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7 One Color Voice
동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는데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대화 내용을 고스란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귀에 계속 들렸습니다.
버스는 계속 달리고 있는데 그 소리는 멈출 줄 몰랐습니다.
그러자 한 여자분이 소리가 크다며 줄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 소리가 뭐가 크냐며 얘기도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아니 여러 사람에게 피해 주고 소리 좀 줄여달라고 하니까
건너편 옆에서 젊은 남자분이 저도 느끼고 있는데 소리가 너무 크다고 거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뭐가 크냐고 내 소리가 커서 못있겠으면
비행기 타고 다니라고 내가 나이가 몇 살인디 나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냐고
여기가 북한이냐고 언성을 더 높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가니까 좀 조용히 하라는 말에 뭐 나이를 들먹거리냐고
기사님 차 세우세요. 씨벌 차 세워봐요.
남자 대 남자는 싸움판이 벌어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옥신각신하다가 한쪽이 잠잠하니 잠시 조용한가싶더니
정안휴게소에서 내리면서 목소리가 큰 그 분이
어이 젊은이 내려봐 하면서 앞장섰습니다.
얼굴은 역삼각형으로 날카로운 인상의 70대 정도,
머리는 백발에 파마머리,
몸매는 호리호리 깡마른 형
언뜻 보니 성격유형이 딱 보였습니다.
젊은 남자분은 웃으면서 아 이제 그만하시게요.
내려서 화해하고 잘 풀리려나보다 생각하며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왠걸 여자들과 실랑이를 계속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 어르신은 여전히 똑같은소리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상대방들을 버스에 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버스기사님은 전화로 경찰을 불렀습니다.
경찰 두분이 와서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더니 버스를 출발하도록 했습니다.
버스를 가로막고 있으니 뒤로 후진을 해서 출발하려니까
다시 와서 출발을 방해했습니다.
경찰 두분이 그 어르신의 팔을 잡고 있고 버스는 뒤로 계속 후진을 하여 겨우 출발했습니다.
30분 이상 지연된 것 같았습니다.
그 어르신 가족들은 함께 살면서 얼마나 힘들까
아마도 혼자 사는사람일 것이다.
버스를 못 타게 했으니 손해배상에 업무방해에 여러 죄목으로 걸려들 것이다. 등등
버스 안에서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잠시 오고갔습니다.
성대모사를 통해 여러 사람의 목소리 흉내를 내며 즐거움을 선사하는 개그맨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어르신 같은 분들은 한 목소리 톤으로 어쩌면 지겨움을 준 건 아닐까요.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사람의 신념은 낮은 속삭임을 어떻게 낼 수 있을까요.
왜 이야기도 못하게 하느냐, 젊은 것들이 왜 대드느냐,
나이라고 하는 벽도, 남북의 벽도 넘지 못하는 원컬러보이스 어르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기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남의 소리도 듣지 못하며
그래서 자기 성찰이 일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유익한 공부를 경험하는 날이었습니다.
*** 인사동에서 만난 채수봉 화가의 "멸아" 전시회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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