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주범, '관피아' 아니라 '고피아'다
2014.05.10 12:30
세월호 주범, '관피아' 아니라 '고피아'다
[광화문]세월호 참사 뒤의 'Governing Class Mafia' 공생고리
관피아.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유치한 조어 방식에 피식 웃었다.
'관피아'의 원조인 '모피아'는 MoF(Ministry of Finance:재무부)와 'Mafia'라는 영어단어의 첫 음절들을 묶은 거지만, '관료+Mafia'의 결합은 국적불명 원칙파괴의 기형적 단어이다.
오래전 후배 기자가 '금융위원회+마피아'의 조어라며 '금피아'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써 왔길래 아예 지워버렸다. 무슨 되지도 않는 조어냐고.
그런데 이제는 사석은 물론, 언론, 심지어 대통령의 국무회의 공식 발언에서까지 '관피아'라는 단어가 '공공의 적'을 의미하는 공식 명칭의 지위를 차지했다.
세상이 이 모양인데 한가하게 말꼬리 잡느냐는 욕을 먹을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단어를 볼 때마다 불편하다. '원칙에 안 맞으면 어때,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이런 우리 사회의 무원칙이 '관피아'라는 말에도 녹아 있는 것 같아서다. '원칙'대로라면 '고피아(Government + Mafia)'정도가 될 것이다.
더 불편한 것은 관피아라는 조어 자체보다는 그 뒤에 놓인 '축소형 타깃팅'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돌아봐야 할 '고피아'는 관료 사회에 국한되지 않는 '거버닝 클래스(Governing Class)+마피아(Mafia)'가 돼야 한다.
천재지변이 없는한 오뚝이처럼 서야 할 그 큰 배가 어이없이 뒤집어지게 만든, 그래서 소중한 생명들을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간 순간순간 장면들을 점점이 이어가다 보면 우리 사회의 왜곡된 '거버닝 클래스' 지도가 또렷이 떠오른다.
규제의 목적을 망각한 행정부가 20년으로 규정된 여객선의 선령 제한을 완화한 이유는 "기업들의 비용이 연간 200억원 절감될 것"이라는 공무원의 말 속에 담겨 있다. 승객들은 '객체'일 뿐, 정부-기업의 동업자적 이해관계 앞에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입법부'는 필수적인 안전규정을 빠뜨리고 이익단체의 편익에 봉사했다.
부도덕한 기업주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은 3000억원대의 부도를 냈으면서, 100억원 남짓한 돈으로 다시 그 기업을 사들여 또 다시 그 보다 더 많은 부를 일궜다. 보통사람들에겐 한 푼이라도 갚지 않고서는 못살게 만드는 금융권은 1000억원이 넘는 빚을 탕감해주고, 100억원이라는 거액의 돈까지 빌려줬다. 법정관리를 맡은 사법부는 부도덕하고 의혹투성이의 경영진이 다시 기업을 사들이게 허락했다.
그렇게 기업을 되찾은 기업주는 경영에 직접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억대 연봉을 받았다. 컨설팅비, 예술품 구입비, 심지어 '이름 값'에 이르기까지 창조적인 방법으로 회사에서 '삥'을 뜯으며 예술가로서 우아한 삶을 살았다. 그 밑에서 겨우 입에 풀칠해온 선장과 선원들에게 숭고한 직업의식을 기대하고 우리 아이들을 먼저 살려내기를 바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을지 모른다.
유 전회장이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그리고 다시 재기하는 과정에서 늘 든든한 밑바닥은 신도들의 헌금이었고, 믿음을 담보로 한 노동착취였다. 종교라는 이름의 영리집단이 우리 사회에 구원파 뿐일까.
이렇듯 입법-사법-행정-금융-기업-종교의 결속 고리 속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고피아'들은 순진하게 겉으로 드러난 '공식' 룰을 믿고 따라선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세상엔 항상 '뒷면'이 있고, '비공식'을 따라야 하고, 서로 서로 권력을 품앗이해야 견고한 '고피아'로 살아남는다는 걸 체득하고 있다. 독점적 '지대'를 사이좋게 나눠갖는 공동체는 그렇게 해서 형성돼 왔다.
그런 고피아의 생존 노하우를 사회가 공유했더라면 선실에 대기하라는 선내방송에 '네~'하고 입을 모아 얌전히 대답했던 착한 아이들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른바 '국가 개조'라는 명분으로 '관피아'만을 난도질해서야 그 자리를 또다른 어색한 조어의 '~피아'들이 채울게 분명하다.
사회 곳곳에 도사린 위험요인을 찾아내며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우리사회가 찾아야 할 '기본'은 안전을 넘어선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온 몸으로 우리 사회에 던진 물음은 정권이나 정부, 혹은 관피아 차원이 아니다. 몰염치하고 기막힌 '고피아' 고리가 유지되는 한, '4.16 이후'에도 대한민국은 달라지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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