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5장 새로운 세상을 실현한 사람
2021.08.29 16:58
20210829
느헤미야 5장 새로운 세상을 실현한 사람 - 느헤미야
숨 이병창
5장은 성벽공사의 난관이 외부의 적대 세력만이 아니라 유다 공동체의 심각한 내부적 모순에도 있었다는 것과, 그에 대한 느헤미야의 지혜로운 대처를 보여 주고 있다. 제3차 포로귀환 이후에 급속한 인구증가는 한정된 식량자원과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을 더욱 가중시켰다. 또한 페르시아의 식민 지배를 받는 관계로 과도하게 정해진 세금을 어떤 방법으로든 지불해야만 했다. 더 문제가 된 것은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부자들의 행태였고 이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가난한 자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고리대금업을 하고, 돈을 갚지 못하면 채무자의 자식들을 노예로 삼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부자들의 만행은 율법의 규정을 위반하는 범죄 행위였다(출 22:25). 어느 시대이든지 소득 불균형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분열과 피의 투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민중들의 공공연한 불만을 방치할 경우 유대 사회가 자멸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을 파악한 느헤미야는 부자들을 모아 놓고 부자들을 책망하며 그들의 잘못을 시정 하도록 하였다(6-13절). 기득권 세력이 순순히 자신들의 부를 내려놓는 일은 결코 녹녹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일이 가능한 것은 단지 총독으로서의 권위만이 아니라 부자들의 마음을 감동하는 감화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느헤미야의 감화력은 그 자신이 청렴결백했고 민족을 위한 사심 없는 헌신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14-19절). 지도자가 ‘바담 풍’하면서 백성들이 ‘바람 풍’이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느헤미야의 설득을 통하여 와해 위기의 공동체는 회복을 하게 되었고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합심하여 성벽 공사에 매진하게 되었다. 바로 이 사례는 온갖 사회적 모순을 단칼에 해결하는 감화력이 있는 영적 지도자가 왜 필요한지를 증거해 준다.
@ 보다 나은 세상(인간)에서 새로운 세상(인간)으로
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증상이 조금 개선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병에서 해방되기를 원할 것이다. 인간의 문제이건 사회의 문제이건 접근하는 방식은 개선이냐, 원인 제거냐의 두 관점이 있다. 그리스도 예수는 철저하게 후자의 길을 제시했다. 더 나은 인간과 세상을 말씀하지 않고 새로운 인간,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말씀하였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의 근본적인 변화를 외면하는 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애벌레가 세수를 두 번 했다고 자신이 크게 달라진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애벌레는 나비가 될 때 새로운 존재가 된다.
느헤미야는 부자들이 조금 양보해서 착취를 덜 하자고 설득한 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헌금을 더 내도록 해서 소 몇 마리 잡아 백성들의 환심을 사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욕심을 내려놓도록 했고 그것을 실천하도록 했다. 가난한 자들의 고혈을 빠는 행위가 사라지도록 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길을 가도록 백성들을 이끌어낸 방식이다. 국민소득 몇 달러라는 목표를 세워 놓고 국민을 닦달하면서 거짓희망으로 이끌었던 군부독재자의 시대를 우리는 건너왔다. 더 나은 인간과 세상을 목청껏 외치는 정치가의 의식에는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심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현상 유지의 단 꿀을 포기하지 않는 방식이다. 새로운 존재라는 말은 과거에 죽고 지금 새롭게 태어나는 거듭남이다. 이 주제야말로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 중에서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제를 놓치면 우리는 복음의 껍질만 맛보게 된다.
더 나은 단계를 추구하는 방식은 과거의 연장선에서 오늘을 받아들인다면 새로운 존재의 방식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를 지금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나에게 어떤 재능과 가능성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든지 내 안에서 자각의 문이 열리면 터져 나오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면 나는 시를 쓸 수도 있고 춤을 출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 나보다도 더 무한하게 큰 존재이다.
이번에 우리 청년들이 ‘원양어선’이라는 문집을 냈다. 청춘의 글은 청춘의 에너지가 있다. 나는 그 에너지가 폭발하기를 바란다. 모방의 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해방하는 글이 나오기를 바라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놀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새롭게 하고 아름답게 한다. 글을 쓰기 전에는 이런 글들이 나올 줄은 본인조차 모르는 법이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듯이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기를 바란다.
@ 영성은 머리(이상)와 발바닥(현실)의 통합
느헤미야 5장을 읽으면서 보라 컬러를 생각했다. 보라는 사심 없는 봉사와 영성의 컬러이다. 보라는 하늘의 파랑과, 땅의 빨강이 반반씩 섞여진 컬러이다. 그것은 이상과 현실의 조합이다. 사람들은 꿈을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막연한 바램을 꿈이라고 말해지고 있다. 적당한 이상으로는 비등점을 통과할 수 없다. 물은 99도에서 끓지 않는다. 100도를 통과할 때 증기가 발생한다.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리지 않는 관념적인 이상은 그냥 이상일 뿐이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행동하지 않고 타인에게 요구만하는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설계도만 그려내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건축하는 건축가였다. 그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타인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실천에서 나온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고난받는 동족에 대한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구제하였고 명확한 비전으로 이끌었다. 구약의 이상적 정신은 희년제도에 있다. 희년(禧年, 영어 : jubilee, 히브리어 : יובל, yobel 요벨)은 성경에 나오는 규정으로 안식년(7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마다 돌아오는 해가 되면 유대인들은 가나안 땅에서 나누어 준 자기 가족의 땅으로 돌아가고 땅은 쉬게 한다. 희년은 7월 10일 속죄일에 선포되었다. 유대인들은 분배받은 땅을 기업(基業, Inheritance)이라고 하여 영구히 팔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따라서 땅의 매매는 희년까지만 한시적으로 이루어졌다. 느헤미야는 그 희년의 정신을 실제로 실행한 지도자였다. 그는 동족끼리 이자 받는 것을 금하고(레위 25:36) 이자 받은 것의 일부를 반환하고(레위 19:18) 전당잡은 토지를 회복하도록 하였다(레위 25:10).
희년이 어려운 것은 율법을 외면한 기득권 계층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득권 계층조차 느헤미야의 진심이 통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었다. 개혁은 혁명보다도 어려운 일이다. 단칼에 목을 치는 것보다는 서서히 가죽을 벗기는 것을 견디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개혁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을 느헤미야는 보여 주고 있다.
힘으로 밀어부치면 실패한 공산주의 방식이 될 것이다. 철저하고 근본적인 개혁은 인간의식의 새로움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느헤미야는 시대를 초월하여 보여 주고 있다.
- 뫔컬러카페 전경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45 | 느헤미야 7장 - 오늘 우리는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 도도 | 2021.09.12 | 6820 |
244 | 느헤미야 6장 자립과 공생의 결실 – 성벽 | 도도 | 2021.09.06 | 5638 |
» | 느헤미야 5장 새로운 세상을 실현한 사람 | 도도 | 2021.08.29 | 6355 |
242 | 느헤미야 4장 모든 움직임에는 저항이 있다 | 도도 | 2021.08.22 | 6286 |
241 | 느헤미야 3장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 도도 | 2021.08.19 | 6819 |
240 | 느헤미야 2장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 | 도도 | 2021.08.09 | 6319 |
239 | 느헤미야 1장 구약시대의 그리스도 느헤미야 [1] | 도도 | 2021.08.01 | 7283 |
238 | 히브리서 13장 참된 공동체를 추구하는 사람들 | 도도 | 2021.07.25 | 5690 |
237 | 히브리서 12:14-29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의 상속자 | 도도 | 2021.07.18 | 6896 |
236 | 히브리서 12장 1-13 기독교는 유신론인가? | 도도 | 2021.07.11 | 62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