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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붓다마스> -- 불승사 카페에서

2016.10.27 00:25

물님 조회 수:3222

화해와 평화의 시, 이병창 목사 시집 <메리 붓다마스>    -- 불승사 카페에서
향내음 

진달래교회 담임 목사인 이병창 시인이 미국 에피포드 문학상을 받은 첫 시집 《나의 하느님이 물에 젖고 있다》 이후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냈다. 종교 간의 화해와 평화, 몸과 마음 살리는 길, 삶에서 체득한 깨달음 등을 주제로 86편의 시들을 묶었다.




표제작 <메리 붓다마스>가 그 제목으로 보여주듯이 시인에게는 사랑해야 할 이웃만 있을 뿐 차별해야 할 타 종교인은 없다. 역시 그 시선으로 시인은 자기를 잊은 채 바삐 달리기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지금 여기의 풍요로움을 온몸으로 느껴보라고, 그리하여 진정한 삶으로 깨어나라고 얘기한다.  

용타 스님, 안도현 시인, 배명식 목사, 정철성 평론가 등이 추천사를 썼다.







종교의 벽을 허무는 평화의 시




시인이 담임 목사로 있는 진달래 교회에서 성탄절 예배가 끝날 때 인각사 주지 상인 스님이 전화를 걸어 활기찬 목소리로 전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교우들에게도 평화의 소식과 안부를 지금 전해 주세요.” 교우들은 미소를 짓고, 우리도 석가탄신일 때 뭐라고 축하 인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시인은 대답한다. “메리 붓다마스라고 하면 되겠지요.” 바로 그때 붓다의 하늘, 그리스도의 하늘이 밝아진다.




표제작인 ‘메리 붓다마스’의 내용이다.

표제작의 일화가 보여주듯이 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이면서도 시인은 종교의 틀 속에 갇히지 않는다. 시집의 2부 향일암은 시인이 절집들을 순례하듯 다니며 지은 시들을 엮었다. 종교의 틀에 매이지 않는 것은 그의 시만이 아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스님들과의 교분이 깊다. 그 스스로 영감의 원천 가운데 하나로 선(禪)을 들 정도이다. 15년 전에는 동사섭 수행으로 유명한 용타 스님을 교회로 초청해 설법을 듣기도 했다. 이 일로 전주가 시끌시끌했다는데, 그런 일을 거치며 이제는 적어도 전주에서는 종교 간의 교류에 별 거부감이 없게 되었다고 한다. 용타 스님은 이 시집을 다섯 번 읽고서 추천사를 썼다.




역시 현직 목사인 배명식 시인의 추천사는 종교의 틀을 보지 않고 같은 형제로 보는 시인의 마음을 적절히 표현한다. “그에게는 사랑으로 대해야 될 이웃만 있을 뿐 차별해야 할 타 종교인은 없다.”  

시인이 타 종교인들을 차별하지 않는 것은 어떤 그럴듯한 이론에 공감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의 시들이다. 그보다 앞서 시인의 말은 그리스도의 평화의 정신을 깊이 체득하고 있음을, 그 평화의 정신이 어떤 통찰로부터 비롯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천으로 깔린 돌멩이도 모두가 다른 것은/하나하나가 완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경각산의 하늘은 금과 울이 없다는 것을,

- 시인의 말 중에서







몸 마음을 살리는 살림의 노래, 영혼을 깨우는 명상의 언어




시집은 몸 마음을 살리는 노래들로, 영혼을 깨우는 명상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사막의 교부들, 개신교 수도원 동광원, 수피즘, 선(禪) 등 시인에게 영감을 준 원천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에니어그램 수련회와 도예 체험 학습을 통해 뫔(몸 마음)을 살리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 온 시인의 일상적인 삶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1부 경각산 가는 길은 시인이 터를 잡은 경각산에서 생활하며, 2부 향일암은 불교 절집들을 다니며, 3부 카라쿰 사막에서는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인도 등을 여행하며 쓴 시들을, 그리고 4부 ㅁ, ㅂ, ㅍ은 시인의 마음을 울린 기독교 인물들에 관한 시들과 그 밖의 시들을 엮었다.




시가 시인을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할 때, 이병창 시인의 시들은 깊고 깊어져 단순해져버린, 내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두루 통해버린, 안팎과의 싸움에서 물러나 한가롭고 자연스러워진 시인의 마음을 보여주며, 시인이 사랑의 눈길로 만물을 바라보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시들에는 알아듣기 힘든 개념이나 표현들도 없고, 복잡한 무엇도 없고, 그저 일상적이고 소박하고 자연스럽기만 하지만, 사람과 그 마음에 대한 통찰들이, 몸과 마음을 살리는 지혜들이, 분열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 길이, 범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깊고도 단순한 진실들이 올올이 담겨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시집은 명상의 시, 사랑과 평화의 시, 살림의 시라고 할 만하다.  







이병창 시인




1952년 봄에 태어났다. 그는 원광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10여 년의 고등학교 교사생활을 경험했다. 그 뒤 세 곳의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으나 교파마다 다른 예수의 얼굴을 발견하고, 진정한 그리스도를 찾는 영적 순례를 해 왔다. 사막의 교부들과 선(禪), 개신교 수도원 동광원, 그리고 에니어그램의 원형을 찾고자 수차례의 중앙아시아 순례를 통하여 접해 온 수피즘은 그에게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는 전주 인근의 경각산 고갯마루 불재에서 뫔(몸 마음)을 살리는 에니어그램 영성 수련 안내를 하며 도자기를 굽고 있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진달래교회 담임 목사로 재직 중이다.

문학과 의식 신인상, 미국 에피포드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크리스챤시인협회, 민족문학작가회의, 세계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첫 시집으로 『나의 하느님이 물에 젖고 있다』(미래문화사. 1997년)가 있다.







추천사  




메리 붓다마스를 음미하면서 문득문득 참신한 선기(禪機)를 접한다. 그 자체로 휴식이요, 행복이다. 그의 시는 걸림 없음과,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다. 걸림 없음이란 자유요, 개념을 넘어섬이다. 그는 ‘물’이라는 별칭답게 활달한 웃음으로, 날카로운 말씀으로, 즉비(卽非)의 의식으로 살아가는 시인이요, 구도자다.

_용타 스님 (동사섭|재단법인 행복마을 이사장)




여기 실린 시들은 길 위의 시이기도 하고, 길 바깥의 시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는 길을 벗어나고 싶어 하고, 길 바깥에서는 스스로 길이 되고 싶어 하는 시. 영혼과 육체를 따로 사유하지 않는, 동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거리낌 없는, 모처럼 자유로운 시적 행보를 만나는 즐거움 크다.

_안도현(시인, 우석대학교 교수)

  

이병창 시인의 시는 우주적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을 지닌 자의 내적 체험의 소산이다. 미망의 안개를 거두어 버린 영적 통찰에서 드러내는 시인의 사유는 일상의 현상이나 사물들과 사람들에 대한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그에게는 사랑으로 대해야 될 이웃만 있을 뿐 차별해야 할 타 종교인은 없다.

_배명식(시인, 한국크리스챤시인협회 회장)




장소와 인연이 시인을 떠돌게 만들었다. 그의 발길이 멈추는 곳마다 사람에 대한 경배가 꽃처럼 피어났다. 왼손에 성경, 오른손에 시집을 든 이 특이한 시인은 신을 기다리는 대신 몸을 명상한다. 감각과 수식이 넘쳐 나는 시들을 읽다가 그의 시를 대하니 청량한 소나기를 만난 듯 반갑다.

_정철성(문학평론가, 전주대학교 교수)







책 속에서




세상의 길들은

모두 직선으로 바뀌어 가고

사람들의 숨은 가빠지고 있다.

숨이 가쁠수록

인심은 거칠어지는 것인가

단군 이래 가장 부자로 산다는데

왜 이렇게 마음들은

거지가 되어 가는 것일까

없다고, 나는 무엇인가 없다고

조바심치는 세상

아직 여수 돌산 향일암으로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어서 좋다.

법당의 뜰을 밟는 사람들의

숨찬 발걸음 소리를

무념의 은빛 파도 소리로

잠재우는 향일암

마당 끝에 서면

바다와 싸우지 않는 파도

나무와 다투지 않는 바람이

햇살 아래 어울려 잘 놀고 있다.




- <향일암>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