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정민,
2021.05.10 04:33
<一冊一言 > 세상 모든 것이 글 아닌 것이 없다. 예전 과거시험 문제를 보면, 오늘날 대입 논술시험에 견줄 것이 아니다. 답안지에서 그 엄청난 경전들이 줄줄이 꿰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책을 어떻게 읽을까? 글은 어떻게 쓸까? 질문은 막연하고 대답은 막막하다. 이번에 읽은 글은 이에 대한 홍길주(洪吉周:1786-1841)대답이다. 그의 형은 대제학을 지낸 홍석주였고, 동생은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였다. 그런데도 그는 평생을 죄인처럼 근신하며 벼슬길에도 좀체 나서지 않았다. 그는 <수여방필 睡餘放筆>과<수여연필> <수여난필>등의 연작수필을 남겼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문장은 다만 책 읽는 데 있지 않다. 독서는 단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천운물(山川雲物)과 조수초목(鳥獸草木)의 볼거리 및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모두 독서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바라보면 천지만물 어느 것 하나 훌륭한 문장 아닌 것이 없고, 기막힌 책 아닌 것이 없다. 천지만물 삼라만상은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텍스트다. 그것을 제대로 바라볼 안목이 없어 그 멋진 책을 그냥 스쳐 지나고 있을 뿐이다. ....홍길주는 <이생문고서>에서...이렇게 부연했다. ”사람이 일용기거(日用起居)와 보고 듣고 하는 일이 진실로 천하의 지극한 문장 아님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스스로 글이라 여기지 아니하고 반드시 책을 펼쳐 몇 줄의 글을 어설프게 목구멍과 이빨로 소리 내어 읽은 뒤에야 비로소 책을 읽었다고 말한다. 이같은 것은 비록 백만 번을 하더라도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꼭 문자로 된 종이책을 소리내어 읽는 것이 독서가 아니다. 삼라만상이 다 문자요 책이다. 삶이 곧 독서다. 죽은 지식, 아집과 편견만을 조장하는 조식은 지식이 아니라 독이다. 홍길주의 글 속에서 이런 방식의 글쓰기는 어디서나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미쳐야 미친다.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pp281-282 : 푸른역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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