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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213



에스더 6-7인내와 지혜는 동전의 양면

 


숨 이병창


 

춘향전에 암행어사 출도가 없었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었을까. 심청전에 심 왕후의 잔치판 장면과 심봉사 눈뜨는 장면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읽을 수 있었을까. 소설의 맛은 반전과 절정에 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설에는 5단계 구성 요소가 있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에스더서의 본문은 6장의 극적인 반전과 7장의 하만의 죽음으로 절정 부분에 해당한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아하수에로 왕은 어느 날 밤에 궁중 일기에서 자신의 암살계획을 고발한 모르드개의 5년 전 공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유대 민족의 구원사건은 왕의 불면증에서 시작되었다. 왕은 모르드개에게 포상할 방법을 하만에게 물었고 그 결과 하만은 수치를 당하고 죽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왕궁의 문지기로서 포로 신분이었던 모르드개는 심청이가 왕비가 되듯 신분의 반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함을 암시해 주고 있다. 성서 기자는 하나님은 이방 나라 왕의 잠까지도 주관하시고 모르드개라는 한 개인을 통해 민족의 구원사건을 이끌어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성서 기자들은 온 우주와 인간 만사는 하나님의 섭리 결과라고 공통된 고백을 하고 있다. 사람의 출생과 운명은 물론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다 이유가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주님은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내가 살아가는 날 그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주께서는 모든 날수를 이미 주님의 책에 기록해 두셨지요.” (139:16)

 

우리의 눈에는 사소하고 우연한 일처럼 보이는 일이나 사건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깃들어 있다. 예수께서는 참새 한 마리도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헤아리시는 분이 아니냐?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들보다 더 귀하지 않느냐?”(10:29-31) 고 말씀하셨다.

 

@ 성서의 보편적 교훈

 

성서는 보편적 교훈으로써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으며(1:4), 쉽게 사라지는 이슬과 같기 때문에(13:3)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악을 심는 자는 악의 열매를 거두게 되고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하만이라고 하는 사람은 권력의 정상에 있었지만 그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되었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모르드개는 그의 공적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지만 때가 되어 인정을 받게 되었다(2:16, 3:7).

5년 전에 상을 미리 받았더라면 구원사의 드라마는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다. 민족 구원의 빛은 모르드개의 공로가 감추어지는 바람에 드러나게 되었다. 모르드개의 당연한 포상이 늦추어짐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런 내용은 나의 선행과 봉사가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보상해 주시기 때문에 실망할 것이 없다는 교훈을 준다. 또 악인들이 득세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지게 되고 올무에 걸리며 자신이 굴린 돌에 치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의인을 보호하시고 필요에 따라 공급을 해 주신다(4:19).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은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삶을 넉넉하고 대담하게 살아가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바다에는 늘 파도가 치고 있다. 밀물과 썰물의 파도가 쳐야 바다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세상의 험난한 파도를 타고 가는 유능한 항해사로 길러 주신다. 예수는 아버지께서는 세밀한 관심과 도우심을 베풀고자 하시기 때문에 아버지를 믿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재의 고난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복음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닫는 자의 것이다.

 

@ 지혜의 핵심은 인내

 

에스더는 왕후의 자리에 있었지만 그 자리를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민족의 구원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였다. 에스더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위치에 있든지 그 위치에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이루는 데 선한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또한 사악한 자 하만의 처형 사건이 한 여성의 지혜로운 계략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점에서 에스더의 감정을 다스리며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빛나고 있다.

 

너희의 인내로 영혼을 얻으리라.” (21:19)

 

인간의 머리, 가슴, 배의 세 가지 에너지 센터 중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이 감정 에너지이다. 특히 가슴형은 이 문제에 취약하다. 감정이 이성과 의지 보다 앞서는 것을 미성숙하다고 말한다.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이성적으로 다루는 것이 감정의 인내이다. 에스더는 대단한 감정의 인내를 보여주고 있다. 만약 에스더가 억울한 감정을 왕에게 먼저 호소했다면 대업을 그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에스더는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믿고 그때를 기다렸다. 에스더서는 우리에게 인내는 지혜를 만들어내는 토대임을 깨닫게 한다. 지혜의 힘은 곧 인내의 힘이다.

성서는 지혜를 가르치는 책이다. 그 지혜의 핵심은 인내이다. 인내와 지혜는 동전의 양면이다. 야고보는 이런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인내력을 기르십시오. 여러 문제가 닥쳐올 때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치지 마십시오. 인내력이 충분히 길러지면 여러분은 완전히 성장해서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1:4)

 

공간이 있을 때 우리는 움직일 수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움직이실 수 있는 공간이 나의 인내력이다. 내가 조금도 참지 못하는 조급증 상태에 있다면 하나님도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우리 시대는 사람들이 조급증 상태에 있다. 숨이 가쁜 상태에 있다. 이런 시대에는 숨을 천천히 내쉬는 지혜가 필요하다. 들숨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날숨은 내 몫이다. 날숨을 천천히 내쉴 때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왜 헬라어의 횡경막이라는 단어가 지혜의 어원인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건강과 지혜는 횡경막 호흡에 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를 배우고, 지혜를 가져오는 숨을 쉬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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