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라고 하는 포도밭에서
2016.12.04 10:15
지구라고 하는 포도밭에서
요한 15: 1- 17 - 2016, 12,4
요한복음 14장의 말미는 ‘일어나 가자’로 되어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대한 행동은 18장에서 나타난다. 그러니까 15장에서 17장은 겟세마네로 가는 긴박한 와중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으로 배치되어 있다. 15장의 시작은 ‘나는 포도나무다’라는 말씀이다. ‘나’는 빵, 빛, 목자, 문, 포도나무로 비유되고 있다. 왜 포도나무일까?
구약에서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을 표상하는 단어로 주주 사용되어왔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하나님이 심으신 포도나무’ 이다. ( 시 80: 8) 그러나 예언자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비옥한 토지임에도 제대로 열매 맺지 못하는 들 포도로 비유하고 있다. (이사야 5:1-4. 예레 2:21)
하나님은 포도나무를 기르시고 때로는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쳐내는 농부로서 ‘게오르고스’이다. 영어로는 ‘죠지 (George)’이다. 잘라내는 것은 포도나무에게는 아픔이지만 포도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포도나무의 목적인 열매를 잘 맺게 하는 피할 수 없는 방법이다. ‘잘라내다’라는 ‘카타이로’는 ‘깨끗이 치워버리다’라는 의미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깨끗하게’ 하신 것과 상통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가롯 유다는 떨어져 나간 ‘죽은 가지’로 유비된다. 가지는 나무에서 분리되는 순간 말라버리게 된다. 그것은 생명의 종언이다.
머물러 있으라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 안에 머물 듯이 내 안에 머물러라’ 고 말씀하셨다. (15:4) 포도열매는 가지에서 열리는 데 그 가지가 나무에 연결되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신앙의 원리이자 , 삶의 풍성함이 어디에 있는가를 함축해 주고 있다. 가슴에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 교회 공동체와 연결이 없는 사람이 신앙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머물다’는 ‘메노’라는 말이 10번이나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그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과 이어질 때만이 가능하다. 오늘의 예배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 그것이 육적 생명이든 영적 생명이든 잘 먹어야 힘을 쓸 수가 있다. 기도와 예배, 말씀, 성도의 교제 이 모든 것은 나라고 하는 물레방아를 돌아가게 하는 물과 같다.
예수는 참된 포도나무요 우리는 거기에 연결된 가지이다. 우리가 그 안에 연결되어 있기만 하면 믿음과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된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왔다.” (15:9) 우리가 그 분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는 그 분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된다.(15:10)
말씀에 대한 순종은 곧 예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며 우리의 기쁨이 ‘완전하게’ 되는 길이다. ( 15:11) 이 기쁨을 아는 사람은 예수께서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14:28)
포도 열매는 성찬의 포도주가 되어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고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게 한다.
서로 사랑하라
하늘 아버지께서 예수를 사랑하셨고 예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는 모두 함께 예수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한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계명으로서 교회 공동체를 탄생하게 한 내용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너희가 내 말을 지키면 너희는 내 친구다. 나는 이제부터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 ( 15:12-15)
이 말씀이야말로 얼마나 멋진가! 예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그의 생명을 벗들을 위해 바치는 자기희생의 사랑이라니-. 벗은 종이 아니다. 벗들 (필로이, 사랑하다에서 유래)은 우정과 우애의 관계이다. 벗은 그리운 존재이다. 벗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을 황폐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벗은 나이와 신분을 초월할 수 있다. 예수께서 피를 뿌려 열어주신 새로운 계명은 우리가 모두 그의 ‘사랑 받는 사람’으로서 벗이 된다는 것이다. ( 15: 10, 15) 나는 “심봉사 예수”에서 벗으로서의 예수를 나타내고자 했다. 예수의 심장을 보지 못하고 신비적이고 신화적인 예수 상에 젖은 사람들에게는 파격적일지는 몰라도 내 가슴 속에 계신 예수는 나와 함께 애환을 나누는 분이다.
심봉사 예수
왕비가 된 심청이의 잔치판에서
눈 뜨게 된 심봉사가
딸 하나 잘 둔 덕분에
인생 말년을 잘 먹고 잘 살았다면
나는 심청가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의 잔치판에서
꿈적 꿈적 꿈적거리다가 마침내
심봉사 눈을 뜨니
함께 있던 봉사들
왔다 간 봉사들
지팡이 흔들며 오고 있던 봉사들
모두 모두 한꺼번에 눈을 뜨고
덕분에 눈 먼 짐승들까지 눈을 떠
광명천지 새 세상 되었다는 장면에
나는 인류의 심봉사
예수를 생각한다.
강대상에 판소리 대본집 올려놓고
그 분을 그리워한다.
눈물겨운 세상 눈물겹게 살다 가신
그 분 오시면
심봉사 눈뜨는 대목 들려드리며
코리언 와인
전주 막걸리 대접할 날을 기다린다.
모세는 하나님의 친구였다. (출 33:11) 우리는 예수의 사랑스러운 벗이다. 벗은 벗의 마음을 안다. 우리가 예수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함석헌 선생(1901 –1989)은 이런 말씀을 했다.
‘역사를 넘어 역사를 보고
나를 넘어 나를 보고
바다를 넘어 바다를 보고
종교를 넘어 종교를 보라‘
나를 넘어 나를 보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거라고 목숨을 다해 외친 예수의 뜨거운 가슴을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을 긴 설명 없이 알 수 있다. 예수는 우리로 하여금 이 소중한 단 한 번의 기회인 인생을 ‘최고’ ‘최선’의 차원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 주시기 위해 우리를 찾아 오셨다. 그 핵심은 그 사랑 안에 머무는(메노) 것이다. 예수의 유언은 인생의 핵심은 사랑에 있다는 것을 강조해 주고 있다. 내 가슴에 사랑이 식어버려 돌처럼 굳어 있다면 나는 이미 악한 사람이다. 15장은 혈연으로서의 가족만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일체를 사랑의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큰 사람(大人)으로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라는 격려이다. 이 지구라고 하는 하나님의 포도밭에서 가장 질 좋은 포도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사람이 되라는 유언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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