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거 쾨더 "십자가를 함께 진 시몬"
2016.02.14 16:30
지거 쾨더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진 시몬"
되었는데 그들은 그를 붙들어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시몬은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였다. " - 마가 15장 21절
서둘러 형을 집행하고 쉬고 싶은 병사들의 욕구는 지치고 휘두른 채찍에 상처입은 예수가 형장까지 십자가를 지고 못 갈거라는 생각이 들어 병사들은 꼼수를 쓰게 됩니다. 변칙으로 예수 대신 누군가에게 십자가를 지고 가게할 요량입니다. 신속하게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을 보니 그 전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형장을 향하여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가는 예수에게서 이를 옮겨 어거지로 시골뜨기 시몬에게 지고 가게 합니다. 어쩌면 그의 생김새나 옷차림이 어수룩 하니 말 잘 듣게 생기고 만만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경전은 운수 없게도 십자가를 진 시몬의 태도에 대하여 못 마땅했다거나 불평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등 별다른 술어를 동원하지 않습니다. 병사들 생각처럼 그가 시골 출신으로 만만한 사람이었거나 시몬의 심성이 착하고 동정심 많은 사람이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지거 쾨더 신부는 "시몬이 함께 십자가를 짐" 이라는 이 그림에서 작가는 마치 골고다 가는 길에 예수가 시몬에게만 십자가를 들게 한 것이 아니라 한 형제 처럼 같이 십자가를 나눠지고 가는 모습으로 그립니다. 예수님 따로 시몬 따로가 아니라 나란히 얼굴 둘, 손은 넷, 어깨 위에 나눠진 십자가 하나,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 목수면 그 아들 예수도 목수, 시몬 역시 마치 나무 다루는 데 꽤 솜씨좋은 이웃집 목수라듯이 무거운 십자가를 나눠진 모습이 정겹고 어깨동무를 하고가는 형제의 그것입니다. 이렇게 한몸, 한 맘으로 같이 지고 가는 십자가의 무게는 무게를 덜어내고 가벼워지고 말며, 어떤 자세로 그렇게 가뿐하게 지고 가는 지 걸음 걸음 집중해서 바라보고 되고 한 번쯤은 손길로 더듬어 보고 싶기까지 합니다.
이 그림의 십자가를 움켜쥔 모습을 바라보면 몸따로 맘 따로가 아니라 몸과 맘이 하나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팔 하나는 나눠 진 십자가를 감싸고 다른 팔 하나는 서로 상대방을 감싸고 있습니다. 얼굴까지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서로 맞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뫔을 나누는 일심동체요 一心同體, 천화동인 天火同人입니다.
복음서는 중도에 십자가를 진 이가 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인 키레네 출신의 남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당시 많은 사람들 중에 그가 구레네 시몬인지 저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입니다. 단지 그가 처형장으로 가는 예수님의 행렬과 만나게 되고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졌다고만 전합니다. 그런데 복음서의 기자와 달리 지거쾨더는 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당시 기자나 이 지켜봤던 것과는 달리 그 현장에서 그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간 사람인 듯 자신이 직접 본 상황을 그림을 통해 직접 구현합니다.
형장에 가던 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다 도저히 힘들어 병사들의 말을 빌려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을 맡긴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시몬이 한 뫔이 되어 그 무거운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갔다고요. 지거의 그림을 보면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간 장면에서 여러면에서 두 분이 참 닮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심지어 동작이나 태도까지도요. 복음서와 달리 지거는 예수와 시몬을 무척 닮은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얼굴 생김새는 말 할 것도 없고 키, 눈, 코, 입, 수염 등 이 두 분이 마치 쌍둥이처럼 그린 것입니다. 심지어 뒷면의 두분의 팔도 서로 교차되어 상대방의 몸을 감싸고 친근한 눈으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시몬은 눈으로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어쩌다 십자가를 지게 되었지만 나는 이 십자가를 거부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이 십자가를 우리 둘이 함께 지고 갈 것이고 이렇게 부축하고 가다보면 곧 목적지에 이르겠지요. 예수님도 말 없이 이 고난의 행진에 덧붙여 말 없는 말을 주고받습니다. 나 역시 이 길이 너무 고통스러워 이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수 없는 날을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 결국 그들의 뜻대로 이 사랑과 정의의 싸움에서 나를 죄인으로 선고하여 지금 죽음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나도 이 고난의 도정에서 물러서지 않고 당신과 내게 허락한 이 길을 끝까지 가겠습니다.
지거 쾨더는 예수께서 자신 만이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 수 많은 고통받는 인간,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일어설 수 없을 때 모두 다 버려도 인류의 마지막 친구로 십자가를 진 그 사람과 연대하여 끝까지 생명의 오솔길을 더불어지고 가신다는 십자가의 의미를 이 그림을 통해서 역설하고 있으며, 신의 무한한 축복을 받아 육신이 빛이된 미약한 개똥벌레가 어둠 속에서 제 몸보다 훨씬 큰 불덩이를 만들어 내듯이 존재의 좁은 길을 밝히는 우주의 촛불처럼 영혼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부채질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살려 내 무한히 화폭에 담아냅니다.
이것이 생이었던가? 그렇다면, 다시한번.. ! 하늘의 명령 대로 살아있음으로 순종하며 그 순간 고난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고난의 동역자로서 자신의 운명을 부둥켜 안고 십자가를 진 운명애 그의 십자가는 고난을 함께 나누시는 하늘이 주시는 사랑의 궤적일뿐, 그 체험을 통해 황홀한 존재의 빛을 나눈 그의 영혼은 별안간 빛으로 가득 차고, 기쁨에 넘치는 빛을 주체할 수 없어 사방 천지에 불 밝힙니다.
'sial(2016.2.13)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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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님의 글을 읽으며 구레네 사람 시몬은 우연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골고타 여정을 동행하기 위해 준비된 사람이었다는생각이 올라 오네요
예수를 사랑하여 예수를 따라가다 예수가 되어가는 길
아마도 지거 쾨더도 그 길을 갔기에 이런 표현을 하였겠지요
우리 진달래의 보물창고 씨알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