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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1


느헤미야 1장   구약시대의 그리스도 느헤미야


숨 이병창


@ 시작하며


성서 속의 인물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하면서 읽어야 한다. 첫째는 그를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둘째는 주인공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역사라고 하는 책을 읽어내는 통찰의 눈을 떠야 한다. 역사의 문맹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도 시대를 읽는 통찰을 예리하게 갈고닦는 노력을 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소명을 깨달은 사람이었다. 하늘의 소명을 깨닫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무서운 것이 없다.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안중근 의사(1879-1910), 윤봉길 의사(1908-32)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투철한 자신의 사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헤미야서를 읽는 것 역시 이 시대에 나를 향한 소명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찾는 것이고 그를 징검돌 삼아 최소한 어제의 나보다는 더 큰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대인으로서 탕탕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다.


@ 시대적 배경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제3막에 등장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이라는 비장한 합창곡이 있다. 이 합창곡은 히브리 노예들의 형편을 알려 주는 시편 137편을 소재로 하였다. ‘나부코’는 유대인을 강제로 바빌론으로 끌고 갔던 바빌로니아 왕인 느브갓네살의 이름을 이탈리아 식으로 줄여 부른 것이다. 19세기 중반까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던 이탈리아 국민들이 민족의 노래로 불렀던 합창을 들어 보자.

BC 601년 잔인한 살육자 신바빌로니아왕 느브갓네살 2세는 유다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을 무너뜨렸다. 5년 뒤 BC 597년에도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두 번째 유수(그윽할 幽, 가둘 囚)는 BC 586년으로 기록돼 있다 . 당시 예루살렘의 왕 시드키야는 예리고에서 붙잡혀 눈이 멀게 되었고 주민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거나 각지로 흩어졌다. 세 번째 침공은 BC 582년에 있었는데 유다의 모든 도시가 파괴되었고 유대인들은 포로로 끌려가 지구라트 건설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완전히 멸망하였던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예언(대하 36:21-23, 렘 33:1-14)대로 70여년 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하게 된다. 이러한 기적은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키루스) 2세에 의해 이루어졌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2세는 BC 538년에 바빌론을 멸망시켰다. 그는 대단히 관용적인 왕으로서 유대인 포로들이 귀환할 때 경전과 제사 도구들까지 온전히 돌려보냈다. 이 때문에 유대교의 신앙이 오늘 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고레스 2세를 하나님이 선택한 왕으로서 하나님이 함께하는 기름 부음 받은 이라고 기록했다(사 45장 참조).


@ 귀환 과정


1차 귀환은 BC 537년 스룹바벨 예수아 인솔로 49,897명(일반 백성 42,360명, 노비 7,337명, 노래하는 자 200명)이 돌아왔다. 귀환 경로는 유프라데스 강을 따라가다가 지름길인 다드몰과 다메섹을 거쳐 예루살렘까지 가는 경로였다. 고레스왕은 포로들의 자유 귀향을 허가했고 성전 재건도 허용했다. 또 성전 건축을 위한 국고 지원을 했다. 성전 재건은 사마리아의 방해로 16년간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다.

2차 귀환은 BC 458년 아닥사스다 1세 때 에스라 인도로 1,754명(남자 1,496명, 레위인 38명, 수종자 200명)이 돌아왔다. 에스라는 율법학자로서 신앙 개혁 운동을 주도했다.

3차 귀환은 느헤미야의 인솔로 돌아왔는데 귀환자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닥사스다 1세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허락했고 건축재를 지원했다. 느헤미야서 2장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통치자 산발랏과 암몬 지역을 다스리던 도비야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하고 봉헌했다. 느헤미야서는 이 과정을 1장에서 7장까지 다루고 있다. 8장에서 13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개혁 운동을 다루고 있다.


@ 느헤미야 - 中通外直


느헤미야는 대제국의 왕을 늘 가까이에서 모시는 고관이었다. 호의호식하는 그 자리를 버리고 이스라엘을 재건하기 위해 험난한 조국을 찾아가 온갖 고생을 한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거론하기도 한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파괴 소식을 듣고 먼저 금식 기도를 했다(1:4). 성벽이 없다는 것은 입술 없는 이빨의 형국이기 때문에 온갖 약탈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는 동족을 대표해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중보기도를 드리고 있다(5-11절). 느헤미야는 정결한 삶을 살았다(5:14-18). 그러기에 지도자들의 불의를 꾸짖고 정화할 수 있었다. 온갖 적대 세력들의 방해 공작이 있었지만 성벽을 재건하고 민족의 성결함을 지향하는 데 성공한 승리자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느헤미야는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온전히 민족의 재건에 있었다. 그는 큰사람이었고 지혜롭게 행동하는 성인이었다. 나는 느헤미야를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4자성어로 中通外直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성리학의 뿌리이자 태극도설의 저자인 주돈이(호 렴계, 1017-1073)가 연꽃을 표현한 시 ‘애련설’에 등장한다.

대나무나 갈대는 속이 터져 있지만 칸칸이 막혀 있다. 그러나 연꽃은 줄기 전체가 속이 통해 있으면서 줄기는 반듯하다. 연꽃은 속마음이 터져있는, 막힘과 걸림이 없이 정직하게 사람을 대하는 인간의 상징이다. 속마음의 터짐이 깨달음이고 사랑이고 진실이다. 시궁창에서도 깨끗하게 자라는 연꽃의 향기는 은은하지만 널리 퍼진다. 더러움과 요사스러움이 없는 연꽃처럼 중통외직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서원을 세워보자.


“내 마음아, 황금의 날개를 타고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

훈훈하고 다정한 바람과 향기로운 나의 옛 고향.

요단강의 푸르른 언덕과 시온성이 우리를 반겨주네.

오 빼앗긴 위대한 내 조국, 오- 가슴 속에 사무치네.

운명의 천사가 연주하는 하프 소리, 지금은 어찌 잠잠한가.

새로워라, 그 옛날의 추억, 지나간 옛일을 말해주오.

흘러간 운명을 되새기며 고통과 슬픔을 물리칠 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굳건한 용기를 주시리라.”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https://youtu.be/OqWWpXfO7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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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대면 예배 참가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