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Ⅱ / 김의수(전북대교수·철학과)
2009.11.20 17:41
간 병 일 기 2
김의수(전북대교수·철학과)
2003. 07. 31 지난 주 토요일에는 아내 친구 부산의 영자씨가 다녀갔다. 그리고 같은 날 조삼례씨가 반찬을 한 보따리 만들어 가지고 왔다. 두 사람 모두 와도 되겠느냐고 전화로 묻길래, 아내가 원치 않는다고 했더니, 연락 없이 그냥 온 것으로 하겠단다. 아내는 힘들어하면서도 고마워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여연 식구들이 온다고 전화가 왔다. 오라고 해놓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눈치 채고는 펄쩍 뛴다. 결국 취소시켰다. 이틀 후 이강실 의장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여연 사무실로 갔다. 서울 여연 활동가가 암 환자인 부친을 간호한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뽑아 건네주었다. 모금한 위로금도 주려했으나 끝까지 고사했다. 편지 모음은 다음에 받기로 했다. 삼일전(28일)엔 아침 식사 후 통증을 심하게 호소했다. 복통으로 너무 크게 시달리고 나더니 아예 식사를 하지 않겠다고 버틴다. 나는 차제에 단식 요법을 활용해 보고자 장두석 선생 책을 살펴보았다. 그 동안엔 적은 식사지만, 식사를 하는 사람치고는 너무 운동량이 적어서 걱정이었다. 끊임없이 걷기를 종용했지만, 허사였다. 어쨌든 이번 기회를 활용해 보자. 거의 하루를 굶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차차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세끼 모두 밥을 먹었다. 물론 아침과 저녁에는 투정과 함께 소량만 먹었지만… 점심엔 추어탕을 사다 먹었다. 식사 후 열이 나려고 할 때 먼저 배와 발을 맛사지해 주어 소화를 도왔다. 그런대로 잘 넘어갔는데, 새벽 1시 반에 짜증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열이 나서 힘들어하며 부채질을 하고 있다. 내가 부채를 달라고 해서 조금 해주니 곧 됐다고 자라고 한다. 오늘 아침에는 아랫배에 조그만 콩알 같은 것이 잡힌다. 어제 아침에는 앞 베란다의 화분들을 세 보따리 치웠다. 대청소였다. 땀을 듬뿍 흘리며 일했다. 지난주에는 뒤쪽 베란다 양쪽을 하루씩 치웠다. 나방이 생겨서 몇 단계에 걸쳐서 결국 곡식 자루들을 모두 치우고 말았다. 찹쌀은 경비 아저씨에게 드리고, 5분도 쌀은 결국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나방은 오늘까지 매일 10여마리씩 잡아야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밤늦게 자려고 누웠는데, 영서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밤에 이어 두 번째다. 기숙사비 송금 약속을 까마득히 잊은 것이다. 2003. 08. 01 어제 낮에 하루 종일 열이 높아 고생하더니, 밤에는 비교적 잘 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불평불만을 말하기 시작한다. 불평을 말하는 것은 그만큼 힘이 생겼다는 증거라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정말 나도 너무 힘들어 짜증이 난다. 어제 저녁에 짜 놓은 녹즙을 먹지 않아서 내가 먹었다고 말하고, 아침에 녹즙을 마시라고 했더니 매일 새로 짜야지 그렇게 소여물처럼 많이 해서 신선도가 떨어지면 맛이든 효력이든 뭐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배영동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캐온 질경이, 토끼풀, 민들레 등 흙이 덕지덕지 붙은 것들을 몇 번씩 씻고 다듬어서 3일 분 녹즙재료를 준비하느라고 꼬박 2-3시간 걸렸는데, 그래서 봉지에 잘 넣어 김치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매일 한 봉지씩 꺼내서 녹즙을 만든 건데, 그렇게 불평을 하다니… 불평을 다 듣기만 하다가 한 마디 했다. “내가 아프고 당신이 간병을 해야 하는 건데, 바꿔서 하려니까 정말 모든 것이 힘들다.” 어제 신광철 교수님 내외분을 완산다원으로 오시라고 해서 만났다. 자주 박병섭씨네로 전화하셔서 우리 걱정을 하시며 안부를 물으신다고 해서 언제나 죄송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벼르고 별러 시간을 내어 모신 것이다. 그런데 두 분은 아내가 함께 나오기를 기대하셨단다. 지난번 채식뷔페에서 만났을 때 완치된 줄 알았는데, 그러고는 얼마 되지 않아 청천벽력 같은 재발 소식이 전해 와서 너무 놀라셨다고 한다. 대화를 끝내고 택시를 타시라니까 댁에까지 걸어가신단다. 그렇게 두 분이 되도록 많이 걸어 다니신단다. 너무 좋아 보인다. 저녁에 영은이가 전화해서 통화했는데, 마지막에 아빠도 건강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느껴지면 바로 병원에 가란다. 피로하면 브렌피에스피도 먹고, 아주 조심하란다. 그래, 이제 내 건강이 문제되는 시점이 돼 가는 것 같다. 나의 건강은 아이들에게 너무도 중요하다. 2003. 08. 09 어제 아침에 누룽지를 삶아 주었다. 누룽지가 잘 눌었고, 찬밥이 많아서 나는 찬밥을 먹고 아내는 누룽지를 삶아주기로 했다. 아내가 좋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미역 냉국만 좀 먹고 누룽지는 먹지 못했다. 결국 아침을 굶은 셈이 되었다. 영서는 그저께 밤에 모처럼 친구를 만나러 외출을 했기에 낮에까지 잠을 자게 하였다. 점심을 무엇으로 먹게 할까 걱정하고 있는데, 아내가 삼겹살을 먹겠단다. 아내를 위해 기름기를 완전히 제거한 돼지고기를 한 웅큼 마련하여 영서를 깨워 고기를 구웠다. 아내가 퍽퍽해서 못 먹겠다고 투정이다. 그러더니 기름기가 섞여 있는 것을 먹기 시작한다. 밥은 안 먹겠다고 하여 고기만으로 식사를 끝냈다. 너무도 걱정스러웠다. 상쾌효소를 미리 먹으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괜찮다고 했다. 정말 별 탈 없이 오후를 견뎠고, 저녁에는 오곡가루를 죽으로 끓이고 미역냉국을 해달라고 한다. 오곡가루로 죽을 쑤었는데, 벌레가 뜬다. 광주에서 사 온 지도 오래지 않고, 잘 여며서 묶어 놓았는데, 이게 왠 일인가! 어제 저녁을 굶다시피 한 아내가 아침밥도 목에서 받지 않는다며 숟가락을 놓는다. 그리고는 중간에 먹는 알로에며 비타민이며 다 거부한다. 오늘은 영은이가 오고, 다음주에는 처형이 오신다. 처형을 다시 오게 하는 것도 며칠동안 설득하여 겨우 아내의 동의를 받아냈다. 2학기 개학이 되어 강의를 해야 하는데도, 집에 혼자 있겠다며 간병인이나 처형의 도움을 요청하지 말라고 했다. 작은 방을 치워야 한다. 영서 방에서 가져다가 그 방에 쌓아두었던 나의 책과 서류들 그리고 신문들을 정리했다. 오전 내내 책을 두 묶음, 신문을 두 묶음, 그리고 쓰레기를 한 묶음 치웠다. 영은이가 도착했다. 데리러 가지 않았다. 영서가 서울 가는데도 데려다 주지 않았다.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도록 했고, 나는 아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나는 한 때 아내가 가족들에게 감사해 하거나 미안해 하지 않고 요구만 하는 것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제 나는 아내의 상태를 다시 정리한다. 아내는 단순히 난치병을 앓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아이는 아프면 엄마를 찾는다. 엄마가 너무도 헌신적으로 병간호를 하는 것은 남들이 볼 때는 감동적이지만 아이가 볼 때는 그저 당연할 뿐이다. 아니, 그래도 언제나 미흡할 뿐이다. 고통이 지나가고 좀 견딜만하면 그냥 쉬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낸다. 그러다가 다시 고통이 오고, 몸이 힘들면 엄마를 찾고 엄마에게 짜증을 낸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지금 나의 아내도 바로 그런 상태인 것이다. 영은이에게 엄마 간호를 맡겨 놓고, 제자 가게로 갔다. 여러 차례 방문하겠다고 연락 온 것을 사양했었기 때문에 소식도 전할 겸 찾아갔다. 반갑게 맞아 주었다. 식당으로 옮겨 그 동안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몇 시간 동안 마음놓고 쉬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술도 마시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확 풀었다. 2003. 08. 11 박채옥·신문자 부부를 만났다. 벌써 지지난 주에 내가 연락했던 일인데, 오늘에야 박선생한테서 연락이 왔다. 귀여운 헌경이도 데리고 왔다. 둘 다 호스피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아내의 그 동안 과정에 대해 설명하니 잘 이해했다. 호스피스에서 현재의 단계는 분노의 단계라고 한단다. 아직 병과 죽음에 대한 수용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전적으로 나에게만 의존한다는 사실도 정확히 파악한다. 송숙 선생님이 신광철선생님처럼 안타까워하시는 모양이다. 아내가 여전히 사람들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상히 말해 주었다. 주변에서 우리를 걱정해 주는 많은 분들에 대해 소개했더니 우리더러 너무도 복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헤어질 때는 고창 어머님께 부탁해서 얻어왔다며 김치 등 반찬을 한 보따리 건네주었다. 허혁·김경심 부부와 박채옥·신문자 부부를 만나고 나니, 건강한 사람 관계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오늘도 몇 군데 파스를 새로 갈아 붙여주었다. 그런데 밤이 되니 다시 통증이 심하다고 한다. 파스 붙이지 않은 곳 몇 군데가 막 쑤신다는 것이다. 두 군데 더 파스를 붙였다. 파스를 붙이면 좀 있다가 가라앉는다. 이건 이미 꽤 강력한 물리치료 조치를 하는 셈이 될 것 같다. 병원에 있다면 파스를 붙여주지는 않을 것이고, 진통제를 놓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통제의 강도는 높아가고, 일종의 악순환이 될 수 있다. 해열제를 끊었듯이, 지금의 과정도 민간요법으로 통증관리를 하는 것이 될 것 같다. 그렇다면 통증이 시작된 단계도 상당기간 경과했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2003. 08. 12 어제 오전 비교적 몸 컨디션이 좋을 때 잠시 아내와 대화했다. 언니가 오더라도 마음을 편히 먹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 자매간에 성격과 취향이 달라 처형이 와도 내가 신경을 많이 쓰고 중간에서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러 가지로 걱정은 되지만, 어쨌든 나는 다시 학교일 등 할 일을 조금씩 할 수 있게 된다. 벌써부터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나는 아내의 병간호를 성심성의껏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단 일을 시작해야 한다. 어머니 무덤을 지키는 희한한 사람이 TV에 나오는 것은 어디까지나 구경거리이지, 바람직한 삶의 태도는 아니다. 그 사람의 특수한 상황으로 봐 줄 수는 있어도, 다른 가족에게 큰 부담을 주면서까지 집착하는 것은 도를 넘어선 것이다. 나는 도를 넘어서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사노동과 간병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한 것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휴직을 하거나 학기 중에도 나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려 하는 것은 지나친 결벽증이 된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할만큼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나의 성격이다. 남들은 내가 교수단체나 시민단체의 대표 자리를 맡으니까 내가 아주 외향적이고 대범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내 성격은 선이 굵거나 대범하지 않고, 소심하고 자상한 편이다. 때로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곧이곧대로 혼자서 계속하는 약점마저 있다. (그런데 나는 가정적이기는 하지만 손으로 하는 일에 재주가 없어서 시간만 들고 진도는 안 나가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성의가 있어도 일을 못하기 때문에 가사노동을 거의 하지 않았고, 또 치우지 않고도 마음이 편한 게으름 때문에 깔끔한 아내가 미리미리 청소를 하며 살아왔다.) 2003. 08. 17 오늘은 정말 환상적인 오후를 보냈다. 어제 저녁을 굶었고, 아침을 시원찮게 먹더니, 점심에는 짬뽕을 먹겠단다. 지난번에 먹은 후 탈이 없었고, 맛도 좋아서 먹고 싶은 가보다. 그래서 시켜서 먹기로 했다. 그 대신 먹은 후에 소화가 될 때까지 되도록 거실에 있도록 했다. 맛있게 그리고 양도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아서 오랫 동안 TV를 시청했다. 한민족 리포트 재방송, 이태리 세계여행, 다큐멘터리 파리 카페, 그리고 박범신의 시골여행까지 본 후에 연속극 재방송까지 본 것이다. 특히 파리 카페를 볼 때는 마치 여행이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아내는 가끔 말을 시키면 대답을 하고, 방송 내용들이 좋아서 함께 공감을 나누며 보게 되었다. 중간에 누워서 보기도 하였다. 그래, 이렇게 지내는 거다. 이렇게라도 지내면 적어도 죽음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숨쉬는 것이 된다. 그런데 중간에 허리부분 등 쪽에서 뭐가 툭 불거지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만져보았으나, 파스에 공기가 들어간 부위인 것 같았다. 그런데 5시가 넘어 침대로 옮긴 후 만져보니 좀 부어오른 듯 했다. 손과 발도 통통하게 부었다. 저게 무얼까? 설마 종양이 커져서 저렇게 넓게 불거져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 어쨌든 부기가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간과 신장의 기능이 멈추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은데. 그저께 8월 15일에는 인철 처남 내외, 서울과 부산의 친구들, 그리고 배영동 교수님 내외분이 다녀가셨다. 친구 순금씨는 시어머니가 간암으로 돌아가셔서 십여개월 동안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단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상태가 된 후 2개월이 지나서 돌아가시더란다. 통증이 너무 심해 밤잠을 못자게 했단다. 남편과 교대로 하면서도 정말 죽다가 살아난 기분이란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 많이 고생을 할 텐데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이 태산이다. 영희씨네 시아버지도 대장암으로 3년 고생하고 돌아가셨단다. 두 분 다 바싹 말라서 돌아가셨는데, 그래도 복수가 찼다고 한다. 배선생님 내외분은 1층 입구에서 잠시 뵙고 보내드려야 했다. 그분들이 만난 친지는 온 몸에 불룩 불룩 종양이 불거지다가 몇 개월 후에 돌아가셨단다. 어제 오전에는 아내와 본격적으로 한 판 붙었다. 너무 짜증스럽게 말을 하길래 내가 대놓고 잔소리를 했다. 아내는 약을 먹으려다 쓰레기통에 버리고 누워버렸다. 한 참 후에 들어가서 미안하다고 달랬다. 그리고 다시 한 참 있다가 가서 점심 식사를 무엇으로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국수를 먹겠다고 했다. 그렇게 풀린 후 저녁 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언니 얘기, 인철 처남 얘기, 그리고 나와 영은이 얘기도 했다. 아내는 별다른 말이 없이 내 말을 들어주었다. 나는 모처럼 해줄 말을 다 해주었다. 오늘은 대화의 효과가 나타난 듯하다. 그렇게 태도의 전적인 전환이 오면 좋으련만… 그래야 본인도 마음의 안정을 찾고, 병과 고통을 대하는 것이 담담해 질 텐데…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의연한 자세로 고통과 죽음을 대면하면서 우리를,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2003. 08. 18 부기가 빠지지 않는다. 어제 밤에는 여지없이 통증을 호소했다. 점심에 짬뽕을 많이 먹었으니 어쩔 수 없다. 밤에 상쾌효소를 먹고 난 후에 엄청난 통증을 호소했다. 파스들을 모두 새로 붙이고, 배를 쓸어주고, 발바닥과 발등(위장과 연결되는 지압점)을 열심히 마사지했다. 한 참 후에 장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화장실에 간다. 변을 보고 나서 괜찮아졌다. 아침에 새우젓 호박국을 끓였는데, 별 맛이 없다며 안 먹는다. 점심엔 버섯전골 집에 가서 포장 해다가 집에서 끓이기만 하여 주었다. 그런데 미원 맛으로 완전히 라면 같다면서 거의 먹지 않는다. 저녁을 먹었다. 처형이 도착하여 물어보고 청국장을 먹겠대서 그렇게 준비하게 했다. 손발이 부은 것은 계속 마찬가지다. 지난주부터 처형이 내려오신다. 주중에 4일 간 도와주고 주말에 올라가신다. 언니가 하는 음식은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한다. 된장찌개를 끓여도 언니가 훨씬 맛있게 끓인단다. 다행이다. 언니의 필요성을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다행이다. 그리고 언니가 와서 물수건으로 온 몸을 닦아주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내가 목욕을 도와준 후 거의 4주간 목욕을 못하고 살았다. 언니가 와서 물수건으로 매일 닦아주니 정말 좋을 거다.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었는데, 그러면 때만 일어난다며 나중에 목욕을 하겠다던 것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됐던 것이다. 오늘은 낮에 먹은 것이 적은 대신 통증을 호소하진 않았다. 밤까지 그러면 좋겠다. 조금 전 영서와 잠시 대화했다. 방학 생활이 지루하고 의미 없이 보낸 것 같다고 후회한다. 누구나 생활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조금 위안을 받은 것 같다. 2003. 08. 29 역시 시간이 빠르다. 지난주에 영은이가 다녀갔고, 그 얘기를 쓰려했는데, 벌써 1주일이 지나가 버렸다. 영은이는 저축을 해서 학자금 대출금을 갚겠다고 엄마에게 말했고, 영서 용돈도 주고, 이모 간병비도 보태겠다고 말했다. 엄마가 좋아했다. 영은이는 지난번에 내가 너무 피곤해 하는 것을 보고 가서 걱정했는데, 다시 전처럼 밝은 얼굴로 간호와 살림을 하는 것을 보니 좋다고 말했다. 일기를 쓰지 못한 지난 열흘 동안에 많은 일이 있었다. 화장실에 가기도 힘들어 해서 변기를 사왔다. 이제 용변은 침대 옆에서 변기를 이용한다. 그리고 몸의 부기가 빠지지 않아 이뇨제 처방을 받았다. 처방을 받으러 가서 아내의 현재 상태를 말했더니, 임교수는 이제 두 달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자다가 가래가 막혀 갑자기 호흡 곤란을 일으키거나 물을 마시다가 기도가 막혀 운명할 수도 있다고 한다. 기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란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라도 바로 전화하고 응급실로 오라고 한다. 생명을 연장시켜 고생하게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젯 밤에는 아내가 잠을 전혀 자지 못했다. 나도 새벽 2시에서 4시까지 주물러주며 간병하느라 잠을 못 잤다. 오늘 아침에 진통제를 먹고 나서 낮에 비교적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잠을 많이 잤다.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상태를 전해 주고, 추석연휴에는 장례문제도 얘기해야겠다. 전주시 공원묘지에 전화했다. 납골당의 사용은 여유가 있고, 절차도 간단하다. 2003. 08. 31 어제는 아내가 아침 식사를 못했다. 점심도 미숫가루로 때웠다. 오후 4시경 아침에 끓여 놓은 미음을 먹었는데, 배에 통증이 온단다. 1시간 동안 맛사지를 하다가 결국 진통제를 먹였다. 30분 이상 지나서 겨우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오늘도 아침에 미음을 끓였다. 한 숟가락 맛보더니 못먹겠단다. 점심도 거르고, 오후에 효소 반 잔 마셨다. 오후 5시경에 미음과 브렌PSP를 먹었다. 그러더니 또 어제처럼 통증을 호소한다. 오늘도 1시간 반 동안 고생했다. 걱정이다. 안 먹고 버틸 수도 없고, 먹으면서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이뇨제도 몸의 기운을 다 빼앗기 때문에 힘들어 먹지 못하겠다고 하고, 진통제도 마찬가지다. 되도록 입원 날짜를 늦추고 싶은데, 용변 보는 것도 점점 힘들고, 아무래도 입원을 앞당겨야 할 것 같다. 변기에 앉히는 것을 처형도 잘 못한다. 그런데 병원에 가면 어떻게 한다는 건가? 카타타와 관장으로 하겠지. 성서묵상집을 처음 선물 받은 날은 읽어 주어 받아들였는데, 어제는 다시 읽어주니 바로 싫증을 낸다. 틱낫한 스님의 책도 읽어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통이든, 죽음이든, 건강할 때 미리 미리 정리해 두어야지, 고통의 한 복판, 죽음의 문턱에서는 그런 말들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을 거다. 무리하게 주입하려는 것은 건강한 사람들의 욕심이다. 2003. 09. 05 그저께 아내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이뇨제 복용 후 부기가 빠지면서 뼈만 남고 살이 다 빠진 것이 드러났고, 약을 복용하면서 기력이 너무 약해 집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추석 연휴가 다가오므로 내가 죽이나 미음을 끓여 먹이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통증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일이다. 아내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병원에 가봐야 여기 저기 주사기를 꽂고, 이리 저리 끌고 다니며 생명만 연장시킨다는 것이다. 자신이 정신을 잃거든 그 때나 병원으로 데려가란다. 몇 시간을 달래어 명절 동안에 병원에 가서 영양제라도 좀 맞고 기운을 차려 집으로 오자고 설득했다. 병원에 입원한 아내는 주사를 꽂으면서 바로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해진 모습이다. 얼마만의 편안함인지 모르겠다. 물론 아내는 그것이 모르핀 주사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도 아내의 몸이 편안해지니 너무도 좋다. 처형이 병실을 지키고 나는 집에 와서 잤다. 정말 오랜만에 밤새 고통스러워하는 아내 없이 혼자서 편하게 잠을 자게 되었다. 물론 혼자 남은 침실이 안락하기보다는 오히려 섬뜩하고 허전했다. 자다가 깨어보니 밤 1시다.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다. 다시 잠을 청했으나 또 잠이 깬 것은 3시여서, 일어나 이것저것 일을 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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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
2009.11.2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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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포인트
2009.11.21 23:53
살림마을에서 함께 수련을 받았던 분의 소식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의식의 깨어남이 건강할 때 있어야 하겠구나 생각 하게 됩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듯 한 환상적인 하루~
하나님! 제게 오늘도 환상적인 하루를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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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0
2009.11.23 04:57
사랑하는 함경숙님!!!!
님의 몸이 잠시 나아져 있을때 그때 우리의 인연은 시작 되었네요.
그 아픔을 견디시며 저를 챙겨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은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제일 힘들었을때 저를 하비람으로 안내해 주셨던 님!
1주기 때 여연 식구와 함께 님의 추모식에 참석했는데
우리 뫔 홈에서 님의 글을 대하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함쌤님!
당신께 큰 절 드립니다.
님 덕분에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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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0
2009.11.23 04:58
글을 올려주신
우리 구인회 보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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