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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5



히브리서 13장    참된 공동체를 추구하는 사람들

 

                                                                                         숨 이병창

 

 

성서를 읽고 공부하는 목적은 성서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내가 나로부터 깨어나는 변화를 얻고자 함이다. 그 변화의 증거는 평화와 거룩함이다. 이 두 가지가 바탕이 될 때 참된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사람을 소중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손님 접대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진 기본적 덕목이다.

 

아브라함은 낯선 사람들을 극진히 대접함으로써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복음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천사였다는 말은 상징해 주는 바가 크다. 사실 알고 보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아닌가. 저자는 특히 감옥에 갇힌 이들과 학대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는 일이 손님 접대의 연장선에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음식에 관한 규정과 같은 지엽적인 문제들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믿음의 본질인 하나님의 은혜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지엽적인 문제에 목을 거는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를 주장하기 위함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갖 규정을 담은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믿음의 본질인 은혜를 깨닫는 데 실패했다. 즉 아무런 믿음의 열매도 맺지 못했다.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자신의 의를 들어내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촉발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사람들이 어찌 분열과 다툼의 편에 설 수 있겠는가.

 

@ 새로운 제단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가름은 제단에서 드러난다. 옛 계약의 율법을 따르던 시대에는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씻기 위해 매년 속죄일에 동물의 피를 속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성소로 가져갔다. 그리고 동물의 시체는 진영 밖에서 태웠다. 그러나 완전한 제사를 드린 대제사장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동물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를 가지고 완전한 성소를 들어가셨다(9:11).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심으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렸다.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새로운 제단이 주어졌다. 새로운 제단은 십자가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단 하나의 제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신 십자가라는 제단입니다. 그러니 유대인의 율법에 매달려서 구원을 찾으려는 사람은 이 제단에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13:10)

 

새로운 제단이라는 용어가 히브리서의 중요한 강조점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율법적 계율의 종교에서 은혜의 종교로의 탈바꿈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천상 성소에 들어가게 된 그리스도인은 성문 밖에 계신 그리스도를 따라 성문 밖으로 나아가야 한다. 편안하고 익숙함에 젖어 안주하는 공간을 박차고 나가야 한다. 교회는 인간의식의 성장을 가두는 폐쇄 공간일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상상력, 실천력에는 정년이 없다.

 

@ 가장 무서운 도전의 시대

 

히브리서는 로마와 유대인 랍비 조직의 험난한 박해에 흔들리는 그리스도인을 위해 쓰여진 서신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의 험난한 영적 도전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휴대폰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기술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평균 사용량은 하루에 150(전화, 카톡, 페이스북, 주식...)라고 한다. 인간이 자신에게 깊이 집중하기 위해서는 아무도 말 걸지 않는 20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예열 시간이 최소 8분 이상이 필요하다. 잠자는 시간 외에 시간을 150으로 나누면 명상이나 기도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인간의 집중력은 금붕어만도 못하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나 자신의 불변하는 가치를 찾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끊임없이 긴장 상태에서 전화기를 손에서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배 시간에도 전화만 오면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신앙생활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실리콘 밸리의 발도로프 스쿨에는 아이패드가 없다. 아이패드 발명자들은 자식들에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첨단 도구를 많이 사용할수록 생각의 힘을 기를 수 없고 불안과 우울증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다루고 의사결정을 하는 사회적 위치에 도달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그가 맡은 조직의 운명을 결정하고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의 내면을 주시하고 이해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지 않았다면 가장 생산성이 떨어지는 리더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 사람은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고 자신의 부족을 모르기 때문에 배우려 하지 않는다.


@ 거룩하고 창조적인 생각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계의 재료는 하나님의 생각이었다. 하나님의 생각에서 나온 말씀으로 우주는 창조되었다. 가시적으로 나타난 인간의 문명 역시 창조의 재료는 생각이다. 인간은 한 생각에 죽을 수도 있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인간 운명의 성패는 생각하는 법을 익히고 훈련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생각. 그리스도 예수의 생각과 통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나의 비좁은 생각을 무한히 뛰어넘는 생각으로 내가 채워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우리 고향이 없습니다”(13:14)

 

이 한 말씀만 붙잡아도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영원한 고향을 기다리는 삶을 살 수 있다. 인생은 짧게만 보면 지옥이고 영원의 시각으로 보면 천국이다. 짧게만 보는 사람은 조급하고 불안하다. 그런 사람은 평화로울 수 없다. 유한한 지구에서 잠시 사는 동안 말씀으로 인연의 줄을 함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감사하다. 특별히 히브리서를 함께 나눈 영혼의 도반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