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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을 거슬러

2009.10.05 23:45

도도 조회 수:13779



 
<상상의 계절 >
여름에그린 설경은
너무도 하얘서
차마 밟지 못하고
되돌아가네
 


 
<조용한 바닷가>
누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비움의 고요를 그대와 함께하고
있을 뿐입니다
 


 
<매화골>
시련이 꽃을 피웁니다
조용한 꽃
 


 
<산속의 호수>
기다림을 등진 듯
호수는 따로 물길을 텄지만
그럴수록 더 영롱한
그리움입니다
 


 
<응시>
바라보는 것들은
모두
사랑이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길을 내고
원두막을 하나 지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빈 원두막 옆 서성대는
하느님 있습니다
오늘하루도
세상의 언덕과 물 잘 넘고,
잘 건너시기를
 


 
<바라보기-걸레>
저녁이 올때까지도
오늘에게 이름 하나 지어주지 못하고
허우대다가
무심히 바라본 마룻가의 걸레에
눈길 머뭅니다
참 거룩한 몫입니다
 


 
어쩌면
80년보다 더 걸릴지도 모르지요
어린이로
되돌아가는 데에 말입니다
 


 
세상 삶이 아닌
삶이 세상 삶에 대한
대안이라는 말이었지요
' 나는 다 살았다' 는 선포가 아니라
깨달음 이후의 삶이 일생을 허비하며
바둥거렸던 삶보다 더 값지다는 것이겠지요
노인이 건네는 말들은 언제나 나도
되풀이할 지도 모를 말들이니,
그 과정에서 있었을
수많은 논리적 번복을
우리는 역으로 추적할 밖에요
 


 
사람이 집을 짓고
그 집이 다시 사람을 짓는다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서
클릭 한 번으로
세상사의 대부분을 해결하며 삽니다
 
이 시대의 우상같은
만능 화살표의 위력!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마지막에
사람의 자리가 있어야 함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섬진강- 전기다리미와 어머니>
" 얘야, 전기다리미 스위치를 살짝만 꽂아라, 전기세 많이 나올라."
우리 할머니는 전기도 수도꼭지처럼 스위치에서 조절 되는 줄 알고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플러그를 깊숙히 꽂으면 전기가 많이 흘러 나와서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는 줄 아셨으니
어디선가 당신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부터 무슨 줄 같은 것을 통해
공급 되어지는 것에의 낯섦이
할머니에겐 사용의 편리함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불안을
주기도 했던 것이다
 
수돗물을 바가지에 받는 모습과 우물물을 두레박으로 푸시는 모습은
그 다루시는 자신감의 모습에서 비교도 되지 않게 달랐으니까
 
나는 할머니의 '전기다리미 이야기'를 두고
매사에 검소하셨던 우리 선친들의 생활력이거나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뿌리라고
간간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 삶은 경험이다'
 
경험은 각자만의 것이고,
그 각자의 다양성이 모여
인간의 굴레가 되고
경이롭게도 그 경험이
'순미'라는 초월적 힘에 의해 통일되어
유유히 역사라는 것을 만들어 가고 있지 않은가
 
오늘을 사는 우리는
수많은 정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받아 들이며,
그것을 주초(柱礎)삼아
자신의 집을 지어야 할 경우가 많다
 
모래같은 불안한 반석일지라도
사람들의 눈을 확하게 해야 하는
모델하우스 같은 집
 
친구야!
언제 한 번 일 덮어 두고
지리산에나 가 보자
섬진강을 거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