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하며 살기... 박완규
2018.09.12 21:37
밥값하며 살기...
추석명절이 가까워지고 있다. 추석선물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추석이 가까운 이맘때가 되면 어머니께 새 옷 한 벌을 얻어 입었던 생각. 그런데 그 옷을 추석 때까지 입지 못하고 윗목에 고이 모셔두어야 했던 생각.
나는 그 새 옷 냄새가 참 좋았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새 옷 냄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관심은 언제나 그 아이들에게 많이 가 있다.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은 아이들. 그 아이들의 꿈을 키우기 위해 ‘만원 펀드’를 시작하려고 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런데 하지 말라고 한다. 다음에 하라고 한다. 그 주장이 너무 강해서 잠시 멈추고 있다. 살다보면 이것은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것은 저것 때문에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좋은 일을 하고자 해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경우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오래 전에 동작대교에서 열 아홉살 소녀가 투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 소녀는 고시원비도 밀리고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다리 아래로 투신을 했다.
열 아홉살의 이 소녀는 이혼한 부모와 헤어져 혼자 살고 있었다. 공부도 잘했다. 심성도 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녀는 부모가 이혼을 한 후에 집을 나왔다. 소녀는 엄마도 따라가지 않고 아빠도 따라가지 않고 혼자서 집을 나왔다.
소녀는 막상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누군가 몹쓸 사람이 소녀를 찝쩍거렸다. 어린 소녀에게는 이 모든 환경이 낯설었다. 그러다가 소녀는 사회를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며 다리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로부터 닷새 후였다. 50대 남성이 나무에 목을 맸다. 그가 목을 맨 자리에는 빈 소주병과 넉 장의 유서가 있었다. 날품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유서에 자신이 죽으면 장애를 가진 아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적었다.
그로부터 다시 엿새가 지났다. 이번에는 40대 남성이 다리 난간을 붙잡고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던 11살짜리 아들을 아래로 떠밀고 나서 자신도 바다에 뛰어내렸다. 아내를 위암으로 잃고 대리운전으로 살아온 40대 가장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쯤 후에 한 주택에서 30대 주부와 두 아이가 살해되었다. 살인범은 아이의 아빠였다. 아내와 아이들을 살해한 그 아버지는 집 가까운 곳에서 목을 매고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2개월 전에 실직을 했고 월세가 밀려 있었고 아이들의 학원비가 밀려 있었고 쌀독에는 쌀이 떨어져 있었다. 이러한 사연들이 ‘나는 지금 잘 먹고 잘 사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들이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간다. 어린 소녀도 죽고, 대학생도 죽고, 중년도 죽고, 노인도 죽어나간다. 이러한 일이 딱히 누구 탓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나는 밥값을 못하는 날에는 밥을 먹지 않는다. 남들이 밥을 왜 안 먹냐고 물으면 밥에게 미안해서 밥을 먹지 못한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굶는 날도 많다. 높으신 양반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밥값을 못하면 밥을 안 먹었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편하면 아이들이 그만큼 고생을 한다. 반대로 선생님이 힘들게 고생을 하면 그만큼 아이들이 웃는 법이다. 이 땅의 공직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발이 부르트도록 고생을 해야 국민이 행복한 법이다. 밥값을 하는 공직자들이 이 땅에 많아야 하는 까닭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곳곳에서 일자리를 못 찾고, 실직을 하고, 벌이가 적고, 가정이 파탄 나고, 병이 들고, 월세가 밀리고, 학원비가 밀린 사람들이 집에서 산에서 공원에서 다리 위에서 날마다 죽고 있다. 직업을 잃는 실업치고 힘들지 않은 실업이 있을까 만은 젊은이의 실직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가장의 실직이다. 가장이 생계를 유지할 능력을 상실하면 그 가족 또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국가를 선진화하느라 겨를이 없고, 사회는 무서운 정글로 변해서 누구도 이들을 돌보지 않는다. 나는 내 새끼들 먹여 살리느라 정신이 없고. 그렇지만 누군가 죽을 만큼 힘이 들 때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은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에 내 친구가 자살을 했다. 좋은 친구였다. 친구는 열심히 사업을 하다가 원청업체로부터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났다. 친구는 그에 따른 자금 압박을 받다가 결국 사채까지 빌려서 돌려막기를 하다가 빚 독촉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 친구는 최저가 입찰로 받은 원청업체에서 다시 하청에 재하청으로 내려온 일을 하다가 부도가 났다. 어느 날 친구는 소주 한 잔에 취해서 우리 사회가 이러면 안 되는 것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대기업이 관행으로 저지르는 이러한 짓은 중소기업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까지도 죽이는 짓이라 했다. 그러면서 문제점을 조목조목 얘기하는데 이 친구를 중소기업청장 시키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는 자살과 사회적 살인을 구분해야 할 때가 됐다. 여기저기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혹시 이들을 연쇄 살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때가 됐다. 우리 사회가 날마다 저지르고 있는 일종의 청부살인 말이다. 신문에 누가 죽었다고 나오면 남의 일처럼 혀만 찰 일이 아니다. 나만 생각하고 내 입만 생각하는 우리 모두가 그 사람들을 죽인 범인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먹는 한 숟가락의 밥, 하루 중에 단 몇 분, 내가 번 돈과 내 노동의 일부라도 세상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죽음의 행진을 막을 수 없다. 우리는 쉽게 생각한다. ‘누군가 하겠지’ 그것이 우리가 밥값을 하며 사는 일이 아닐까 싶다. by 괜찮은 사람들 |
오늘 사진은
박곡희님이 담아온
마이산과 황매산의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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