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넘치는 것을 경계한다
2020.06.21 07:50
물이 넘치는 것을 경계한다.
길위의 인문학 = 우리 땅 걷기 하시는 신정일님 글입니다. 신선생과 함께 걸으시면 크게 유익합니다.
“이석형의 집이 성균관 서쪽에 있어 냇물과 숲이 깊숙하고 그윽하다. 망건 바람으로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휘파람 불며 노래하기도 하고, 손님이 찾아오면 붙잡고 술을 마시니 마치 신선과 같았다. 띠풀로 이엉한 정자 몇 칸을 동산 가운데에 짓고 이를 ‘물이 넘치는 것을 경계 한다‘는 뜻을 지닌 계일정戒溢亭이라 하였다.”
이석형의 후손인 월사 이정구李廷龜가 평한 이석형에 대한 글이다. 이석형은 성균관 연화방 집터에 네모난 연못을 파고서 물이 흐르는 아래쪽에 도랑을 돌로 막은 뒤 연못에 물이 가득차면 열어놓고 줄어들면 막아 항상 물이 넘치지도 줄지도 않게 하고서 다음과 같은 글을 지었다.
“물이 평온하면 몸이 고요하고, 물이 고요하면 성품이 맑고, 성품이 맑으면 온갖 물건이 와서 비친다. 이것을 마음에 비기면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이 아직 발동하지 아니하여 한 곳으로 기울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천하의 이치가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 이것은 천하의 근본인 곳이다. 흐린 물결이 흐려지는 것은 사람에 빠져서 점점 얽매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물이 맑고 흐린 것은 잘 보지만 차고 넘치는 것에는 소홀하게 보아 넘기기 일쑤이다. 마음을 맑게 하여 본체本體의 밝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능히 못한다. 조금 삼가지 않으면 교만과 넘침이 절로 이르니 곧 사람마다 반드시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정자 이름을 ‘계일’이라고 한 것이다.”
어디 물만 그럴까? 세상의 이치가 다 그러하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았으면 좋으련만 사람의 마음속이라는 것이 좁고도 좁은 것이라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이런 저런 결정을 내리고 후회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게 오랜 동안 이 나라 이 땅의 산과 강, 그리고 길을 쏘다니면서 찰찰 넘치는 물, 바닥까지 드러나 갈증이 나는 물들을 다 보았으면서도 가끔씩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서 얼굴을 붉힐 때가 많다.
어쩌겠는가? 아직도 나는 나만이 걸어가야 할 그 길을 더 가야하고 그 길의 끄트머리에서 서 있을 것이다. 그때 한 소식 했다고 말하고 돌아갈지, “내 이럴 줄 알았다”하고 돌아갈지, 하여간 산다는 것은 아슬아슬하면서도 힘들면서도 아름다운 일이다.
당신은 어떠한 것을 경계하고 사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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