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을 환영함
2015.02.05 15:35
압력을 환영함
이재형, 일요서비스(2014.12.28.) 조이빌리조트
우리끼리 이렇게 오붓하게 하는 서비스를 참 오랜만에 하네요. 외부손님들이 아무도 안계시구요. 몇일 전에 저희 뒷길을 산책하면서 겨울하늘의 찬란함을 즐길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 요즘 저녁 밤하늘 보신 적 있으십니까? 지금 아마 이 시기에 겨울하늘, 한 10시경에 나가보면 일년중 가장 화려한 별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엊저녁에도 늦게 나가서 보았는데 아,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더군요. 거기에 오리온이 떠 있고 오리온 주변을 일등성들이 둘러싸고 있고, 그래서 오리온에 있는 두 일등성까지 포함해서 8개의 일등성들이 그 주위를 쭉 둘러싸고 있습니다. 대단한 광경인 것이죠.
아마 여러분들 별들의 이름 좀 아시는 분들 계십니까? 저녁에 지금도 오리온좌가 있고 오리온 아래있는 별이 시리우스라는 별인데 그 시리우스가 지금 지구에서 맨눈으로 볼 때 가장 밝은 별입니다. 일등성이라고도 얘기하는데 이 시리우스 같은 경우에는 1등성을 넘어서 –1.46등성 등급입니다. 태양을 –26등급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시리우스도 –1.46등성이죠. 아주 푸르름 빛을 내면서 있고요.
그 다음에 오리온좌의 6모서리가 있는데 그중에 왼쪽 위에 있는 별이 베셀리우스란 별입니다. 그 별이 얼마나 큰 별인지 아세요? 지금 은하계와 은하계 바로 옆에 있는 마젤란 성운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도 은하계 주변을 도는 왜소은하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큰 별들 중에 베셀리우스가 하나 들어갑니다. 이 별이 얼마나 큰지 아세요? 제가 어제 한번 찾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직경이 태양의 1075배입니다. 그렇다면 그 크기는 그것 곱하기 3승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1000의 3제곱이면 얼마입니까? 그리고 베셀리우스의 밝기가 태양보다 135,000배가 밝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떨어져있는 거리가 643광년입니다. 그래서 지금 베셀리우스에서 오는 별빛은 이미 베셀리우스에서 643년 전에 출발한 빛입니다. 그 빛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오리온의 대각선 아래있는 오른쪽에 있는 별이 리겔이란 별입니다. 0.12성이니까 1등성보다 훨씬 밝은거죠. 태양보다 직경이 75배이고, 117,000배가 더 밝고 이 별은 베셀리우스보다 더 많이 떨어져있어요. 860광년 떨어져있습니다. 대단한 것을 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 밑에 제일 밝은 것이 시리우스라고 했는데 그 별은 태양보다 25배 크고, 태양계에 가장 가까운 별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거리가 8.5광년. 그러니까 시리우스의 빛을 우리가 보는 것은 이미 8.5년전에 출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 지금 비치고 있는 거죠. 대단한 것을 보는 거죠. 그리고 이 세 일등성 말고도 그 외에 여러 일등성들이 쭉 둘러싸고 있습니다. 프로키온, 폴록스, 케스터, 카펠라, 알데바레... 이런 별들이 쭉 있죠. 한번 저녁에 나가 보세요 대단한 우주의 축제가 우리의 바로 머리 위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우주에서, 마젤란성운을 포함해서 여기서 가장 밝은 별이 뭔지 아세요? 마젤란 운하에 있는 어떤 별인데 알빌산룩AL이라는 별입니다. 이게 태양보다 870만배가 밝답니다. 태양보다 더 밝은 별들의 리스트를 보니까 100개가 넘어요. 그 중에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6개밖에 안됩니다. 그렇게 밝은데도 불구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요. 떨어져있는 정도가 엄청나게 떨어져 있어서 수십만광년 떨어져있는 거죠. 그러한 별들이 지금 우리한테 보이는 차원, 안 보이는 차원에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광대한 우주를 생각해볼 때 그에 비해서 나란 존재는 얼마나 왜소한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나는 그 광대한 우주를 바라보면서 그 우주를 내 눈에 담아서 바라보면서 그 우주와 대화하고 있습니다. 비록 크기로 보아서는 그렇게 왜소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러나 나는 그 우주를 상대로 대화하는 존재입니다.
오늘 제가 왜 이런 큰 이야기부터 시작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 왜소함을 경험하면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다양한 압력, 그런 압력들을 우리가 지금 많이 경험해봤죠? 그 압력들을 느낄 때 이 광활한 우주와 내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이것을 한번 생각해보시라는 의미에서입니다. 나는 이 우주와 별개의 존재가 아닙니다. 사실 나의 이 육체, 몸은 이렇게 왜소할지 모르지만 나의 의식은 광활한 이 우주를 다 포함합니다. 다 포함할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큰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엄청나게 큰 존재가 어떤 때는 얼마나 작아집니까? 어떤 때는 바늘로 찔러지지도 않을
정도로 작아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지요.
유명한 역사학자 중에 영국의 아놀드 토인비가 있습니다. 그가 <역사연구>라는 12권으로 된 유명한 책을 쓰고 굉장히 많은 저작을 했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굉장한 영향을 미친 분인데 그분이 19개의 세계문명의 흥망을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이 이것입니다. 인간이 역사 속에서 어떤 문명이 성공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 도전, 엄청난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했을 때, 그리고 그 엄청난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것을 안내할 수 있는 소수의 리더가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이 문명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도전이 없다면 문명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통한 과정을 겪지 않고서는 그런 아름다움이 꽃피어날 수가 없고, 위대함이 드러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좀 나누고 싶은 것이, 이 압력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압력. 요근래 오면서 우리가 여러 가지 압력을 경험했고 가까이 있는 여러 사람들이 그런 경험을 했죠. 압력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오죠. 사고를 통해서도 오고. 어떤 우발적인 것 같은 사고를 통해서도 오고, 상황을 통해서도 오고, 다양한 요인을 통해 압력들이 옵니다. 그런데 그 압력이 없이는 커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압력에 대해서 좀 나누고 싶은데요. 마틴의 서비스 중에 “압력을 환영합니다”라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리빙더워드 클래스를 들은 분은 이 서비스를 기억할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서비스 내용을 중심으로 압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압력이 오면 어떻습니까? 대체로 압력이 오면 많은 경우에 무너지죠. 압력이 오면 무너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경우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진리입니다. 참은 어떤 경우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진리의 중심을 맞추는 사람이 있다면, 이 진리에만 중심을 맞추고 자기 정체성을 거기에만 두는 사람이 있다면, 이 땅에 무너지지 않는 어떤 것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이 진리에 중심을 맞추는 것에 대해 그동안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 왜곡된 것들을 완전히 일소시켜버릴 수 있는 방법, 수단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그것이 또한 바로 압력입니다. 왜곡된 것들은 이 압력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어떤 압력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을 때, 그 때 이 왜곡된 패턴들을 일소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압력이 점점 더 커지도록 함을 통해서요. 그러면 이 왜곡된 패턴들은 그것이 어디에 있던 간에, 개인적인 것이든 상황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어떤 것이든 간에 압력이 커지면 어느 단계에서는 그 왜곡된 패턴들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리에 우리의 정체를 두고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진리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그 왜곡된 패턴들이 무너질 때 나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 왜곡된 패턴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왜곡된 패턴이 무너질 때 나도 같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바로 이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자리에 있음으로 해서, 압력이 커지도록 해서, 이 땅에 있는 그 왜곡된 것들이 사라지도록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고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치유과정에 대해 얘기할 때, 내면의 어떤 부분이 치유가 필요한 부분은 왜곡된 패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치유가 필요한 부분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나요? 내가 진리에 중심을 맞춤으로써 내가 경험하는 이 상황 속에 압력이 커지도록 한다는 겁니다. 압력이 커지도록 내가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죠. 압력이 커지는 상황을 만나는 것이죠. 그럴 때 그 왜곡된 패턴만 무너지고 떨어져나가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내가 진리에 중심을 맞추고 있을 때 나를 제외한 왜곡된 것들만 그 압력을 통해 빠져나가게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그 왜곡된 패턴, 그것이 왜곡임을 의식하지 못하고 그것을 붙들고 있다면 압력에 의해 그것이 떨어져나가려 할 때 내가 먼저 무너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떨어져나가고 그 왜곡된 패턴은 남아있게 되죠. 왜곡된 패턴만 떨어져나가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심에 초점 맞춰진 사람들로만 구성된 코어(Core)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에 철저하게 중심맞춰진 사람들입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어떠한 압력이 오더라도 견디는 강한 중심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도 그러한 코어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함을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 드러나야 할 참이 드러나게 합니다. 그것이 우선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무너지지 않는 진리의 자리에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거에요. 우리가 그 자리에 있지 않다면, 이 세상에 압력이 형성돼 갈 때 우리가 같이 무너집니다. 우리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압력을 그냥 풀어버리는 방법 중에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뭐죠? 바로 말하는 것입니다. 압력이 차오를 때 그 압력이 내 안에서 쌓이도록 함을 통해서 내 안에 그 압력이 작용하고 차올라서 어느 정도가 차면 내안에 있는 왜곡된 패턴들이 떨어져나갈 수 있을 텐데, 그것을 내안에 딱 잡아놓질 못하고 그 압력을 못 견뎌서 그것을 터뜨려 버리는 거죠. 나의 시스템이 그 압력을 바깥으로 배출해버리는 거예요. 그런 경험 여러분들 해보셨어요? 다들 웃으시는 걸 보니까 해보신 것 같네요. 바깥으로 그 압력을 튕겨버린다는 거죠.
여기서 마틴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독약을 자신의 시스템에서 가지고 나오는 사람은 그 독약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소리내며 튀겨버립니다. 그런 경우에 타인들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음이 명백합니다. 그것은 완전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일입니다.”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도피 매커니즘이죠. 그러한 도피에 익숙해져있는 사람들은 결국 참된 자기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압력을 견딜 수 있는 근육을 키우지 못하기 때문이죠. 결국은 그 자기 안에 있는 왜곡패턴들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주님을 섬기는 것을 완전히 막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압력을 내 안에 견디고 그것을 바라보고 그러면서 그 압력을 통해 일어나는 창조적인 과정을 느끼면서 지긋이 견디면서 압력이 찼을 때, 압력이 없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압력이 커질수록 더 깊은 자리에 있던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해요. 그래서 그것이 내 의식으로 올라와서 딱 떠나는 것을 내가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압력이 필요합니다. 압력 없이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이죠. 압력이 정화를 일어나게 하는 수단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압력이 내 안에 차올라서, 그러니까 사실은 우리가 여러 가지 최근에 압력을 경험하는데 그것은 결국 좋은 것입니까, 안 좋은 것입니까? 그것은 좋고 안 좋음이 아니라, 제대로 와야 할 것이 오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하고자 하는 것은 압력이 생겨나도록 해서 이 세상에 필요한 정화와 관련되어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하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압력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짜증내고 압력 때문에 화를 낸다면 그것은 진리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고, 왜곡 패턴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압력 견디기 쉽습니까? 정말 정말 어려울 정도로 압력이 올라올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틴께서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약간이라도 응답이 있는 한, 언제나 우리는 압력이 줄어들도록 돌보아왔고, 그리고 그 사람이 내쳐지지 않고 되돌아와서 어떻게든 계속 진리에 중심 맞추기를 배우면서 더 깊은 훈련, 더 많은 도움을 받도록 우리가 해줍니다. 그래서 만약 진리에 중심 맞춘다면, 다시 말해 참에 계속 응답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안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여러분의 환경 속에서 여러분이 실패하도록 만들 정도의 압력이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압력이 일어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응답입니다. 진리에 응답하여 진리의 패턴 안에 내가 머물 때, 그 압력을 견디게 해주는 하늘의 위로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왜곡된 세상 안에 태어났죠. 완벽히 다 갖추어진 세상으로 우리가 온 것이 아닙니다. 어두운 세상으로 우리가 왔습니다. 그런 왜곡된 세상에 와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약하고 비참한 성격을 지닌 채 머물겠다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선택은 진리에 중심을 맞추고 어떠한 압력이 생기더라도 상관없이 이를 견제하고 진리에 충실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어둡고 왜곡된 세상에 왔지만 이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순간 일어나는 선택일 것입니다. 한번 딱 ‘나는 이 길을 갈 거야!’ 하고 선택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압력은 계속해서 차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왜곡된 패턴은 얇은 층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얇은 층에 있는 왜곡된 패턴은 쉽게 떠나가죠. 그러나 점점 더 깊은 왜곡된 패턴이 차올라옵니다. 개인적 패턴, 가족의 패턴, 그리고 나의 가족을 떠나서 나의 민족의 왜곡된 패턴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전 인류의 왜곡된 패턴이 나에게 올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패턴이 정화되는 과정에서 엄청난 압력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매순간의 선택이라는 겁니다. 그냥 한번 선택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온 십자가 경험 속에서의 압력을 상상해보세요. 상상을 초월하죠. 모든 인류의 왜곡된 패턴이 그 한 존재의 몸에 와서 다 머무는 압력. 그 압력 속에서도 진리에 중심을 맞추고 사랑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셨죠. 이것이 구원입니다. 지난번에 유진께서 서비스에서 그 얘기를 하셨죠. 우리가 정말 견디기 힘든 어려운 경험을 하면서 그 힘듦을 절절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안 느낀다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이 없는 것처럼 외면하는 게 아니라, ‘아 그것이 왔구나.’ 하고 그것을 그대로 느끼면서 그 자리에서 다시 내가 진리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선택을 할 때, 그것이 재림의 의미라고 얘기하셨습니다.
정말 큰 압력이 우리에게 올 수 있습니다. 그때 나는 무엇을 선택하는가? 그냥 그 압력, 아 이것도 안 된다면 나 견딜 수 없어! 하고 포기하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오케이. 지금까지 인류는 그 선택을 해왔습니다. ‘이건 너무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이렇게 애써왔고, 이렇게 그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해왔는데 나에게 이건 너무해.’ 하면서 하늘을 원망하는 것.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진리에 중심을 맞추고 그 압력을 견디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나라는 개인을 통해서 이 땅에 아까 이야기한 별들 이야기에서 그 별빛보다 더 밝은 빛을 내는 순간입니다. 그것을 선택하는 순간, 이 하늘에 있는 모든 별들이 춤을 추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죠.
또한 부활은 왜곡된 패턴을 사람들로부터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왜곡된 패턴을 사람들로부터 제거하는 것. 그래서 그 왜곡된 패턴이 제거될 때 개인이 더 높이 올라갑니다. 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거예요. 그것이 제거되도록 내가 그 자리를 지킬 때 나는 더 올라갑니다. 그러면서 그 왜곡을 초월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그 부활의 과정에 함께하면서 그 왜곡을 초월할 때, 내가 진리에 중심을 맞추면서 그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서브할 수 있는 서버로서 설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빙하는 것’이란 무엇이냐면, 우리가 진리에 중심을 맞추는 것을 내가 진리에 중심을 맞춤으로써, 그 내가 진리에 중심 맞춘 그 자리로 다른 사람들도 오도록 초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중심을 맞추는 것을 공유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서빙입니다. 내가 그러한 승리의 경험, 그러면서 부활에 동참할 때 내가 비로소 서빙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압력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지닐 때 내가 서빙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압력패턴에 대한 이런 태도 없이 우리는 서빙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빙은 압력을 통해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틴의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압력을 해소하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압력을 쌓이도록 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진리에 중심이 맞추어져 있으며, 진실하지 않은 것, 왜곡패턴인 것은 치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관심사입니다. 이런 토대위에서 압력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가지고 서브할 때 우리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기능의 영역으로도 움직여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영역에 있는 인간들도 다룰 수 있고, 일들이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 속에 제한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엊저녁 오후에 갑자기 어떤 할 일이 생겼어요. 밤에요. 한밤중이라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가 이것은 결국 모두와님과 종행님이 담당해주면 좋겠다고 했죠. 끝. 그걸로 끝. 어떠한 기능으로도 들어갑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건이 없습니다. 그것이 내게 해야 할 일로 다가온다면 오케이. 그냥 가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이 베스트 웨이라면 그렇게 오케이. 그것이 서브의 자세입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리고 거기서 압력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 정도에서 압력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미 압력에 대한 나의 태도가 정해져있기 때문에요. 그것이 서브의 태도입니다. 이것이 간단한 예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의 성격이 그럴 수 있습니다.
이 정화, 정화도 압력 없이 온 적이 없습니다. 결코 이 땅위의 어떤 누구도 압력 없이 정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압력은 바로 정화의 수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경험하는 압력들 있잖아요. 그 압력을 경험하면서 그런 압력 속에서 내가 진리의 자리를 지키면서 그 압력을 지키면서 진리의 자리를 지키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동체, 그것은 진리에 항상 중심을 맞추면서 압력이 쌓이도록 하는 우리의 훈련장이라는 글이 나옵니다. 우리의 훈련장입니다. 우리의 일상 삶속에서 보다 더 큰 압력이 올 때를 대비해서 우리의 일상에서 압력을 신중하게 하나하나 다루어나가는 것이죠. 군인들이 훈련을 하죠. 왜 훈련합니까?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이죠. 전쟁이란 상황이 올지 안 올지는 모르죠. 그러나 그 상황이 올 때를 대비해서 그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훈련하죠. 경우에 따라선 너무나 그 압력이 커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소식들도 있죠. 사고도 일어나고 자살하는 경우도 있구요. 그러나 그 훈련이 필요합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보다 더 큰 압력 속에 있어야하기 때문이죠.
마샤의 톰과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해주신 것 중에 인상적으로 남았던 것이 있습니다. 콜로라도에서 캐나다의 원헌드레드 하우스로 가는 길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가는 동안 거의 대부분을 창문을 다 닫고 밖을 보지 않도록 하고 갔다는 거예요. 톰의 훈련 방법이었던 거죠. 그 기회조차 훈련으로 삼았던 거예요. 압력을 견디는 훈련이었죠. 왜? 그런 압력들이 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인류 안에 점점 더 큰 압력들이 오고 있습니다. 이 때에도 무너지지 않는 그 축이 서있도록 하기 위해서 일상 속에서 훈련이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이 서비스의 제목처럼 “압력을 환영해야 합니다” 압력이 없으면 왜 이렇게 압력이 없지? 하고 압력을 주어야 합니다. 왜요? 지금 인류의 상황을 보면 앞으로 정말 큰 압력의 장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실적으로 그런 엄청난 압력 속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전 속에 있는 시리아, 찾아보면 지금도 세계 20군데 넘는 곳에서 내전과 전쟁 등이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얼마나 큰 압력 속에 있겠습니까? 많은 압력들이 있습니다. 그런 국제적인 압력이 앞으로 더 큰 압력으로 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때에도 무너지지 않는 하나의 축, 그래서 그 무너지지 않는 축을 보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그 빛을 따라서 올 수 있도록 하는 그 자리를 우리는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마틴께서 하신 이야기를 그대로 읽겠습니다. “압력이 쌓이도록 하고 왜곡패턴들이 제거되도록 하고 진리가 남도록 하십시오. 진리는 견딥니다. 그리고 정화의 과정 속에서 주위에 많은 먼지와 연기가 발생할 수 있으며, 또 그 모든 것이 걷히게 될 때 진리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며, 만일 여러분이 진리와 동일시한다면, 여러분과 진리와 동일시한 모든 사람들이 남게 될 것입니다. 사라져버리게 될 모든 것은 왜곡패턴들입니다. 대단한 혼란이 있을 수 있으며, 모든 것이 붕괴되는 것 같고, 모든 것이 파멸되는 것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진리에 중심을 맞추고 계십시오. 동요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개입하지 마십시오. 중심을 맞추고 계십시오. 머물러 계십시오. 침착하게 계십시오. 그러다보면 얼마 안있어 분위기가 맑아질 것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실제적인 것, 사실이었던 그 모든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생생하게 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흐리게 했던 왜곡 패턴들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야구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신이라고 불리는 72세의 김성근 감독입니다. 굉장히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영광스러운 경험도 했고 좌절의 경험도 했죠. 그 사람이 선수들 중에 꼴찌를 일등으로 만드는 경험을 바탕으로, <꼴찌를 일등으로>라는 책을 썼어요. 어떻게 꼴찌선수를 주전 못지않은 일등으로 만드는가? 그 방법은 바로 압력을 줬다는 겁니다. 이 양반은 아주 지옥훈련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주 한계점까지 가도록 압력을 주는 겁니다. 예를 들어 배팅연습을 할 때 거의 몸이 지쳐서 내가 배팅연습을 하는지 안하는지도 생각이 안날정도까지 연습을 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도저히 안되겠습니다’라고 할 때 그때 한번 더 밀어붙이는 거예요. ‘더해, 더, 더!’ 그러다보면 길이 보인다는 겁니다. 동양에 ‘백척간두 진일보’란 말이 있습니다. 백척간두에 서면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절벽이에요. 그 백척간두 절벽 앞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길이 보인다는 말이죠. 이 지옥훈련은 어쩌면 그 절벽에서 한발 더 나가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꼴찌들에게 승리하는 경험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런 압력이 없으면 우리가 커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유해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을 읽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압력 하에서 기능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또한 항상 진리에 중심을 맞추는 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이 땅에서 주님의 사목의 일부인 존재들에게 양도된 사목의 이러한 책임들을 다룰 수 없을 것입니다.” 압력 하에서 기능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압력 하에서 기능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압력을 견디는 그 힘을 길러야합니다. 그 압력이 내 안에서 그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정화되어 가는 내 내면의 모습도 보면서, 그 압력 속에서 내 상황이 정렬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아까 먼지도 나고 연기도 난다고 했죠. 그것을 보면서, 그대로 지켜보고 미동도 하지 않으면서 그 자리를 계속 지키는 것. 그것을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훈련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존재가 아닙니다. 아까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그 거대한 우주적 존재들과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을 지닌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차원이 있죠. 의식에도 다양한 차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모든 것의 다양한 차원이 있음을 우리가 알죠. 광물계도 있고 식물계, 동물계, 그 다음에 사람이 있습니다. 식물계 동물계에도 다양한 차원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다양한 차원이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의식 안에도 여러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우주와 함께하는 차원까지 있고, 조그마한 것도 견디지 못하는 작은 에고에서 시작해서 우주를 품는 큰 마음을 지닌 그런 의식차원까지 있습니다. 사람이라고 다 같이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의식의 차원이 다릅니다. 그 의식을 키워야 합니다. 그 방법은 압력을 통해서 키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냥 작은 의식의 차원에 머물다 가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러나 우리는 그러기 위해 온 존재가 아닙니다. 정말 큰 우리의 참모습이 드러나서 나의 세계를 밝히기 위해 온 것이죠.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 어려운 압력 속에 있는 그 많은 이들, 아까 얘기한 시리아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이라크, 레바논... 많은 엄청난 사회적 압력 속에 있는 사람들. 우리도 6.25라는 경험을 했죠. 대단한 압력 속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들에게 축복을 보내는 시간을 함께 잠시 갖고 이 시간을 마쳤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축복을 보냅시다.
‘지금 이 순간, 그 큰 압력 속에서 잘 견디고 계시는 여러분들을 기억합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견디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찾으십시오. 압력이 당신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하시고 생명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생명은 영원합니다. 당신이 생명에 초점을 맞출 때, 당신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우리 함께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의 사랑과 축복을 보냅니다. 때가되면 당신이 경험하는 이 순간의 압력이 당신을 참으로 키우고 당신이 이 땅에서 더 큰 빛을 드러내도록 도울 것입니다. 압력을 견디고 있는 당신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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