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3장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2021.08.19 03:37
20210815
느헤미야 3장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숨 이병창
성벽공사에 등장하는 75명 이상의 사람들 이름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었다. 이 말은 동물은 죽음으로 생이 끝나지만 인간은 살아있다고 해서 산 것도 아니고 몸이 죽었다고 죽은 것도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목숨은 붙어 있어도 죽은 자와 마찬가지로 사는 사람도 있고 육체는 죽었지만 영원히 살아있는 사람도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에는 인간에게 주어진 책임과 권한은 모든 존재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인간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깨닫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불멸의 이름으로 빛나게 하는 데 있다. 느헤미야 3장의 명단은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을 얼마나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켜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옛날 사람들에게 성 쌓기는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공동의 생명을 지키는 중대사였다. 그러나 무거운 돌을 옮겨 쌓는 일은 장비가 없이 인력으로 일하던 그 시절에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얼마 전에 임실 사선대에 있는 성미산성을 답사한 적이 있었는데 신라군과의 격전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하는 안내판의 글을 읽은 바가 있다. 성은 크든 작든 규모가 있는 공사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다.
고창의 모양성(1,680m, 1453년?)을 돌아보면 구간별로 성 쌓기에 동원된 지역 이름이 성벽 아래 작은 돌에 새겨져 있다. 1396년 정도전이 기획한 한양성(18.6km)도 지역 할당을 해서 경쟁적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단기간에 성을 완공할 수 있었다. 20만여 명의 인력이 1-2월과 8-9월의 농한기에 동원되어 일 년 만에 준공했다. 27년 후에 세종은 평지의 토성을 석성으로 바꾸는 공사를 위해 12월에 32만 명의 백성과 2,200명의 기술자를 동원해서 오늘날 볼 수 있는 한양성곽으로 완성했다. 그 당시 한양 인구는 10만 명이었다고 한다. 이를 미루어 보면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공사 기간 52일은 전격적이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성벽공사를 하는 동안 동원 인력의 절반은 외침에 대비해야 하는 비상상황이었기 때문에 전 인원을 투입할 수 없었다. 바로 이 점이 느헤미야의 고통과 지도력이 두드러지는 점이다.
@ 성곽 – 헌신과 협동의 산물
스포츠에서도 감독과 선수의 조합이 좋아야 성적이 좋은 것처럼 대단위 공사인 성곽 쌓기 역시 지도자와 백성들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느헤미야는 재임 기간 동안 보수를 받지 않고 청렴하게 공직을 수행한 사람이었고 공사 기간 내내 무장을 풀지 않고 일했다. 옛날에는 많은 권력자들이 채찍으로 공사를 감독했지만 그는 덕으로 일했고 무엇보다 백성들 앞에 겸손했다. 이 겸손의 표현이 느헤미야서에 등장하는 명단이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지 않고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있다. 그는 ‘나’를 주장하지 않고 ‘우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에 의해 유다인들은 한 팀이 되어 주변의 도전과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대업을 이룰 수가 있었다.
공동체의 건강은 서로 짐을 나누어지는 협동에 있다. 이기적 개인주의가 활개 치면 공동체는 무너지게 된다. 공동체에는 남보다 많이 헌신하고 수고의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를 우상화하는 것은 성서의 정신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각자의 위치와 역할에 따라 자기 역할을 순수하게 지켜가는 사람들에 의해 건강하게 성장한다. 나는 12절에서 눈길이 머물렀다.
“그 다음 이어서 성벽을 수축한 이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인데 그는 예루살렘 구역의 절반을 다스리는 구역장으로서 자기 딸들까지 동원하여 공사를 하였다.”(12절)
어쩌면 살룸은 예루살렘의 구역장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성벽의 중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그리고 헌신적으로 공사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가를 짐작하게 된다. 성벽공사는 남녀노소가 모두 협동하는 기적의 결과였다. 그러나 이에 대척점에 선 예외적 인물들이 있었다.
“그 다음 이어서 성벽을 수축한 이들은 드고아 사람들이었으나, 그 성읍의 유지(귀족)들은 내가 할당해 준 일을 떠맡지 않았다.”(5절)
유지들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민중들은 헌신적으로 참여하였다. 독립운동가들이 있는 가 하면 일본에 붙어서 기득권 유지의 단꿀에 코를 박고 살았던 부류의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법이다. 그들은 후손들에게 수치스런 멍에를 걸어주게 된다.
@ 직업을 통한 성직 임무
3장에는 참여자들의 다양한 직업군을 소개하고 있다. 평범하지만 자신의 직업적 전문성으로 공공의 유익과 민족의 생존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이야말로 성직자이다. 독일의 예배당을 방문했을 때 건물 입구에 목수와 석공의 상을 만들어 배치한 것을 보고 감동한 적이 있었다. 왕과 귀족과 부자의 동상만 보다가 소박한 기념상을 보니 이것이야말로 예배당을 짓는 참된 의미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느헤미야의 관점도 이런 마음이었지 않나 싶다.
누구보다 마땅히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방관하고 동참하지 않는 것은 노골적인 적대자들보다 더 큰 해악을 공동체에 주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일을 소명으로 알고 행하는 사람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기 위하여 드고아의 유지들을 기록하고 있다. 성서는 가룟 유다와 같은 그들을 기록하고 있다.
28절 이하에는 반복해서 ‘자기 집 앞의 성벽을 수축하였다’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자기 집 앞의 성벽을 쌓은 사람들은 무엇보다 약탈자들로부터의 안전을 얻었고 동시에 자신의 집까지 수축하게 되었다. 이는 도랑치고 가재가 아니라 잉어 잡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는 모든 것을 더하는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주님의 말씀이다.
오늘은 광복 76주년이다. 아침에 캐나다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보도를 보았는데 홍원표님이 할아버지를 회고하는 이야길 들었다. 독립군 후손은 3대를 가난하게 살고 친일파 후손은 3대를 호의호식한다는 말이 회자되는 바처럼 땟물 흐르는 베게 속의 메밀까지 꺼내어 끼니를 때운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해 주었다. 독립운동가들을 15만여 명으로 추산하는데 현재 유공자로 지정된 사람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 무명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느헤미야 3장의 등장인물들처럼 영원히 빛나는 이름으로 기록되기를 소원한다.
토우 "기도하는 아이" - 작가 이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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