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의 편지
2009.10.07 21:46
어때요? 괜찮은가요?
가온의 편지 / 업그레이드(upgrade)
안개 낀 가을 아침은 정확한 시간에 정신지체인 병만의 철제 대문의 빗장을 여는 끼끼 거리는 소리로 시작되고,
그가 날마다 풀을 뽑고 물을 주는 작은 텃밭에는 가을 시금치와 상추가 파랗게 자라고 있는...
나의 일상의 배경은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단조로운 동화요,
그 속에서 역시 동화처럼 천진스런 이들과 행복을 숨 쉬고 있습니다.
내가 불행하다는 자각을 가지고 살아왔던 기나긴 기간들(정확하게 내 어둠의 삶에 그분이 함께 하심을 알기 전까지)을 지나
지금 이러한 단조로움 속에서 행복을 누리고 있음이 복음이지요.
우리 속에 있는 빛(하나님의 형상)이 깨달음을 통해 빛이신 그분의 빛과 접속이 되는 순간부터 빛의 자녀가 되어
'옛사람'이라는 어둠의 옷을 벗는 회개에 이르게 되고 또 그 과정을 통하여 '평안'이라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게 아닐까요?
우리와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정신지체를 가졌기에 생활 속에서 자주 한계는 느끼게 되지만
그러기에 더욱 안쓰럽고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신체적인 장애가 '아픔'이요, '불행'이라면 지체장애인 나를 비롯하여 정신지체장애인으로 구성된 우리 가족은
'불행한 가족'이라는 답이 나오지만 그러나 인생이란 정해진 수학공식과는 다르기에 우리의 일상은 날마다 감사와 기쁨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 나날이지요.
내 몸으로 낳은 건강한 자식이 있다 하더라도 저 나이가 될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살아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하면
이들은 더욱 소중하고 든든한 자식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의 애처로운 삶을 생각하면 안쓰러워 눈물을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물이 흐르는 곳에 생명이 피어나 듯이
눈물이 떨어지는 곳에 그분의 자비가 피어난다는 사실은 이미 체험을 통하여 확신하고 있지요.
장애라는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기에 세상에서 위축될 때가 있다면 고개를 숙인 그대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고,
아름다울 수 있는 신비를 살고 있습니다.
고개를 들고 핀 꽃만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고개를 숙인 채 피어있는 초롱꽃들도
나름대로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지닌 것처럼 말입니다.
수많은 이들을 돌보는 거대한 복지기구를 운영하는 영예보다는 소수의 심령들과 눈빛으로 사랑과 신뢰를 공감하며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이기적인 생각일까요?
이번 추석에는 이들과 가정의 따뜻함을 누리고 싶어 직접 추석 음식으로 떡도 하고,
전도 부치는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봤습니다.
멀리 무주로 시집간 자매에게 이번 추석에는 내가 직접 추석 음식을 만든다고 자랑을 하자
"와~ 목사님 업그레이드 되셨네요"하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직접 만든 추석 음식을 나누며 이들 뿐만이 아니라 남편까지도 좋아하는 걸 보니
이번 추석에는 기분까지도 업그레이드(upgrade) 된 셈이지요.
숲에는 풀들이 마르는 알싸한 내음이 고령의 노인들의 체취와도 같이 숙연하고,
피부에 스치는 바람결은 맑은 물결처럼 신선하고 투명하기만 합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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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의 배경은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단조로운 동화요,
그 속에서 역시 동화처럼 천진스런 이들과 행복을 숨 쉬고 있습니다."
동화 속의 그림처럼 사시는 가온님의 호박넝쿨
그저 예술이랄 밖에요.
잡을 곳이 있다면
그 어디라도 붙잡고 여행을 떠나는 넝쿨이
뜨거운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