열심히 꾸매 놓는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오히려 교회가 불의한 체제를 옹호하고 하수인 노릇을 하는데 앞장 선다. 과거 암울한 제국주의 시대에 신사참배 않는 목사를 교회에서 다 쫒아내지 않았던가? 강자들이 쓰는 전법이 이이제이以夷制夷다. 내분이 일어나 다 죽어 가면 그 때가서 손쉽게 다 장악해버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헌 옷 입고 살고 묵은 포도주만 붙잡고 있는 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온순 착실한 존재를 만든 게 아니다. 인간의 본성 안에는 애완견처럼 길들여지는 요소가 있고 늑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광야에서 울부짖는 존재성이 있다.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큰 아들이 개라면 집나간 둘째 아들은 늑대다. 항상 주어진 일, 틀에 박힌 일만 하다 가는 게 아니라 단 한번 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하다가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가? 김흥호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인생이란 거대한 바위를 옮기기는 굉장이 힘든다.” “이 바위를 옮기는 데 다들 부전공이 하나씩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재껴진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늘 매 맞는 아내가 ‘이제 더는 못 맞고 살아’ 고 외치는 게 바로 늑대의 소리다. 그런 소리가 죽으면 이번 생에서 더 이상 영적인 성장은 끝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두려우니까 두려움의 하느님을 섬긴 것이다. 작은 아들의 소리, 늑대의 소리를 살려내야 한다. 영혼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그 점을 살린 사람들의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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