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소설 <미성년>
2021.01.08 23:24
웃음으로 사람의 성품을 간파하는 방법,
“........내 생각으로는 사람이 웃으면 많은 경우에 그가 보기 싫어지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웃음 속에는 흔히 뭔가 저속하고 웃는 사람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웃는 당사자는 거의 언제나 자신의 웃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인상에 대해서 깨닫지 못한다. (중략)
웃음으로 완전히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곧 그의 모든 비밀을 간파당하는 것이다. 또한 총명한 느낌을 주는 웃음도 때로는 증오감을 자아낼 수 있다. 웃음은 무엇보다도 먼저 당사자의 성의를 요구한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의 어느 구석에 그런 성의가 담겨 있을까? 웃음은 어떤 불순한 의도도 배제하고 있어야 한다. 물론 사람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악의 없는 웃음을 웃는다. 그렇게 성의가 배어 있고 악의가 없는 웃음,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기쁨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에서 사람의 어느 구석에 도대체 그런 기쁨이 있단 말인가. (중략)
아주 오래 걸려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이 있지만, 만일 그 사람이 아주 개방적으로 웃게 되면 한순간에 그 사람의 성격이 곧 손바닥 위에 놓고 보듯 분명해진다. 그리고 아주 평안하고 행복한 여건에서 성장한 사람만이 상대방까지도 즐겁게 하는, 선의에 가득 찬 기쁜 감정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사람의 지적인 발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성격, 사람의 전체적 특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만일 어떤 사람을 잘 알고 싶다든지 그의 속마음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침묵하고 있을 때의 모습이나 그가 어떻게 말하는가, 혹은 어떻게 웃는가, 또한 그가 더없이 고상한 사상에 감동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그렇게 깊이 파고들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웃고 있을 때 그 사람의 분위기를 주목해야 한다.
환하게 잘 웃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웃을 때 풍기는 느낌에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의 웃음을 그것이 아무리 명랑하고 소박한 것일지라도 상대방에게 왠지 우둔해 보이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웃음 속에서 조금이라도 허전한 점이 느껴진다면, 그가 평소에 아무리 대단한 사상을 말하고 다니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은 틀림없이 어느 정도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지성밖에 지니고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또 그 웃음 속에 어리석어 보이는 점은 없을지라도 크게 웃은 다음에 모습이 왠지 갑자기 조금이라도 허전하게 보인다면, 그 사람에게는 진실한 의미의 인간적 품위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리고 또 하나 마지막으로, 격의 없는 웃음을 짓고 있는데도 역시 어쩐지 저속한 감을 자아낸다면 그 사람의 본성 역시 저속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경우에 이전에 그 사람에게서 느꼈던 기품 있고 고상한 자질도 결국은 어떤 속셈을 가지고 가장을 했거나 혹은 무의식중에 빌려온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나중에 꼭 타락의 길을 걷게 되어, <자기 이익을 확실히 챙기는 일>에 종사하게 될 것이며, 고상한 사상 따위는 젊음의 망상이나 환상으로 치부하고 주저 없이 던져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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