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의 편지 / 꿈틀
2014.12.09 16:48
뿌연 겨울 안개가 눈과 함께 몰려올 때면 막연한 설렘과 함께 이제는
미세하게 무릎이 쏙쏙거리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나에게 설렘이 있다고 하면 당신은 웃을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늘 설렘 속에서 살고 있지요.
누군가를 만날 때에도, 맘에 드는 물건을 가질 때에도, 여행을 앞두고도 설렙니다.
새로운 계절이 시작될 때에도, 새해를 맞을 때에도 설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분을 의식하고 기도할 때에는 어떠한 절망과 막막한 상황에서도
말할 수 없는 기대감으로 설렙니다.
돌아보면 나는 지금껏 늘 설렘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그 막막했던 절망에서부터 지금껏 나에게 주어진 나날들은
늘 빛을 찾아 헤매는 설렘이었습니다.
초여름 신록의 계절이 시작될 때면 비록 그늘진 삶이지만
뭔가 아름다운 일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설렘이 늘 가슴 속에 봄 안개처럼 피어올랐지요.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비전이 있는 게 아니고, 건강한 사람에게만 꿈이 있는 게 아닙니다.
장애를 가졌어도, 능력이 없어도 살아있는 한 꿈과 비전은 있습니다.
오히려 어두울수록 반비례로 태양처럼 강렬한 기적의 비전을 꿈꿀 수 있으며
그러한 꿈이 성취가 될 때 드디어 살만한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버러지로 비유된 내용이 있습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 이사야 41:14 –
버러지는 무지하고 무력하여 오던 길을 자꾸 되돌아가고 누가 밟더라도
꿈틀거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바로 이 ‘꿈틀’이란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동작인 동시에 꿈을 꿀 수 있는
‘틀’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교활했던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버러지 같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처럼
우리도 헛된 교만과 아집에서 깨어나 진정으로 겸허한 하나의 생명으로 꿈틀하면서
꿈의 틀을 가질 때, 하나님의 도우심의 역사가 임하실 것입니다.
설렘은 소망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낙심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설레는 소망을 주십니다.
그분은 제한된 현실 속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우리가 가진 한계의 끝에서 새로운 비약으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설렘으로 꿈을 꿉니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동물들까지도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며
봄꿈을 꾸듯이 말입니다.
내 머리가 저 눈빛처럼 부시게 희어갈수록 반비례하게 나의 심령은
하늘의 소망에 더욱 가까워지는 그런 설렘으로 살고 싶습니다.
지금은 뿌옇게 차오르는 눈안개와 함께 또 겨울이
신화처럼 깊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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