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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 병 일 기

 

                                                                                                            김의수( 전북대교수·철학과) 

                                                                                                                         

내 아내는 지난 2001년 8월 난소암 2기 판정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여섯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 후 회복기를 거쳐 1년 이상 아주 건강하게 생활했다. 암 환자에게 가장 바람직한 생활방식으로 지냈다. 식이요법에서 정신건강에 이르기까지 암 환자가 지녀야 할 가장 좋은 태도와 성실성으로 생활했다. 그래서 3개월마다 대학병원에서 받은 정기 검사에서는 언제나 수치가 양호했다. 1년이 지난 후 ‘별로 염려할 것이 없지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CT촬영이나 한 번 해보자’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검사를 받았다. 거기서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고, 전북대 병원 입원, 서울대병원 검사를 거쳐 4월 11일 암의 재발을 최종 확인하게 되었다. 간과 폐, 그리고 임프절에 전이된 것이다. 아내의 절망은 암균이 온 몸에 퍼졌다는데 있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재발했다는데 있었다.


2003. 04. 12


아내: 이렇게 1년만에 재발할 것을 무얼 위해 항암 치료받느라 죽을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어. 그것이 가장 억울해.

나 :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 그때 이미 병균들이 다른 곳으로 전이돼 있었던 모양이야. 그래도 항암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그 동안 그놈들이 힘을 못 쓴 거잖아. 이번에 다시 치료를 받으면 10년은 별 일 없이 살아가게 되겠지.

아내: 싫어. 나는 다시는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아. 당신은 그 고통을 당해보지 않아서 그렇게 쉽게 말하지만, 나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고통이 몰려와.


우리는 양방과 한방 병행 치료를 한다고 TV에 크게 소개된 대전대 한방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그런데 난소암은 진행이 너무 빨라서 한방으로 따라잡을 수가 없다며 먼저 항암주사를 맞고 오라고 했다. 아내는 할 수 없이 승복했다. 전북대 병원에서 항암주사를 맞기 시작한 아내는 너무도 힘들어했다.


2003. 05. 07


아내: 기도가 되지 않아.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는지, 이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지, 너무도 혼란스럽고, 도대체 아무런 생각도 기도도 할 수가 없어. 나는 더 이상 아무런 의욕도 없고, 희망도 없어. 이 고통이 너무도 괴로워.

나 : 당신 말을 들으니 마치 구약의 욥기를 읽고 있는 것 같아. 정말 참기 어렵고, 어떤 이유도 원인도 없이 엄청난 질병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지. 그렇게 어려운 욥에게 누가 무슨 말로 위로를 할 수 있겠어. 당신의 고통을 내가 대신 질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야.

기도를 하려고 애쓰지 말아. 고통과 싸우는 것 자체가 기도인 거야. 당신은 온 몸으로 기도하고 있는 거야. 정리가 되지 않고, 기도의 문장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당연해. 나는 당신의 병이 나을 수 있도록, 고통을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어. 우리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어. 그러니까 당신은 꼭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고통이 가시면 그 동안이라도 좀 쉬도록 해.


2003. 05. 08


아내: 열이 가라앉지 않고, 이렇게 계속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렇게 계속되는 열병에 나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이런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지금 죽는 것과 10년 후에 죽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어?

나 : 사람이 70까지 사는 것과 80까지 사는 것은 큰 차이가 없지. 자연 수명이 10년쯤 더 길거나 짧은 것은 인생의 의미에서 별 차이가 없을 거야. 그러나 당신이 10년을 더 산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가 있는 거야. 아이들에게 너무도 큰 힘이 되고, 이익이 되는 거야. 그리고 우리를 위해 염려해 주는 우리의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은 더 없이 큰 선물이고 기쁨인 거야.

아내: 나는 너무 힘들어. 아무런 의욕도 없고, 그저 지금 죽고 싶을 뿐이야. 지금 죽으면 지옥에 간다고 해도, 나는 지금 죽고 싶어. 언제까지 이렇게 의미 없는 고생을 시킬 거야?

나 : 당신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나도 상상이나마 어림잡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신이 지금 죽게 할 수는 없어. 의학적으로 그리고 윤리학적으로 안락사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있지만, 그것은 생존의 가능성이 0%인 경우에 한해서 하는 이야기라구. 당신처럼 고통을 당하는 모든 암 환자들을 죽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아내: 항암주사를 맞아도 전혀 효과가 없는데, 언제까지 이런 고생을 하느냐구.

나 : 지금은 꼭 항암주사 때문에 고통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 퇴원 후 10여 일간은 주사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주사로 인한 고통이 지나갔는데도, 암 종양 때문에 열이 나고 고통스러운 거잖아. 항암치료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암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항생제나 무슨 조치를 취하게 된다구.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단순히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약을 복용할 것인지, 좀 더 고통스럽더라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당할 것인지, 우리는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거야.


2003. 05. 11


아내가 밤에 몇 차례 잠을 깨서 고통스러워했다. 나도 잠을 설친 셈이다. 그래도 아내는 내가 잠을 너무 편하게 잘 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7시가 다 되었다. 아내는 고통을 호소하며 눈물을 흘린다. 아침 준비해서 식사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나니 시간이 11시가 되어 간다. 교회에 가지 못한 대신 찬송가라도 불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통이 심할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은 스트레스를 푸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쁨과 웃음의 시간이다. 우선 경건한 시간을 가짐으로써 희망을 얻고, 점차로 적극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아내에게 찬송가를 불러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좋다고 했다. 30분 정도 찬송가를 불렀다. 목이 좋지 않아 잘 되지는 않았으나, 피아노만 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가사가 안 좋은 것은 건너뛰었다.


2003. 05. 16


어제 아침에는 입원하기 전에 식사를 잘 해야 하므로 여러 가지 반찬을 준비했다. 그러나 한 숟가락을 뜨고는 이내 돌아앉아 통곡을 한다. 나는 밥그릇을 치우고 학교로 갔다. 1교시 강의 때문이다. 강의 마친 후 입원절차를 밟고, 오후 4시에 입원했다.

독일 교민 이해룡, 이홍자 부부가 왔다. 너무도 고맙다. 아내의 암 재발 소식을 듣고 일부러 1주일간 연가를 내어 귀국했다고 한다. 아내는 고통 중에도 정말 고마워했다. 처형이 내려왔으므로 나는 밖으로 나가 이해룡씨 부부에게 간단히 식사 대접을 했다. 얼마 전 독일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인소천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 주었고, 호스피스 병원 소식지도 주고 갔다. 저녁식사비를 굳이 내겠다고 하더니, 봉투까지 놓고 간다. 너무도 고맙고 미안하다.


2003. 06. 02


병원에 갔다. 이번부터 항암제를 다른 것으로 쓰겠다고 한다. 그 동안 사용한 칵테일 방식이 아니라 한가지 약만 쓰고 5일간 주사를 맞는다고 한다. 지난번에 맞은 것은 듣지 않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아내: 그만 맞겠습니다.

교수: 새로운 것 두 번만 맞은 후에 결정하시지요. 물론 새 약이 효과가 있더라도 뿌리째 치료되지는 않습니다만.

나 : 그래도 효력이 있으면 암 세력을 확실히 약화시키지 않습니까?

교수: 물론이지요.

아내: 이제 정말 그만 맞겠습니다.


아내는 더 이상의 실험은 싫다고 거부했다. 잘 돼도 뿌리를 뽑을 수 없다는 말에 아무런 미련 없이 중단을 결정했다. (나는 재발 후 교수 면담에서 항암치료를 해도 다시 곧 재발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내에게는 비밀로 해 왔었다.) 다시 하나의 가능성이 사라졌다. 남은 가능성들이 점점 줄어간다. 다음주에 대전대학 한방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아내가 의외로 담담하다. 오히려 내가 놀랐을 것 같다며 걱정한다. 나는 아내가 절망하고, 혼란에 빠질까봐 걱정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항암치료에 언제까지나 끌려 다닐 수 없다는 자신의 단호한 결정에 스스로 만족해하는 지 모른다. 하루 이틀 지나며 현실 상황을 확인하고 나면 그때부터 다시 우울 증세를 보일까 걱정된다. 어쩌면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성숙한 자세를 갖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민족의학자 장두석 선생 책 두 권을 사왔다.


2003. 06. 04


대전대 한방병원에 갔다.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오셨군요’라고 말했다. 2주정도 입원하여 처방을 시도하자고 한다. 다음주에 입원하기로 했다. 우선 탕약 반제를 지어왔다. 직접 끓여 마시는 거다.

내일은 영은, 영서가 온다. 오늘 오전에 장두석 책 내용 중 치료에 성공한 암환자 이야기를 읽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사실을 직시하고, 최선을 다하되, 어느 것에 절대적으로 매달리지는 말자고. 우리가 닥친 사실은 그냥 놔두면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죽을 수밖에 없는 질병에 걸렸다는 것이고, 우리는 어차피 삶과 죽음을 극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가능한 한 병을 고치고 살아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적어도 고통이라도 적게 받도록 노력한다. 기도를 하고, 대전 한방병원에 가고, 장두석 민족한의학에도 관심 갖고 참여한다. 어쨌든 최선을 다하며, 남들을 원망하거나, 또는 신세 타령을 하거나, 신을 원망하거나 하지는 말자. 고통과 싸우며 울기도 하지만, 좀 나아지면 적극적인 자세로 웃기도 하고 희망을 갖자고 말했다. 아내는 조용히 내 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3. 06. 30


대전에 가 있는 동안 일기를 쓸 수 없었다. 내가 이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치료와 관련되는 정보들을 메모하고, 아내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도록 간단히 기록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아내의 투병생활은 하루도 빠짐없이 길게 일기를 써야 할만큼 많은 변화와 고통들로 가득하다. 나는 차분히 컴퓨터에 앉아서 일기를 쓸 시간을 가질 수 없다. 밥을 앉혀 놓은 시간이거나 아내가 잠시 잠이 든 시간을 이용해야 한다. 그런 시간도 내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이 일기는 이렇게 띄엄띄엄 쓰게 된다.

대전대 한방병원에서도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왔다. 예정했던 2주보다 한 주가 더 긴 3주 동안 입원했었다. 병실은 내가 지키면서 영서와 영은이가 잠시 다녀갔다. 방문객은 받지 않았다. 여러 날 지나면서 나도 지쳤다. 아내가 밤에라도 잠을 좀 자면, 누구라도 잠시 만나 술 한 잔만 해도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았는데, 그 정도의 시간도 낼 수가 없을 만큼 아내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아내는 한방병원에 상당히 큰 기대를 가졌었다. 그런데 지나면서 점점 실망하였다. 병원에서는 암 환자 중에는 드물게 열병이 계속되므로 여러 가지 한방 치료법들을 사용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탕약만 사용했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다.

대전에서 내려 온 후 민간요법을 중심으로 새롭게 집에서 노력하기로 하였다. 어제 일요일에는 운장산으로 드라이브를 하였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아내를 강하게 설득하여 밖으로 나갔다. 운장산 중턱 주차장에서 창문을 열고 30분 가량 바람을 쐬고 돌아왔지만, 아내는 무척 상쾌하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주2회 정도 바람을 쐬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사람들도 만나기로 했다. 정성을 들여 설득하고 노력한 보람이 있다.

불행하게도 그 후 우리는 두 번 다시 산책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집으로 찾아오는 지인들마저 사양해야만 했다. 나는 그 점이 가장 큰 불만이었지만, 더 이상 설득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아내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 한 것이다.


2003. 07. 06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미역 오이 냉국을 해달라고 해서 만들었다. 다른 반찬도 한가지쯤 하려했는데, 시간이 되지 않았다. 그 동안 만들어서 먹던 것들을 이것저것 상에 올려놓으니, 상이 넘쳤다. 그런데 아내는 숟가락을 들다가 내려놓는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이렇게 먹던 것을 반복해서 올려놓는 것을 질색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나는 식사를 포기했다. 다행이 아내는 한참 동안 쉬었다가 밥을 먹었다.

낮에 열이 38도 5나 올라갔다. 어제와 그저께는 열이 오후 5시에 한번씩만 올라서 희망을 가졌는데, 오늘은 낮에부터 열이 오른다. 그러더니 오후 5시에 또 올랐다.

아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에요?

나 : 자연의 섭리이고, 우주의 원리이고, 인류가 바르게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지.

아내: 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언데?

나 : 욕심부리지 않고,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사람들과 서로 도우며 더불어 사는 것이겠지.

아내: 그런 존재라면 굳이 믿을 것도 없겠네. 그냥 자연 그대로가 신이라는 얘기 아니야?

나 : 꼭 그런 것은 아니지. 당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아내: 나는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 같아. 그렇지 않고야 이렇게 고통 속에 신음하도록 놔두지 않을 텐데. 정말 너무 잔인하신 것 같아.

나 : 하나님을 너무 나 개인과 직결시켜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아. 그렇게 되면 무당이 믿는 신과 다를 바가 없잖아. 하나님은 커다란 기운이 돼서 생명을 북돋우고, 우주 속에 생명이 지속될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실 거야.

아내: 나는 그렇게 거창한 것은 모르고, 관심도 없어.

나 : 은명기 목사님이 생각난다. 우리가 죽으면 그 양반을 다시 만나겠지.

아내: 어떻게 만나?

나 : 하늘나라에서. 은목사님은 자신이 암에 걸려서 죽음을 앞두고도 정말 의연하게 성인처럼 얘기하신 분인데, 그런 분을 만나는 거야. 그에 비해 더없이 소박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시던 그 사모님 같은 분도 함께 만나게 되겠지.

아내: 그런데 왜 이렇게 나를 오래 동안 고통스럽게 놔두시는 거야?

나 : 누구나 질병에 걸리면 고통을 당하는 거야. 그리고 늙어서 죽을 때도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상당기간 고통 속에서 신음하다가 죽는 거야. 당신은 아직 죽음과 삶의 기로에 있으니까, 고통을 당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죽음 쪽을 바라보더라도, 잠시 고통이 멈추면 삶 쪽을 바라봐야지. 그리고 움직이려고 노력해야지. 어제도 밖에 나가자니까, 오늘 간다고 했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또 못 움직이고.

아내: 어제는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데.

나 : 여보.

아내: 응?

나 : 사랑해!

아내: 너무 오래 아프니까, 그런 말 듣기도 미안하네.

나 : 오래 아파도 미안해 할 것 없어. 언젠가 나아서 일어나기만 하면 돼.


2003. 07. 16


그동안 해열제(타이레놀이알)와 알로에만 복용하며 지냈다.
진안의 김인술원장의 주선으로 지난 주 토요일(12일) 광주의 민족의학자 장두석 선생을 만나고 왔다. 80년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 민족자주와 민족의학을 강조하신다. 그곳에 다녀와서 얻은 놀라운 성과는 해열제 복용을 중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내도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타이레놀 먹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는데, 정말 살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아직도 입맛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죽염을 먹고 나서 탈이 났다. 위통이 너무 심해 이틀동안 두어시간씩 뒹굴며 울었다. 아내는 장두석 선생이 권한 것을 다 하지는 못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알로에를 계속 복용하기로 했다. 그 대신 풍욕을 많이 하고, 녹즙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장두석 선생과 통화하니 위에 종양이 퍼져서 그런 것이므로 계속 죽염을 조금씩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못 먹겠단다. 열을 다스리게 된 것은 신기한 일이지만, 죽염은 맞지 않는다고 한다.


2003. 07. 19


아침에 배가 많이 아프단다. 밤새 배가 아파 잠을 못잤단다. 배를 손으로 쓸어 주었다. 한 참을 하고 나니, 싸악 가라앉았다. 가스가 찬 것 같았다. 아침 식사 후 방안 걷기를 세 바퀴 했다. 그리고 누웠는데, 다시 배에 통증이 심하다고 호소한다. 다시 등에 지압을 하고, 배를 쓸어주고, 그리고 파스를 붙였다. 조금 지나니, 다시 씻은 듯이 좋아졌다.


2003. 07. 21


거의 매일 꿈이 꾸인다. 어제는 어느 곳에 갇혀 있다가 탈출하는 꿈이었고, 여인(아내)이 마침내 위장하고 나타나 함께 탈출하게 되어 모두들 기뻐하면서 깼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차를 타기로 했는데 아내가 기차를 타고 출발한 후에 나는 혼자서 남아있게 되었다. 다음 차를 타고 만나는 수밖에 없게 되어 걱정하면서 깼다.

오늘도 아내는 통증을 많이 호소했다. 알로에나 녹즙 복용 후에, 그리고 식사 후에는 꼭 복통을 호소한다. 열도 몇 차례 올랐다. 이제 외부 근육의 통증이 아니라, 내부 내장의 통증이 확실한 것 같다. 오전에 너무도 큰 통증으로 힘들어 하길래 조금 가라앉자마자 물어보았다. 그렇게 통증이 심하면 원광대 한방병원에라도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아내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다. [아내가 병원을 기피하는 것은 항암치료가 사람 몸을 사정없이 망가뜨린다는 점과 병원에 가면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에도 어떻게든 생명만 연장시키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며, 가능한 한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해 주려 했다.]


한 여름이다. 금년 장마에는 비가 많이 와서 더위는 별로 심하지 않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무더위가 다가 올 텐데, 하루 종일 누워있는 아내에게는 너무 큰 고통이 될 것 같다. 여름도 이기고, 암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매일 그렇게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