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의 편지 / 순리(順理)
2014.11.03 22:32
시내에 만남의 공간을 마련하고, 커피를 내리며 지내던 중, 몇몇 지인인 목사님들 중에도 사회봉사와 선교의 일환으로 이미 카페를 운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1회 한일카페목회협의회’를 일본에서 갖게 되었고, 참석하자는 권유를 받았지만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여건과 만만치 않은 경비문제로 포기를 했습니다.
동행하는 목사님이 걱정 말고 함께 가자고, 우리는 휠체어를 미는 게 더 좋다는 따뜻한 권유와 함께 내 몸으로 낳지도 않은 양아들이 부득이 자원해서 항공요금을 부담하고, 양딸들이 용돈까지 마련해주며 응원하는 바람에 떠나게 되었지요.
그렇게 주어진 기회로 예배당에만 있는 성직자 아니라 세상에 나와 모든 이들에게 향기로운 커피로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는,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겸손한 동지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모여 카페목회가 가야할 길과 전망을 모색하고, 각자가 직접 커피를 내려 맛을 음미하며 나누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카페를 소개하기도 했지요.
갈수록 예배당을 떠나는 이들, 예배당에 선뜻 들어오기 어려운 이들과 어울리고 대화로서 섬기는 일, 그것은 어쩌면 세상을 사랑해서 독생자를 보내신 그분의 뜻이기도 합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세상의 죄의 성향에서 구별된 삶을 의미하는 것이지 세상을 등지고 예배당에만 갇혀있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참으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것이 ‘거룩’이라면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께서 구태여 이 땅에 오실 필요도 없고, 와서도 안 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역에서 내려와 더욱 더 낮아진 모습으로 작은 카페에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모두를 내 사역의 대상으로 여기며 정성스레 커피를 내리는 내 단조로운 생활 속에도 계신 분,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던 야곱이 “과연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28:16)고 고백했던 그 분은 이 가을, 나에게 기쁨과 힘을 주시려고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동지들과 만나게 하시고, 아울러 도오꾜 관광과 때맞춰 열린 동경장애인복지기계박람회까지 보여주셨습니다.
부단하게 지내던 젊은 날에는 내가 앞서 가고 하나님께서는 늘 뒤에서 밀어주시는 줄만 알았던...그것은 참으로 고달픈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분은 앞에서 이끌어주고 계심을 느낍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지 내가 앞서가기보다 앞에서 이끄시는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삶이 한결 평안합니다.
단순히 관광이 목적이었다면 처음부터 내키지도 않았겠지만 바람직한 목적을 가지고 의미 있는 여행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야말로 순리(順理)였지요.
이제는 부단한 자리에서 내려 와 고요히, 그리고 잠잠히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계절의 순환처럼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경(順境)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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