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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2장 에스더, 왕비가 되다

2021.11.08 15:30

도도 조회 수:6625



20211107


에스더 2장 에스더, 왕비가 되다



숨 이병창


에스더의 히브리 이름은 향료의 재료로 사용하는 나무인 하닷사였다. 왕비가 된 후에 페르시아어로 ‘별’이라는 뜻을 가진 ‘에스테르’로 개명하였고 여기에서 유래한 에스더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공동번역 성서에는 에스델, 개신교 성서는 에스더, 천주교에서는 에스테르로 표기하고 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 인간이 별과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지구상에 빛을 남긴 분들은 어둔 세상에 별과 같은 분들이다.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베들레헴에 찾아가듯이 우리 또한 별을 바라보며 인간의 길을 가고 있다. 오늘 우리는 에스더라는 별빛을 보고 있다. 컬러 인간학 머리글에 이런 내용을 적었다.

인간에 대한 나의 인식이 깊어지는 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오라소마 체계를 만든 비키 월Vicky Wall과 마이크 부스Mike Booth, 색채론과 파우스트의 저자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와 교과서가 없는 발도로프 스쿨을 설립하여 오늘날 대안 교육의 상징이 된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 다석 유영모와 김흥호를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이었다. 머리글을 쓰고 있는 이 새벽, ‘인생은 스승을 만나는 일이다’라고 강조하시던 김흥호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쟁쟁하다.”


@ 나라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주는 희망의 서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B.C. 722년에 망하고 남유다는 바빌론에게 B.C. 586년에 멸망하였다. 나라를 잃으면 인간세계는 끝이 난다. 포로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거나 유랑자 신세가 된다. 우리도 일제 치하에서 그 비극을 겪은 바 있다. 에스더서의 저자는 이방 땅에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동족들에게 하나님은 특정한 공간과 시간 안에서만 활동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은 비록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쫓겨나 이방인의 땅에 살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 가운데 있음을 주지시킴으로 신앙과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는 목적으로 본서를 집필하였다.

에스더서는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자나 이방 땅에 남아 있는 자 모두에게 희망과 신앙적 각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통째로 죽이려던 원수가 반전 드라마처럼 죽게 되고 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구원되는 사건을 기념하는 부림절(아달월 13일)은 두고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좌절해서는 안된다는 결의를 다지게 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부림절 전 날에 금식하고 부림절 회당 에배에서 에스더서를 낭독하고 있다. 또 선물을 교환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축제를 즐긴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아픈 역사일수록 그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훈과 지혜를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 후손들에게 역사의 교훈을 전해 주지 못하면 그 후손들이 우둔해진다.

유대인들은 나라가 망한 뒤에서야 자신들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하나님에 대한 시야가 좁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고대에는 어느 나라나 민족신, 지역신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에서 진다는 것은 자신들의 지역신이 패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만약 나라가 멸망해서 타국으로 끌려가면 승전국의 신을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에스더서의 사건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유대인의 여호와 신이 특정한 민족이나 지역 개념을 초월하여 당시의 전 세계를 섭리하고 주관한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언급은 페르시아의 수많은 이방 민족들에게도 충격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유대교로 개종하게 되었다고 한다. 즉 여호와 신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전 세계의 하나님임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고 강한 유대 민족주의 색채 때문에 유대교도, 그리스도교도 모두 이 책의 정경성을 의심했다.


@ 물방울 하나에도 무지개가 있다.


어느 나라나 왕비를 뽑는 데는 정치적 배후 세력이 움직이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귀족 가운데서 뽑히기 마련이다. 포로 출신의 고아인 에스더가 왕비가 되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1장의 잔치 사건으로 왕비가 쫓겨나고 궁궐 문을 지키던 모르드개가 왕의 암살 모의를 알아내 고발하고 하는 일련의 일들이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구원사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조류와 같은 거대한 역사의 움직임 속에는 작은 사건들의 조합이 있다.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면 아무리 비천한 자라도 크게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는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역사하고 있다.

2:1-18절은 에스더의 왕비 간택사건 배후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제시하고 있다. 19절, 21-23절 이하에는 모르드개가 왕 암살 사건을 적발하였고 그 일이 궁중일기에 기록되었지만, 공을 세웠던 그때 인정받지 못하고 유대인의 몰살 기도 때에 밝혀진 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간의 준비와 노력과 성실성이 함께 동반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에스더를 보는 사람들은 사랑스러운 모습에 모두 감탄하였다’(15절). 여기에서 사랑스러운 모습은 미모만을 뜻하지 않고 언행에 모가 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격의 향기가 있었음을 나타낸다. 왕 앞에 나아갈 때에도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가 정한 것 외에는 탐하지 않았다. 오직 주어진 것만을 사용하여 지나치게 꾸미려 하지 않았고 자기를 과시하려고 하는 마음을 절제했다(15절).

아마 많은 여인들은 주어진 조건보다도 더 화려한 치장으로 자신을 휘감았을 것이다. 왕이 반했던 것은 에스더의 담백한 아름다움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에스더의 품성이 고운 것은 그녀가 왕비가 되었음에도 겸손하게 온전히 모르드개를 따른 데서 드러난다. 이 부분은 그녀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님을 드러낸다.


물방울 속에는 모든 빛깔이 합해진 무지개가 들어있다. 우리 눈에는 그 무지개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무지개는 희망의 약속이다. 그것을 보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신앙의 주제는 우리가 어떤 눈물을 흘리건 그 속에서 희망의 무지개를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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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가을 예배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