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의 편지 / 사 연
2014.04.06 13:43
여기 저기 흔하게 돋아나는 풀꽃도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아름다움과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커피알갱이를 들여다보며
그 역사와 성분과 효능과 작용을 알아보노라면 그 작은 알갱이에서
아프리카의 열풍과 커피 노역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땀 냄새를 느끼게 됩니다.
사실 모든 스토리들은 그렇게 먼 곳에 있는 게 아니기에
관심을 가지면 그 나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시장 한 모퉁이에서 야채를 파는 아낙의 삶에도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릴 적에 부모님께서는 방 한둘 정도는 늘 세를 놓으셨는데
세를 살던 이들 중에 질경이처럼 강하게 살아가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덕수엄마’라고 불렀던 그 여인은 남편이 공장에서 일을 하는 동안
아이를 데리고 집에 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무더운 여름날, 아기를 등에 업고 시장에서 배추쓰레기를 한 광주리 이고 와서
마당에 솥을 걸고 삶더니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 팔기 시작했습니다.
몇 날을 설사를 해대며 눈이 퀭해진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등에 업고
그녀는 계속 배추쓰레기를 주워다 삶아서 팔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리가 집을 팔고 이사를 하면서 그녀와도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 후에 들려오는 소식은 둘째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단칸 셋방에 두 아이와 그리고
아이들이 먹을 밥과 요강을 넣어두고 밖에서 방문을 잠근 채
계속 장사를 하러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방에 갇힌 아이들이 성냥을 가지고 놀다가 화재가 일어났는데
방문이 잠겨 나가지도 못한 채 심하게 화상을 입어
큰 아이는 결국 숨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눈이 퀭하게 들어간 채 엄마 등에 매달려 다니던 아기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사건 후로 그녀가 잠시 실성을 했다는 말이 들린 적도 있지만
남편마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녀는 꾸준히 장사를 해서
지금은 시장 안에 점포를 마련해 품질 좋은 채소를 다량으로 판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고생하지 않고 살만큼 돈도 벌었지만 그녀는 마치 일중독에라도 걸릴 듯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일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녀는 그렇게 슬픔도 잊으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화사한 꽃구경만 하기보다 그녀가 일한다는 시장을 한번쯤 들러보고 싶습니다.
한 포기 야생초처럼 끈질기도록 열심히 살면서도
신앙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그녀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기가 막힌 삶의 여정에 함께하심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139: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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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아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봄에 웃음짓는 꽃들은 모두 지난 겨울을 견디어왔음을,
아직도 바람끝이 차가운 봄밤이 있음을,
겸허하게 엎드려
민들레꽃을 바라보는 봄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